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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만 쓰던 내가 소설을 써 보았다.

by 구르미

난 에세이를 즐겨 썼었다. 있었던 일들이나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뽑아내는 것이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었다.


가끔 현실을 약간 꼬거나 가상의 상황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에세이에서 현실은 음식으로 치면 원재료, 혹은 애피타이저였다. 아주 사소한 일상이지만 그 일상 속에서 어떤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 관찰력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그 찾아낸 주제를 배경지식으로 설명하고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정리했다. 글을 길게 쓰던, 짧게 쓰던 현실의 이야기는 모티브 수준으로 20%가 넘지 않았던 것 같고, 일부 전문 지식을 찾아보는 경우는 있었지만 작성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술술 써졌다.


그런데, 그렇게 에세이를 쓰다 보니 내가 너무 글 읽는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험이나 전문지식을 말할 때 나도 모르게 난 독자보다 위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게 독자에게 조금 불편함을 주지 않을까? 란 생각에 에세이가 아닌 소설을 써보기로 했다.


소설과 에세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작가의 개입이다. 에세이는 짤막한 현실의 사건에 작가가 직접 개입하여 부연 설명을 하고 결론을 내리고 제안을 한다. 어떤 insight를 줄지가 전체 내용의 중심이 된다.


그런데 소설은 그냥 이야기를 풀어낸다. 강제적인 주입은 없다. 그냥 이야기에 내가 녹아들어 가서 그 상황을 체험하고, 그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에게 내 모습을 투영하고, 현재 내 모습과 비교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인공과 같이 슬퍼하고, 웃고, 화내고, 즐거워한다.


이게 참 어려웠다. 상황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전달하기. 어떤 배경을 어떤 날씨를 만들까, 어떤 주인공과 조연을 세울까,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어떤 표정이나 자세를 취할까 등등 모든 것을 내가 정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가 상황을 공감하기 어려워진다. 새삼 국내 소설은 뭔가 어설프다며 핀잔을 줬던 내가 미안해진다. 내가 세상을 창조한다는 것은 참 어렵구나.


그러면서 현실을 생각해 봤을 때 참 어이없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실에는 소설이라면 억지 전개라며 악플을 받을 상황이 부지기수로 발생한다. 그래서 아무리 뛰어난 이야기 꾼이라도 현실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는 만들기 어렵나 보다.


다만 소설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말한다. 그래, 충분히 이럴 수 있지, 이 정도는 내가 공감할 수 있어. 하는 일들을 말한다. 대신 이런 일들은 현실에서는 오히려 잘 일어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이다. 실제론 나쁜 사람은 오히려 잘 살고, 슬프게 끝나는 이야기가 더 많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을 원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어렵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주인공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만나고, 어떻게 연애를 하게 하고, 어떻게 내일을 보낼지 고민해 보는데,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지우고 무한 수정이다. 과연 언제쯤 이 이야기를 끝낼 수 있을지. 어쩌면 쓰다가 이건 아무도 재미가 없을 거야 하며 완성하지 못하고 끝낼 수도 있다. 그런데 너무 참신하고 신기하게만 쓰려고는 하지 말아야겠다. 어차피 사람들은 유치한 행복한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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