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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 C or D?

대부분은 만족할 수 없는 연말 평가

by 구르미 Feb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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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팀을 이끌어야 할지 고민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지나고 평가 시즌이 왔다. 아직도 모르는 게 투성인데 평가라니.. 15년 넘게 평가를 받아오고 있지만 평가는 언제나 어려운 문제다. 평가자와 피평가자 모두.


타 회사도 비슷한 구조겠지만, 보통 상위 극소수를 A, 그다음 B, C를 주고 최하위 D는 징벌적으로 주는 경우가 많다. 임금 인상률도 이를 따라가며 C는 기본 인상률에 인센티브가 안 붙고, D는 오히려 기본 인상률에서 마이너스가 된다.


학생 때도 성적표를 받을 때면 극도의 긴장감이 있었는데, 회사의 평가는 돈과 연관되고 추후에 진급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더 긴장되고 민감하기 마련이다. 그런 평가를 내가 해야 할 때가 오다니.. 맙소사.


이럴 땐 차라리 누군가 대신 평가를 해주고 난 책임을 회피하는 게 더 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럼 내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없는 거긴 하지만. 평가도 평가지만 평가 이후에 어떻게 설명을 해줄까도 문제다. 만약 평가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근거를 대라고 한다면? 그 근거가 합당하지 않다고 인사팀에 신고한다면? 아,, 생각만 해도 불편한 상황이다.


그렇다, 난 불편해지는 게 싫다. 난 그냥 좋은 사람이고 싶다. 이름하야 좋은 사람 콤플렉스. 이런 나에게 나쁜 사람을 하라니. 다행히 전부터 미리 생각은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공감할 수 있는 평가를 할 수 있을지.


1. 미리 평가 기준을 공유하기


어떻게 평가를 할지 기준을 알려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기준이 있어야 어떤 부분을 잘해야 할지 개인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고, 그래야 나도 평가할 때 수월하다. 물론 대부분 회사에서 연초에 목표를 세우긴 하지만, 당최 무슨 의미인지 모를 복사하기 붙여 넣기로 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평가하는 건 어렵다.

내가 세운 기준은 A.R.S였다. 나름 글자를 맞춰봤다.


A는 Attitude다.

말 그대로 태도다. 출근 시간은 잘 지키는지, 갑작스럽게 결근을 한다던지, 정해진 쉬는 시간 외에 자리를 비운다던지, 근무시간에 딴짓을 하지 않는지 등이다. 여기서 제일 어려운 건 출근시간이다. 저번 에피소드에서도 말했지만, 요즘은 흔해져 버린 자율 출퇴근에서 이를 강요하긴 어렵다. 그래서 Attitude를 설명하면서 출근 시간은 9시라고 공지했다. 그냥 빨리 오라고 하면 9시에 오던, 10시에 오던, 나중에 그 결과를 가지고 평가할 경우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저에겐 10시가 빠른 건데요?"라는 참신한 답이 나올 수도 있다.


R Routine이다.

스탭 업무의 특성상 큰 흐름의 업무보다는 요청이 온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얼마나 잘하였는지는 어찌 보면 가장 큰 역할일 수도 있다. 검토 일정을 준수하였는지, 검토 기준을 잘 지켰는지, 중요한 문제를 미리 잘 확인하고 보고하였는지 등이다. 역할상 가장 중요한 업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우선순위를 낮게 둔다. 왜냐면, Routine 업무는 개인의 역량이라기보다 개인에게 할당이니까. 담당하는 팀이 어디냐, 어떤 이벤트가 있냐에 따라 업무량은 들쭉날쭉 한다. 가변적인 업무량이 그 사람의 능력을 말하진 않는다.

또한 근무 시간이 성과가 아님을 설명해줘야 한다. 간혹 근무 시간을 평가 지표로 쓰는 리더들도 있는데, 이는 무의미한 근무시간 뻥튀기만 양산할 뿐이다. 빠르게 끝내고 빠르게 가는 게 부서 전체적으로 더 효율적이다.

