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람, 새로운 고민
지우 님이 떠나면서 새로운 사람이 전배 왔고 새로운 사람과 적응하는데 쉽진 않았지만 얼추 접점을 찾고 안정적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던 중, 또 한 가지 큰일이 생겼다. 지우 님의 퇴직과 새로운 인물의 전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큰일..
바로 새로운 담당 임원의 등장이었다. 약간의 취업사기가 의심되는 상황도 있었지만, 기존 담당 임원분은 날 발탁해 주고 항상 날 믿고 응원해 주셨었다. 그런데 그분은 다른 부서로 이동하시고, 새로운 사람이 오셨다. 그것도 내가 전혀 모르는 다른 곳에서 오신 분.
나름 10년이 넘은 고인물이었기에 회사 내 여간한 사람들과는 친분이 있었고, 인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많았지만, 아예 다른 곳에서 온 분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아예 처음부터 날 다시 보여줘야 한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침 출근시간도 신경 쓰였고, 퇴근 시간도 물론 신경 쓰였다. 우리 팀이 하는 업무는 수명업무에 가까웠지만, 전략 출신인 새로운 임원에게는 뭔가 특별한 성과를 보여줘야 했다.
부담감에 뭔가 새로운 일들을 해봤지만 평가는 냉혹했다. 이런 업무는 현업에다 줘도 "아, 전에 해보려고 했던 일이에요."라는 답이 나올 일이란 것이었다. 난 빠른 결과가 나오는 미션을 골랐는데, 새로운 임원은 더 큰 시야에서 보길 원하는 것 같다.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보지만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이렇게 되니 팀원들에게도 뭐라고 가이드를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예전에는 명확했던 지시가 나도 모르게 모호해지고, 팀원들에게 왜 결과가 늦냐며 혼내는 일이 늘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새로운 임원분에게 우리 팀은 관심에서 멀어져 갔고, 일은 줄었지만 마음은 한 없이 무거워졌다.
벌써 전화영어를 한지가 1년이 넘었다. 지금 하고 있는 친구는 스페인에 있는 친구인데, 이 친구랑 같이 한지도 6개월이 넘었더라. 이 친구의 장점은 전화 영어 선생님 같지 않고 친구 같다는 것? 가끔은 전화하다가 서로 웃고 떠들다가 20분이라는 정해진 시간을 넘긴 적도 많다. 이젠 거의 친구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또 전화 영어 시간이 됐고, 그날도 역시 외부적으로 내부적으로 회사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들 때였기에 시작하자마자 요즘 내 boss 때문에 힘들단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대뜸 이렇게 말한다. "혹시 그 boss랑 1:1 해서 네가 어려운 점을 말해보는 게 어때?"
난 바로 답을 했다. "난 싫은데. 굳이 불편한 자리를 내가 스스로 만들고 싶지 않아."
그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둘이 똑같은거 아냐? 어차피 너도 boss 싫어하는 거 같은데. boss를 욕할 게 없어. 너도 그런 거니까. 어떻게 할지는 네 생각에 달렸어."
맞다.지금의 힘듦은 외부적인 괴롭힘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이 만든 굴레이기도 한 것 같다. 난 왜 불안할까?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리긴 하지만, 자리를 놓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내가 성과를 잘 포장하지 못해서 우리 팀이 다 같이 저평가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욕구불만. 그런 게 날 스스로 옥죄는 게 아닐까?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보면 전에도 사람과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도 그렇고 군대에서도 그렇고 전 회사에서도, 지금 회사에서도 그랬다.
내가 어떻게 해도 그 사람을 바꾸긴 힘들고,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할수록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더 높아졌던 것 같다. 나 자신이 더 힘들어지기도 했고. 영화나 드라마처럼 해결해서 친한 관계가 됐던 적은 매우 드물었다. 결국 자연스럽게 졸업하고 제대하고 이직하고 전배가면서 유야무야 마무리 됐었다. 그리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어차피 이 또한 지나가리..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박을 버리는 일인 것 같다. 과연 그가 날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마음대로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을까? 그게 내 모든 인생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일까? 누가 더 회사에 오래 다닐까?
팀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팀을 평가하고 지시하는 상사가 변경되었을 때가 팀장에게 가장 큰 고민이 아닐까 싶다. 기존에는 나만 잘하면 됐지만, 이젠 내 팀 전체를 책임져야 하니까.
그 부담감.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 하지만 부하직원들은 그런 걱정을 안 한다. 주어진 업무에 끝까지 흐름을 끌고 가서 결과를 내주길 바라지만, 매번 내 바람보다 많이 낮은 결과만 내오고, 심지어 차일피일 미루며 결과도 잘 안 들고 올 때도 많다. 그래서 오히려 조급함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동상이몽.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끼인 입장.
내 맘대로 되는 건 위도 아래도 없다.
군대에서 읽었던 책 중에 The Question behind The Question이란 책이 있었다. 거기에서 말하길 '세상에서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 밖에 없다.'라고 했다. 임원을 바꿀 수도, 부하직원을 물갈이할 수도 없으니까, 나 자신을 바꿔보기로 했다.
작은 변화지만, 아침에 일찍 와서 눈도장 찍고, 지시한 사항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실천하고, 성과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확실한 결과물을 만들어 봐야겠다.
일단 해보고, 안되면 말지 뭐. 뭐라도 하는게 심리적으로 나을 것 같으니. 그리고 난 한국인이지 않은가? 한국은 노동법상 미국처럼 'You're fired'가 안되니, 맘에 안든다고 해도 집으로 보내진 않겠지.
그래도 버티면 내가 저 아저씨 보단 더 오래 다니지 않겠어? 젖은 낙엽처럼 버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