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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Nov 10. 2021

차이와 차별 사이

Hate or Not to Hate

 코로나로 셧다운 되었던 일상이 점점 제 모습을 찾아가는 듯하다. 스위스 여행을 떠난 지인의 인스타를 보니 이제 곧 나도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가슴이 설렌다. 백신 접종도 했겠다 이 참에 유럽이나 미국이라도 다녀오는 건 어떨까 했더니 남편은 감염 걱정은 둘째치고 아시안 혐오범죄를 염려스러워한다. 코로나가 되기 전과 직후만 해도 BTS 가 빌보드 차트에 오르다 못해 1위를 하고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며 한국의 위상이 전과 달라짐을 느꼈는데 아시안 혐오를 걱정해야 하다니. 유색인종으로써 안위를 걱정해야 함에 씁쓸함이 몰려든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 중동에 있는 외항사에서 승무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북미 중동 등 다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을 하다 보니 교육 첫날부터 매 비행마다 강조되는 것이 우리는 모두 동등한 동료이며 국적과 인종에 차이를 두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아예 대놓고 No Racism 이라며 단호하게 시작하는 브리핑도 제법 있었다. 사실 캐나다에서 생활하면서도 특별히 나 자신이 인종차별을 당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었는데 오히려 시작부터 선을 긋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일을 하며 꽤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보이는 문화 차이가 제법 있었다.

 런던으로 가는 비행, 기내 서비스가 끝나고 한숨 돌리며 갤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인도 국적의 동료 한 명이 다음 주가 결혼식이라고 한다. 축하와 축복이 오가고 결혼할 신부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아직 만나본 적은 없다며 안쪽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보여준다. 사진 속 신부는 살짝 웃는 모습이 아름다웠고 훤칠하니 잘생긴 동료와 꽤나 잘 어울릴 것 같았지만 어떻게 한번 만나보지도 않고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식의 결혼은 우리 엄마 아빠 세대를 건너 할아버지 할머니 때에나 있을법한 일이었는데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가 그 당사자라니. 포토샵으로 수정했을지도 모르는데 신부의 외모를 어찌 믿을 수 있냐며 의심하는 사람부터 어차피 들통날 거 그렇게까진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옹호하는 이도 있고 신중하게 생각한 것 맞느냐, 만나보지도 않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어떻게 결혼 생활을 할 것이냐 등 들썩했던 축하는 곧 웅성거리는 염려로 바뀐다. 모두 비슷한 연령대의 결혼 적령기를 앞두고 있던 싱글들이었던 터라 제법 진지한 토론으로까지 이어지고 사랑 아닌 조건이 우선인 중매결혼의 찬반 여부를 두고선 조금 격하게 이야기하다 보니 문화의 옳고 그름으로 가르는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그 열기가 조금 과해지기 시작할 때 즈음 새 신랑인 동료가 이렇게 얘기했다. "너희는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하고, 나는 그녀를 알아가며 사랑을 해 나갈 거야. " 난 그때도 그의 말이 참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본 적 없는 신부와 결혼을 하려는 그에게 잠시라도 염려를 가장문화적 열세임을 얘기한 내가 지금까지도 부끄럽다. 사랑한 사람과 15년여간의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나의 사랑은 그 동료보다 낫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사랑을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말에 무엇보다 공감하며 살고 있다.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 것 같던 사랑과 어떤 고난이 있어도 함께 하겠다던 맹세와 함께 시작한 결혼도 결국엔 파국으로 점찍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세계의 전부는 아니다. 또한 그들이 살고 있는 그곳도 전부가 될 순 없다. 나에겐 나의 삶이 있고 그들에겐 그들의 살아온 삶이 있는 것이다.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차별하지 말라고 배우며 We are the world! 를 외치면서 막상 타문화를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누구나 하는 사랑의 방식 하나 이해하지 못하면서 알지도 못하는 문화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인가. 상대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라는 말은 구구셈도 모르는 아이에게 방정식을 내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서로에 대한 무지로 만연하는 혐오를 일방적인 분노로 풀어내는 요즘 문득 그는 지금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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