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분 가량 러닝머신을 뛰는 것은 육체의 힘듦도 힘듦이지만 지루함과의 싸움이다.
여느 헬스장이 그렇듯 러닝머신 앞에 TV가 달려 있지만 달릴 때 얼굴로 땀이 집중적으로 분출되는 내 특성상 난 안경을 벗고 달린다. 대략적인 분별은 되지만 화면을 볼 정도는 절대 아니기에 TV는 제외하고, 음악을 듣자니 음악도 좀 지겨워졌다. 무언가 집중하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게 오디오북이었고, 다행히 오디오북은 예전에도 몇 번 들은 적이 있어서 생경한 수준은 아니었다. 과연 달리면서 들을 만한 게 무엇이 있을까 하다가 고른 책이 바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었다.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달리면서 무언가 상상의 나래에 빠져보고 싶었다. 소설을 듣고 싶었는데 소설 중에도 묘사가 특히 잘 되어 있는 소설을 듣고 싶었다. 그때 와이프가 이 책을 소개해줬다. 내가 꼭 그 풍경에 있는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고.
이 이야기의 배경은 노스캐롤라이나 외딴 습지이다. 주인공 '카야'는 그 습지에서 태어나고 자라지만 결국은 다들 떠나고 혼자 남는다. 습지가 친구이고 습지가 가족이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풍경과 소리 그리고 질감이 마치 내가 느끼는 듯 실감 나게 느껴졌다. 어떻게 이런 묘사가 가능할지 궁금했는데, 가장 마지막에 번역자의 작가 소개를 듣고 이해가 갔다. 작가 '델리아 오언스'는 '야생동물 생물학자'로 아주 오랜동안 자연을 관찰하고 연구를 해왔다. 작품에 나오는 활동과 풍경은 이미 그가 경험했던 것이었기에 이렇게 공감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첫 소설이기 때문에 등장인물 간의 서사는 조금 아쉬운 면도 없지 않지만 이 소설은 참으로 정성스럽게 채워져 있다. 시간을 왔다 갔다 하는 타임머신 구성, 자연의 이야기, 가족 이야기, 자연에 혼자 남은 여자 아이 이야기, 인종 차별, 그 아이를 도와주는 첫사랑, 첫사랑과 이별, 빌런의 등장, 법정 다툼, 마지막 반전. 최근에 발매된 재미있는 이야기의 요소는 모두 다 들어가 있다. 첫 소설임에도 이 모든 재료를 다 집어넣고 조화롭게 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얼마나 작가가 고민하고 노력했을지 보여서 경의를 표하게 된다. 특히 계속 독자를 궁금하게 만드는 '응답하라 1984'식의 구성은 이야기의 긴장을 계속 놓지 못하게 했고 그래서 더 재밌게 들으며 뛸 수 있었다. 나중에는 일부러 산책을 나가서 들을 정도였으니.
매우 잘 차려진 식사를 먹고 난 느낌이 들어 나도 왠지 조그만 보트를 타고 수풀가로 가서 조용히 낚시를 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구르미 평점 : 4.5/5
한 줄 평 : 이것저것 다 모아봤는데 괴식이 아니라니 이 집 맛집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