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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우리 늦둥이 어때?

바람과 현실 사이

by 구르미


결혼 후 계획하지 않았던 아이가 선물처럼 찾아왔다.

여느 엄마와 아빠가 그렇듯 뱃속에 있을 때는 기대와 걱정이었다가, 태어난 후엔 기쁨과 고생이었다가, 아이가 커가면서는 행복과 사랑으로 다가오는 게 아이가 아닐까 싶다.


물론 아이가 태어난 후 인생이 크게 달라진 것은 맞지만, 이건 변화라기보다 진화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처음엔 아이 키우기도 힘들었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호르몬의 영향인지 부단히 짜증도 났고, 일도 잘 안 풀리고 했지만,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 좀 살만해졌다. 지속가능할지는 모르지만 급여도 많이 올랐고,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능력치도 많이 레벨 업해서 예전처럼 질풍노도는 아닌 것 같다. 살만해지니 잊고 있던 위시 리스트가 떠올랐다.


"둘째"


아마 내 또래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적어도 형제자매가 둘은 있었다. 나도 동생과 어렸을 때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바쁘신 엄마 아빠를 대신해 동생이 내 친구가 되어주었고 우리는 서로가 정신적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물론 지금은 서로 살기 바쁘지만 그땐 그랬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저 단어는 금기어와 가까웠다. 이렇게 힘든데 무슨 둘째인가. 이걸 말하는 순간 난 천인공노할 사람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잠시 잊고 있다가 다시 몇 년마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독감처럼 또 찾아왔다.


문제는 거실에 놓인 조그만 액자였다. 우리 가족은 모든 사진을 특정 클라우드에 올려놓는데 그 액자는 랜덤 하게 클라우드 속 예전 사진을 띄워준다. 지나가다 예전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아련할 수 없다. 해맑던 아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 새로운 아이를 만나도 좋겠다. 하나의 추억이 더 생겨도 좋겠다 란 생각을 한다.


사실 그분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아이가 잠든 후 둘이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는지 폰을 하는지 모를 그 시간에 넌지시 던져봤다. "여보, 우리 늦둥이 어때?"


잠시 시간이 얼어붙고, 정적이 흘렀다. 어려운 문제에서 흔히 느끼게 되는 그 기시감. 짧았지만 엄청나게 길게 느껴졌던 그 적막을 깨고 여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애는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냐? 나도 이제 마흔이고, 이미 몸이 많이 망가졌는데 또 나으라고? 아이는 나도 좋아, 우리가 둘 다 J가 아닌 건 잘 아는데, 이건 좀 고민을 해보자."


그랬다. 우린 둘 다 P다. 계획 보단 행동이 앞서는.. 분명 어제도 아무 계획 없이 일단 차를 타고 출발한 후 한참을 가다가 갈림길에서 간신히 그날의 일정을 세운 우리가 아니었던가.


계획형은 아니지만, 일단 좀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임신을 위한 신체적 조건


와이프가 첫째를 나은 게 30, 이제 와이프는 해나이 기준 40이다. 의학적인 기준으로 보면 노산이긴 하다. 하지만 요새는 워낙 노산이 많아서 40 정도면 조리원 평균나이 정도 된다고 하더라. 물론 다른 생물학적인 문제도 있을 순 있지만, 초산이 아니라 둘째라는 것에 기대를 해본다. 결국 나이라는 1차원적인 기준보다는 건강이라는 표준화 하기 어려운 조건을 따져봐야 했다. 10년 전에 비해 나이만큼 꾸준히 늘어버린 몸무게와 비루해진 체력. 주기적으로 달리기는 하지만, 확실히 10년 전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괜한 걱정 보단, 신체적인 조건은 전문가와 상의를 해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일단 이건 뒤로 넘기기로 했다.


육아를 위한 신체적 조건


우스갯소리로 젊었을 때 무한한 체력이 있었던 것은 밤새 술 마시고 놀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고 아이를 밤새 돌보라고 준 것인데, 그 시기 놀 것 다 놀고 늙어서 애 키우면서 밤새 아이 보기 힘들다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마치 후기 이벤트로 서비스는 이미 받아서 먹었는데 후기 쓰기 귀찮다고 불평하는 꼴이랄까?


그렇긴 하다. 요즘 육아는 예전보다 훨씬 더 힘들어졌다. 육아 자체가 힘들어졌다기보다 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늙었다. 20대 초반 엄마 아빠는 정말 보기 힘들다. 그들은 신체적으로 정상적인 시기에 애를 낳았지만, 뜻하지 않게 사고 쳤느니, 무슨 다른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분명 충분히 고민하고 나았을 수도 있는데..


나도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내가 만약 20 초반에 결혼했다면, 벌써 애가 대학생이겠다.. 와.. 꿈같은 이야기다.


