빚지고도 씩씩하게

by 서진

오늘 아침 출근 전에 나에게는 미션이 하나 주어졌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오늘 출근을 갑작스럽게 못하게 된 직원 언니의 전화를 출근 한 시간 반 전에 받고 오픈 시간 전까지 적당한 사람을 구하는 일이었다.

우선 일은 일어났다. 나는 전화번호부 목록과 카톡 목록을 쓱 훑어봤다. 전화 목록에는 폰을 한번 바꾸면서 번호를 다 상실한 탓에 아주 짧은 스크롤의 길이만큼의 명부가 있었고 그 안에서 전화할 사람은 한 두명 정도. 잠깐 토요일 아침 8시에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전화를 하는 것을 민폐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망설여졌지만 이런 상황에서 민폐를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다. 더 고민되기 전에 통화 버튼을 눌렀으나 모두들 신호음만 간다. 혹시나 토요일 아침 단잠에 빠진 사람을 깨우고 있는 걸까 봐 몇 번의 통화음이 계속되자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카톡을 보기 시작한다. 오래된 판매직 경험으로 아는 사람은 많아서 목록은 길지만 일을 관뒀거나 너무 오래 연락을 안 했거나, 다른 곳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패스 패스 패스 용기를 낼 만한 사람을 겨우겨우 몇 명 찾아서 소심하게 카톡을 날려 본다.


미안한데 ㅇㅇ씨 오늘....~~


그리고는 에라 모르겠다. 안 되면 오늘 두명이서 하는거지 뭐 호기로운 생각을 한 후에 주섬주섬 준비를 하고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을 타니 또 스물스물 걱정이 올라와서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엄마랑 동생에게까지 전화를 해서 주변에 혹시 하루 알바 할 만한 사람 없니? 아쉬운 소리를 해 보지만 결과적으로 다 실패한다.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으며 이렇게 급작스럽게 일이 생겼을 때 부탁할 사람 하나 없고 나 잘못 산 건가. 자기 비하로 흐를 뻔 했으나 토요일 8시 당일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해결책이나 생각해보자고 마음을 바꾼다.


우선 매장에 도착해서 할 일들을 하다가 지나가는 다른 매장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데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요. 하고 푸념섞인 말을 뿌려놓으니 그 중에 한 곳 매니저님이 “어 할만한 사람 한명 있는데” 하면서 연락을 해놓겠다고 하신다. 나와 우리 직원 언니들과 다른 매장 사람들까지 합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번호로 다 전화를 돌린 끝에 결과적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그 후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전화를 받지 않았던 분들에게 순차적으로 전화가 와서 피치못할 사정으로 오늘은 할 수 없겠다며 도리어 미안해들 한다.


아침의 미션은 그렇게 해결되었다. 내 스스로의 힘이 아닌 여러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가면서 가족도 형제도 절친도 아닌 그냥 아는 옆 매장 직원 분의 도움으로 나는 오늘의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하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혼자 힘으로 해결하겠다고 끙끙거리며 괴로움에 자책하던 시간 반, 가까운 사람에게나 문제를 호소해보고 그 가까운 사람이 내 문제에 생각보다 관심이 없을 때 내 인간관계를 돌아보며 괜히 땅만 파던 시간 반 해서 현실 해결 능력이라고는 전혀 없이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똥고집스런 자의식이 가득했던 나는 요즘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부탁을 하고 누군가에게 거절도 당하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그리고 자잘하게 많은 호의를 받고 하루에도 누군가에게 “고맙습니다”를 대여섯 번은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 많을수록 세상에 빚을 지는 기분이지만 어쩐지 그 빚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채권자이자 채무자로 살아가게 태어난 것 같다. 그러니 당당해도 된다. 오늘 하루도 다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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