개인적으로 Routine은 '고생했어요.'라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Routine을 펑크 낸다면 큰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마치 투수 같다. 9회 2아웃 까지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마지막 타자에게 홈런 맞고 패전 투수가 될 수 있는 투수.


마지막 S는 Special이다.

Routine 업무와 상반되는 것인데, 나한테 주어진 업무가 아닌 내가 스스로 만든 일이 Special이다. 이런 특별한 일은 개인이 일부러 하려고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업무는 대부분 부서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의욕을 불어넣는다. 예를 들어, '투자 심의 절차 자동화'라는 시스템을 만든다고 하자. 별도로 산정 로직을 만들고 자동으로 이 투자의 효과를 판단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것을 만들기 위해선 로직을 짜야하니 많은 기존 자료를 검토해야 하고, 업무를 표준화해야 한다.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도 있어야 한다. 시킨 일은 아니지만 이는 부서 전체의 업무 수준을 높여준다.

이런 프로젝트를 성공할 경우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준다. 근데 문제는 팀원들의 생각이 내 의도만큼은 안된다는 것이다. 그냥 이런 것도 한번 해봐요.라고 하면 절대 아무도 안 한다. 처음엔 매우 적극적으로 듣는 듯 하지만 결국 그냥 자기 하던 일 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한다.


결국 대부분은 Routine에 젖어 사는 것이고 그 Routine을 깨는 역행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개별 면담 때 한 가지씩 미션을 줬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만들어서 Special item으로 해라.'라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어떤 사람도 바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수 없이 많은 고민과 논의를 해야 성공할 수 있다. 난 팀원들이 나에게 '미션을 어떻게 해결할지' 물어보길 바라고 시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안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준 씨앗을 잘 키운 사람에게는 대외적으로 성과를 인정해 주고, 높은 평가 점수를 줄 것이다. 그럼 우리 팀도 더 발전하겠지.


2. 지속적인 피드백 하기


평가 기준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중간 피드백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고, 분명 난 A.R.S로 평가한다고 했지만 늦는 사람은 또 늦고, 그 늦는 사람을 따라 지각은 전염병처럼 퍼진다. Routine이야 다른 부서가 엮여 있으니 잘 하지만, Special에 대한 의욕은 금방 꺾이게 된다. 다시 의욕을 붐업시키기 위해 중간 피드백이 필요하다. 1월에 연간 목표를 수립한다고 할 때, 3월 정도엔 중간 피드백을 해준다. 1~3월 동안 9시 이후에 출근한 횟수가 몇 번인지, 제안했던 Special 미션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등을 확인하고 알려준다. 중간 평가의 가장 큰 목적은, '내가 널 지켜보고 있다.'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래야 낮은 평가를 줘도 나중에 딴 소리 안 할 수 있다. "난 분명 예고했다."

그리고 9월 정도에는 한해의 성과를 같이 Wrap up 해보고, 어떤 일을 해야 가장 성과가 크게 포장될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방송가와 극장가에서 9월은 성수기이다. 왜냐면 시상식을 위한 마지막 론칭 기간이니까. 회사 생활에서도 9월에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결국 평가 즈음에 잘 한 사람이 더 기억에 남기 마련이니까.


3. 평가 결과에 대해 남탓하지 말기


그렇게 중간 피드백도 하고 평가 시즌이 되면, 평가도 평가지만 결과를 공유하는 게 더 힘들다. 당신은 A입니다.라고 할 때는 전혀 힘들지 않다. 하지만 B, C, D는 너무 힘들다. 신경 써서 B를 줬지만, 당사자는 A를 원했을 수도 있고, C는 더더욱 불만이 많고, 인상률이 깎이는 D는.... 뭐라 말을 꺼내기도 힘들다.