어찌 됐던, 지금 상황으로 애를 낳는다면 신생아~영아 때도 문제지만 그 이후에 유치원 다니면서 한창 뛰어다닐 때가 문제다. 지금은 그래도 체력이 있지만 50이 돼서 무한 체력을 상대할 수 있을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에겐 첫째가 있다.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첫째 - 아, 하나밖에 없으니 순서를 말하긴 그렇고 그냥 아들이라고 해야겠구나. - 는 받은 사랑만큼이나 엄마를 사랑한다. 그래도 아들램이 나중에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6년 후면 중2가 된다는 게 큰 위험요소긴 하다. 설마 유치원생과 중2병의 콜라보로 2배 더 힘들어지진 않겠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경제적 조건


사실 갓난를 키우는 것 자체는 그렇게 많은 돈이 들 것 같지는 않다. 아주 어렸을 때야 분유에 기저귀값 같은 게 더 들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다. 그즈음까지는 내가 한창 일 할 때이기도 하고. 하지만 문제는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난 후부터일 것 같다. 저출산의 큰 이유 중 하나가 사교육비 때문이라는 기사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금 첫째를 봐도, 초등학교 고학년인데 영어학원, 수학학원, 축구학원, 학습지.. 그나마 다른 친구 대비 적게 한다고 해도 한 달 100만 원이 넘는다. 과연 난 둘째에게도 이렇게 해줄 수 있는 여력이 될까?


한국에서 근로자의 정년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60세 이상으로 정해져 있다. 만약 고용주가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했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정년은 60세가 된다. 60까지 일한다면 누적되는 저축액까지 고려할 때 둘째 키우기에도 충분할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정년까지 주직장 (인생 중 가장 오랜 기간을 다니고 가장 많은 급여를 주는 회사)을 다닐 수 있을까?


얼마 전 봤던 프로그램에서 정년까지 주회사를 다니는 비중이 10%라고 하던데.. 주회사 이후에 대한 부담이 더더욱 크게 다가온다.


난 능력이 출중해, 난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지금부터 준비하면 인생 2막도 문제없지!라는 다짐과 희망회로를 돌리고 싶지만,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기준을 낮추고 행복 자체에 더 집중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게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란 생각도 한다. 어차피 예전처럼 못 먹어서 굶어 죽는 그런 사회는 아니니까. 오히려 타인과 비교하다 우울감에 빠져 스스로 끊는 게 훨씬 더 많으니까.. 경제적인 조건도 Inner peace로 극복해 보기로 한다.


근데, 왜 지금 갖고 싶어 진 거지?


그런데,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이 꼭 인셉션 영화 같단 생각이 든다. 인셉션 영화 초반에 디카프리오가 어린 여자 주인공과 노상 카페에서 앉아 있다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건 꿈의 시작이 아니라 항상 꿈의 중간부 터잖아? 우리가 어떻게 이 카페에 왔지?"


Inception 예고편3 (유튜브, Legendary)

그렇다. 지금 난 이 고민을 왜 하고 있지? 아들이 태어나고 10년이 지난 지금? (물론 그 사이에도 계속 생각은 있었지만,)


당연히 아이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 추억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예전보다 부쩍 아이의 4~6살 시절 사진과 동영상을 보는 일이 많아졌으니까.


그런데 그것 보다 더 큰 것은 마감임박에 대한 아쉬움과 조바심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그나마 가능하지만, 아마 2~3년만 지나도 아예 불가능한 옵션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때가 되면 갖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을 테니까.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아직 젊다는 증명을 하고 싶다는 것일 수도 있다. 아이를 갖고 키우고 같이 놀고 하다 보면, 나 아직 늙지 않았다란 느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다시 말하면 늙기 싫다는 것일 수도 있다. 난 아직 늙지 않았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맞다. 그리고 지금이 매우 안정적이고 편한 것도 맞다. 5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따로 혼자 운동하고 책 보고 글 쓰고 하는 것은 상상도 못 했고, 아이와 심도 깊은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늦둥이도 늦둥이지만 아주 강력한 변화 때문에 지금의 행복과 즐거움에 너무 소홀했던 게 아닌가 싶다.


요새는 아이가 자기 전에는 예전에 즐기던 한잔의 반주도 하지 못한다. 아이가 몸에 안 좋다고 절대 못 마시게 해서다. 매일매일 엄마 마사지 해준다며 밤마다 난리고 아주 가끔은 나도 해준다. 그러면서 매일 밤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 말하고 자는 녀석. 이렇게 날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데, 내가 괜한 꿈을 꿨나도 싶다. 늦둥이는 조금 더 이해당사자와 같이 이야기를 해보고, 일단 지금은 지금을 더 감사하고 즐겨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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