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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는 진짜 위기일까?

by 구르미

스물이 될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막상 뭘 해야 할지 몰랐던 시기였으니까. 서른이 될 때에도 이제 늙다리가 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회사 입사 후 자리 잡아가던 시기였어서 크게 걱정은 없었다. 물론 이제 젊은이는 끝났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오히려 서른이 기대되었던 것 같다.


마흔이 될 때는 오히려 서른 될 때 보다 더 걱정이 없었다. 젊다는 것에 대한 동경이 무색할 만큼 삼십 대도 충분히 젊었고 건강했고, 난 아직도 쓸만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아이도 커가고 회사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줄어가는 대출금만큼 내 걱정도 줄고 있었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늦둥이는 어떻냐며 와이프와 웃으며 행복한 고민도 했었다. 그렇게 안정적인 40대를 보내고 있었다. 난 일흔까지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을 거라 자신했다.


그런데, 문득 불안감이 엄습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어쩌다 가족 없이 혼자만의 금요일 밤을 보내며 맥주와 함께 무의식적으로 채널을 넘기고 있는데, 평소에 보지 않던 프로그램의 제목이 날 멈추게 했다. '위기의 50대, 나는 구직자입니다.'



2차 베이비부머가 50대에 접어들면서 전혀 희망적이지 않은 희망퇴직으로 퇴직하고 새로운 일을 위해 구직활동을 하지만 예전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의 일을 하거나 혹은 아예 구직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30대에 이런 방송을 봤다면, '늙었으면 이제 그만둬줘야지. 어차피 오래 해 먹었잖아.'라고 쉽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팩폭처럼 저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


잠시 잊고 있던 내 나이를 따져봤다. 해 나이(예전 기준)로 44세. 아마 회사생활 초기에는 '고인물'이라며 자리차지하고 있는 꼰데 정도로 생각했을 나이다. 50까지 6년 남았네. 난 아직 늙지 않았고, 아직 갚아야 할 대출이 있고, 아직 아이와 가족을 위해 쓸 돈이 많고, 지금 월급도 남는 것 없이 다 쓰고 있는데.. 만약 일을 그만둬야 한다면? 끔찍했다.


생각처럼 난 뛰어난 사람일까? 정년까지 주회사(가장 오래 다닌 이력의 주가 되는 회사)를 다니는 비중은 10% 정도라고 한다. 난 그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까? 예전이면 오히려 회사에서 잡아도 내가 나가겠단 생각을 했는데, 불현듯, 내가 뭐 되나? 란 생각이 들었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학교의 학사 졸업. 회사 다닌 것 외에 다른 자격증이나 해외 이력 없음. 기댈 금수저 없음. 그랬다. 어찌 보면 그냥 평범한 40대 아저씨.


혹자는 미리 노년을 준비하면 퇴직 이후의 삶도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글들과 인터뷰가 나오는 것은 그만큼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갖지 못한 이상향. 그래서 결국 인정해야 한다. 내 50대는 40대까지와는 다를 것이다. 그렇게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그 기대를 낮춰야 불안이 줄어들 수 있다.


최근 읽고 있는 책, '불안'에서는 불안은 결국 상대적이다. 내가 원하는 게 많을수록 아무리 내가 많은 것을 얻었더라도 불안이 더 클 수 있다. 원시시대에는 산딸기 한 움큼과 잠을 잘 수 있는 동굴이 만족이었다면, 현재 우리는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이 만족인 것 같다. 수많은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를 상대적 박탈감에 들게 하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게 될 때, 수입도, 관심도 줄어들겠지만, 그만큼 내 기대도 바람도 줄일 수 있다면 그래도 조금은 덜 우울하지 않을까? 40대의 중간 기점에서, 내 미래의 수입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내면의 기대를 줄이는 훈련도 필요할 것 같다. 그래도 원시시대와 다르게 어떻게 해도 굶어 죽진 않는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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