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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다.

반딧불이

by 구르미
화면 캡처 2025-03-09 104543.jpg (출처 : iMBC 뉴스, https://enews.imbc.com/M/Detail/451091)

주말이면 멍하니 TV를 볼 때가 많다. 특히 일요일 저녁에는 몇 시간 후면 다시 출근을 해야 한다는 현실을 애써 무시하고자 소파와 한 몸이 되어 가끔은 맥주나 하이볼 한잔을 들고 시간을 보낸다.


저 방송도 그랬다. 일요일 밤, 유난히 힘들었던 요즘 회사 생활. 그러다가 저 노래를 들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처음 듣는 노래는 아니었는데, 정해인의 기교가 섞이지 않은 목소리 덕분에 가사가 더 깊게 파고들었고 큰 울림을 만들었다. 똑같은 고민을 어렸을 때도 지금에도 하고 있기에 내 고민과 노래가 공명한 게 아닐까 싶다.


나도 내가 어렸을 땐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뭐든지 다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부모님도 줄곧 날 칭찬해 줬고, 날 믿고 응원해 주셨다. 물론 '그때 날 더 채근해 줬으면', '내가 부족한 걸 더 냉정하게 말해줬었으면' 하고 현실을 비관하며 애꿎은 부모님께 불만을 내뿜은 적도 있었지만, 적어도 그때는 참 좋았다. 난 정말 빛나는 별이었으니까.


내가 별이 아닌 벌레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학생 때만 하더라도 난 공부를 따로 하지 않더라도 상위권이었지만, 고등학생이 되니 난 너무 하찮은 존재였다. 범접할 수 없는 상위권은 '난 그냥 평범하구나' 란 패배의식을 심어주었다. 오히려 '난 안될 거야'란 생각이 한창 수능 준비하던 시기에 집중력을 떨어트렸을지도 모른다. 항상 빛나는 별이라고 생각해 주시던 부모님께 미안해서 더 티를 못 냈을지도 모른다. '난 이제 빛나는 별이 아니에요. 아주 어두운 곳에서야 간신히 보이는 작은 불빛일 뿐이에요.'


이런 자괴감은 대학생 때가 그 절정이 아니었나 싶다. 인기 없는 평범한 아이. 아무리 해도 모르겠던 공업수학, 매번 도서관에 있었지만 B를 넘기 어려웠던 전공 수업. 그래서 진작에 대학원은 포기하고 공고가 나오는 대로 원서를 쓰고 취업을 했다. 그나마 돈을 벌고 나서 그런 자괴감은 잊었던 것 같다. 개똥벌레의 불빛이 조금은 더 밝아졌던 시기가 이 즈음이었다. 취업, 연애, 결혼, 출산, 육아. 근데 내 불빛이 얼마나 밝은지는 몰랐다. 사는 게 너무 바빴으니까.


빛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얼마 전, 요새 부쩍 수척해지신 부모님을 만나러 아들과 와이프와 함께 시골집에 다녀오는데 아이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아빠, 난 요즘 많이 행복한 것 같아. 다들 날 많이 사랑해 주니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 엄마도, 아빠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삼촌도."


사랑한다는 말, 난 참 어려운데 녀석은 참 쉽게 말한다. 물론 쉽게라는 게 가볍다는 말은 아니다. 그 녀석에게 사랑은 그만큼 가깝고 그만큼 충만하기 때문이리라. 아들 녀석은 지금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주 어렸을 때 나처럼 빛나는 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도 좋다. 녀석은 나에게, 우리 가족들에게 진짜 빛나는 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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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반딧불 투어를 간 적이 있었다. 생각보다 반딧불 불빛은 어두웠다 정말 작은 불빛이었고, 반딧불을 잡아서 책을 봤다는 '형설지공'은 요즘 시점으로 보면 정말 가성비가 안 나오는 방법이었다. 아마 수백 마리를 잡아야 간신히 책이 보일랑 말랑 할 것이다. 그런데 숨죽이고 가만히 있었더니 한 마리가 내 눈 바로 앞을 지나갔다. 내 눈앞에 별똥별이 지나갔다.


빛나는 별은 아니더라도 아주 작은 개똥벌레 불빛이라도 내 바로 옆이면 충분히 별처럼 밝다. 비록 하찮은 불빛이지만 아주 가까이에선 별이 될 수 있다. 내 아들이 나에게 주는 빛처럼, 그리고 내가 내 주변에게 줄 수 있는 빛처럼. 나에게 잘 안 보인다고 내가 빛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자. 개똥벌레도 똥구멍이 빛나는 거라 스스로는 스스로의 빛을 못 보니까.


너에게 눈 부시다면, 난 빛나는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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