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포기하는 것들의 항목이 점점 늘고 있다. 예전에는 그것이 내가 가진 가능성의 문들이 서서히 닫히고 있다는 징조로 보였다.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성숙“한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면 희망도 줄어들고 새로움에 대한 기대도 없어지는 게 아닌가. 실제로 그런 생각은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나를 가두는 진실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예전처럼 극장에 가서 팜플렛조차 보지 않고 아무 정보없이 영화를 본다고 설레지도 않았고(예전에 나는 모든 영화에서 특정 장면에 한해서라도 그런 설렘을 느꼈다) 어떤 음악을 듣는 것에도 곧잘 감흥이 없어져서 비지엠 없는 하루를 살아도 음악이 고프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더 이상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고 뻔하게 느껴지는 삶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감각.
발길 닿는 곳으로 미지의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떠나는 여행도 밤을 새워 티켓을 끊고 콘서트를 가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일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많은 부분에서 이전의 나와 작별했다. 내가 정기적으로 하던 행위를 나도 모르는 새 관두게 되었고 그것을 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런 나를 돌이켜보며 결국 포기했구나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많은 어른들이 삶에서 겪는 과정처럼 나 또한 체념의 수순을 차곡차곡 밟고 있구나 하는 서글픈 감각.
그 대신 삶의 규칙성을 사랑하게 되었고 일상적인 것들의 힘을 믿게 되었으니 그런 삶도 나쁘지 않다는 위로와 함께 결국 거시적인 무엇인가를 이루어 낼 에너지와 대담함은 없어서 미시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삶을 살수 밖에 없을테고 그것이 나의 한계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의 씁쓸함을 삼켰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그 다시 올 수 없는 어린 나를 추억하면서도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가진 가능성의 문이 시간이 지날수록 닫히고 있는 게 아니라 소거법을 통해 점점 더 구체화 되고 명확해져 가고 있는 거라고 믿게 되었다.
세상만 아득하게 느껴지는게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도 막연하게 느껴져서 허겁지겁 많은 것들을 삼키고 느껴야 조금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던 20대를 지나 서두르지 않고 지금 당장 느껴지는 것이 없어도 그런 삶의 무용함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는 30대가 되자 오히려 그 자리에 새로운 희망이 생겨나는 기분이 든다.
한 달의 한번 죽고 싶다는 생각에는 생리 직전의 호르몬의 영향이 커서 다음 날이 되면 그런 감정은 서서히 잦아듬을 안다.
지금 이 순간 실수하고 실패해도 나의 좌절과 상관없이 세상은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존재함을 안다.
일부분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 이라는 어두운 예감에 사로잡혔던 과거와 달리 일부가 무너져도 다른 일부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음을 안다.
알게 되어서 감흥 없어진 것들만큼 알게 되어서 다행인 것들을 얻었으니 모든 일은 내가 어떤 부분을 바라보냐에 따라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안다.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이 아닌 다른 어떤 곳에서 새로운 꿈을 꾸던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을 나아가는 힘이 작지만 크다는 것을 안다.
체념은 굳게 닫히고 있는 문이 아니었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도 여전히 나는 꿈을 꾼다. 좀 더 작지만 예리하게 빛나는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