하지만 이때, "안타깝게도 위에 임원 분이 결과를 바꿨어요." 이런 말은 하면 안 된다. 내 탓이 아니다라고 하며 난 그대로 착한 관리자로 남으려는 속셈일 텐데, 이건 좋은 결과 공유가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됐더라도, '난 어떤 면이 좋았고, 임원 분은 어떤 부분 때문에 이렇게 결과를 줬나 보네요. 내년에는 이렇게 더 잘해봅시다.'라고 하는 게 좋다. 힘들지만 정면 돌파하고, 내가 충분히 마음을 쓰고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또한 잘한 것만 말하지 말고 못한 것도 분명히 짚어줘야 한다. 잘한 것만 있다면 A를 받아야지, C를 받을 수는 없으니까.


4. 내년 계획을 미리 세우기


흐름을 타서 평가 공유 후 바로 내년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잘했든 못했든 평가 시즌이 되면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되고, 없던 의욕도 생기게 된다. 결국 올해에 대한 아쉬움과 내년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높을 시기니까. 그래서 실제 목표 수립은 1월 이더라도, 평가 시즌에 평가 결과 면담을 하면서 내년 목표도 같이 세우자고 하는 편이다. 올해 이런 부분이 아쉬웠으니 내년에는 무엇을 더 해봅시다. 이렇게 긍정적인 루프를 돌려보자.

업무 변경도 이때 하는 게 좋다. "내년에 더 좋은 성과를 위해 업무를 이렇게 바꿔봤습니다. 이 업무를 하시면 커리어에도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업무를 변경할 것이라면 이 시기가 가장 무난하고 동기부여 해주기도 좋다.


올해 OO님은 O입니다.


나름 열심히 평가 전/중/후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나름 합리적으로 평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부여한 비율보다 결과가 안 좋게 나왔다. 특히 세영님이 아쉬웠다. 올 한 해 정말 열심히 해줬는데, 아무래도 내 포장이 조금 부족했었나 보다. 이럴 땐 내가 괜히 죄인 인 듯한 생각이 든다. 왜 더 빛나게 해주지 못했을까. 이럴 경우 면담 자리가 참 무겁다.


"세영님, 올해 평가 결과는 C입니다. 수고가 많으셨는데, 제가 잘 포장을 못했나 봐요."

사실 이러면 안 됐다. 그냥 잘한 것과 못한 것을 쿨하게 말해주고 내년에 더 잘해보자 했어야 했는데, 감정적으로 말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죠. 저도 올해 부족한 게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 더 잘해보겠습니다. 오시고 첫해였는데, 한 해 동안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팀장님."

괜히 내가 더더 미안해진다. 준비했던 어느 부분을 더 보완하고, 내년에는 어느 업무를 해보자며 같이 의욕을 다지고 다음 팀원을 불러주세요. 하고 짧은 면담을 끝냈다.


누군가 평가는 부하직원을 관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라는 말을 했다. 실제로도 맞는 말이다. 근데 일을 하다 보면 전우애라는 게 생기게 마련이고, 누군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낮은 평가를 줄 때는 연민이 생긴다. 내 자아와 싸우기 싫다면 기준을 잘 세우는 수밖에 없다. 누구 하나 안 아픈 손가락은 없으니까. 내게 평가는 오히려 나를 반성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 내가 누군가를 평가할 만한 깜냥이 될까? 내가 저 사람의 노력을 판단할 수 있을까? 난 저 사람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열심히 준비했지만, 아직 평가하기엔 많이 부족한 날 반성하게 하며 평가 시즌을 마무리했다. 내년엔 성과가 잘 나와서 더 많은 친구들에게 좋은 평가를 줬으면 좋겠다. 어떻게 그들을 더 빛나게 하고, 어떻게 그들의 노력을 더 잘 찾아낼 수 있을까 고민해 봐야겠다.


어쩌다 팀장이 된 나와 함께 올 한 해 수고했어. 내 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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