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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Nov 10. 2021

내 아들의 뒤통수

1분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일요일인데 남편은 월요일 오전 중요한 계약이 있어 서울로 가버리고 두 아이와 주말 일기 쓸 거리라도 만들 겸 벼르고만 있었던 기차를 타 보기로 했다. 딸과 아들 또래의 아이들을 둔 언니에게 급하게 전화를 하고 이루어진 번개팅? 급의 만남으로 부랴부랴 기차표를 예매했다. 목적지는 동대구역. 30분은 모자란 감이 있고 1시간이 넘으면 한자리에서 앉아만 있기에 지루해지는 시간, 창원에서 거의 1시간 거리의 동대구역은 대형 백화점과 바로 연결이 되어 있어 동선을 최소화할 수 있고 식사와 아이들의 엔터테이닝 또한 한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일요일 오전 기차역 플랫폼에서 안전선 뒤쪽으로 아이들을 잡아두는 일부터 녹록지가 않다. 모두 다섯 아이를 두 명의 성인이 매의 눈으로 여기저기 살펴보며 안쪽으로 들어와! 들어와! 기차에 타서는 핸드폰 동영상 소리가 다른 분들께 방해가 되진 않을까 줄여! 줄여!를 연신 속삭인다. 오랜만에 타보는 기차에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 지지만 금세 눈은 다시 핸드폰을 향한다. 슬슬 좀이 쑤셔할 때 즈음 동대구역에 도착해 점심을 먹이고 키즈카페로 데리고 갔다. 신발과 음료를 사물함에 넣고 양말을 신기고 네임 스티커에 이름과 보호자 연락처를 적은 뒤 하나하나 붙여준다. 총 다섯 아이 중 이놈은 목이 마르고 저놈은 겉옷이 벗고 싶고 그 와중에 둘은 시간도 되기 전에 무단 입장을 하고 다시 찾아 데리고 오기를 반복한 뒤에야 시간에 맞추어 입장이 완료된다. 드디어 두 시간 숨을 돌릴 휴식시간이 생긴 것이다.  커피 한잔씩을 앞에 두고 마시기 전 언니가 홍삼 엑기스 한포부터 건넨다. 플라세보 효과일지라도 진득한 홍삼향이 입에 퍼지며 힘이 불끈 솟는다. 아이들 없이 오랜만에 이런저런 얘기들로 앉아 있다 보니 두 시간이 20분처럼 가버린다. 다시 맡아두었던 아이들을 찾아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잡아 다시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화장실을 데려가고 물 한 모금씩을 먹이고 다시 기차역으로 향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오랜만에 뛰고 놀며 즐거웠던 모양이다. 오늘의 미션이 성공적인 것 같아 흐뭇해진다.

 

 기차역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아이들은 부산하다.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긴장감이 풀어진 탓일까? 역이 거의 가까워진 끄트머리, 에스컬레이터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아들과 친구가 갑자기 뒤로 넘어진다. 외마디 비명과 에스컬레이터 끝이 빠르게 다가오는데 아이들은 일어나질 못하고 있다. 손이나 발이라도 말려 들어가는 날엔 큰 사고가 날 것인지라 아찔하기만 하다. 그래도 천만 다행히 아이들은 위로 밀리고  울먹일 새도 없이 눈만 휘둥그레져 있다. 허둥지둥 뛰어가 여기저기 살펴보던 차 이런, 아들의 손에 피가 묻어있다. 손을 다친 건가 싶어 살펴보려는데 손이 연신 머리 쪽을 향한다. 넘어지면서 뒤통수를 부딪힌 모양이다. 급하게 지혈할 손수건을 찾아보지만 미처 챙기질 못했다. 가방을 급히 뒤져 보니 키즈카페에 들어가기 전 벗어둔 양말이 눈에 띈다. 이것저것 가릴 상황이 아니라 급히 양말로 피가 흐르는 뒤통수를 막는다. 피를 보면 아이들은 겁을 먹고 눈물을 터트리는지라 쿵쾅거리는 가슴을 숨기고 차분히 괜찮다고 이야기한 후 기차역에 있는 약국으로 향해 멸균거즈, 소독약, 반창고등을 계산도 하지 않고 뜯었다. 피를 닦아내고 보니 1cm 정도의 상처에서 손을 뗄 때마다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심각한 부상은 아닌 것 같고 몇 년 전 조카가 딱 비슷한 부위를 다쳐 응급실을 다녀와 며칠간 드레싱을 해준 적이 있다. 그때보다 상처도 덜하고 피도 적게 나는지라 차분히 지혈시키고 거즈를 대어줄 수 있었으니 모든 경험은 참으로 소중하다. 10여 분간의 소동 끝 아이들이 젤리 쇼핑까지 하고 나서야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단 1분, 마음을 놓고 2미터 뒤에서 아이들끼리만 둔 시간에 그 사달이 나버렸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종종거린 보람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에스컬레이터에서의 1분이 내 아이의 뒤통수에 # 모양을 한채 거즈로 남았다. 내 아이 하나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님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낀다. 죄책감과 속상함에 창밖만 보는데 큰 눈으로 힐끔거리던 아들의 한 마디에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엄마, 나 머리 다쳤으니까 내일부터 천재 되는 거 아닐까?" 화가 나거나 속이 상하면 말이 없어지는 엄마를 우스갯소리로 풀어주려는 아들의 의도를 알기에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춰주고 의자를 편안하게 뒤로 젖혀 준다. 덜컹덜컹 오랜만에 타는 기차 여행은 또 이렇게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아들의 주말 일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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