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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Nov 10. 2021

사춘기 응급실

-  Emergency는 몸에만 필요한 게 아니예요.

 무던하고 온순하기만 했던 딸이 요 며칠 새 저기압이다. 조금만 웃겨주어도 까르르거리던 아이가 무슨 말에도 대답이 퉁명스럽고 까칠하다. 마침내 올 것이 온 것인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은 사춘기인지라 좋은 글귀와 여러 선배의 조언들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었지만 막상 내 앞에 닥친 상황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덧난 아이의 마음을 살살 달래어 주어야 하는데 아! 이놈의 버럭 하는 고약한 성미가 발목을 잡는다.  

 중2들이 무서워서 북한 김정은이 쳐들어오질 못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 시기의 무모함과 치기 어린 행동들이 그만큼 무섭다는 이야기이다. 웃고 넘겼던 일이었는데 막상 그 시기의 조짐이 보이니 나의 긴장감은 적을 앞에 두고 첫 총성을 기다리는 보병 못지않다. 대화를 시도하기도 전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통에 할 말은 꺼내지도 못한다. 답답하고 욱 하는 마음이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주먹을 불끈 지게 한다. 허나 역지사지라고 했던가. 30여 년을 거슬러 나의 사춘기 시절로 돌아가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아버지가 합천 시골에 군인으로 부임하시고 초등생활을 거의 날의 것으로 보냈다. 개울을 첨벙거리고 산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하루 종일 여기저기 쏘다니다 보니 어느덧 중학생이 될 즈음이 되자 부모님은 걱정이 되셨는지 김해에 계신 할아버지 댁에 날 보내기로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거기서 거기인 시골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댁은 김해평야가 넓게 펼쳐진 시골이었으나 나름 ‘시’라는 지명을 갖추고 있던 터라 ‘리’로 끝나는 부모님 댁보다는 나을 것으로 생각하셨던 듯하다. 나의 사춘기는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신 분들이셨다. 어디 하나 다칠까, 부모 어져 아이가 마음을 상하거나 모자라게 느끼진 않을까, 그 노심초사가 극에 달해 과잉보호로 이어졌다. 어린아이라도 그 지극함이 느껴지지 않겠느냐만 말 그대로 사춘기, 떨어지는 낙엽에도 눈물짓다 까르르 댄다는 감정의 폭풍 쓰나미가 부는 시기였다. 할머니의 잔소리에 귀를 막고 입을 닫는 통에 안 그래도 예민한 성격이던 할머니는 머리를 싸매고 눕기도 하셨으나 어디 사춘기 소녀를 이길 수 있었겠는가. 한번 입을 닫으면 보름씩 무표정으로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책만 읽어대는 손녀를 보며 건넛마을 친척 분께 눈물바람을 하셨다는 것도 나 또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나도 그 시기가 쉽지는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할아버지의 경운기 뒤에 걸터앉아 넓은 평야를 가로질러 다니는 비행기를 세어보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기도 했으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이니 해소될 리가 없었다.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터라 어른에게 그것도 나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따박따박 따져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꾹꾹 러 택한 일이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입을 닫는 침묵의 저항. 팔팔 끓이지 않고 뭉근하게 끓이는 비열이 큰 무쇠솥처럼 나의 방황은 격하지 않았으나 오래 지속되었다. 돌고 돌아 나의 길을 찾고 내 인생에 몰입하기까지 허비한 시간으로 너무나 좋은 시절을 앓으며 보냈다. 그 결과가 결코 나쁘지는 않았으나 다시 돌이키다 보면 목 안쪽이 뻐근해짐을 느낀다.

 나의 사춘기에 대한 회상을 끝내고 내 딸 또한 이유를 알 수 없는 갑갑함, 아이와 어른 사이의 정체성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이럴땐 힐링이 필요하다. 가끔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친구들과 만나 점심 한 끼와 커피 한잔에 수다를 떨며 에너지를 얻곤 한다. 별 것 아닌 시간이지만 일상에 지칠 때 예쁜 잔에 담겨 나오는 커피 한잔이 비타민이 되는 것이다. 대충 옷을 챙겨 입히고 무작정 밖으로 나가 햄버거집으로 향했다. 피자에도 김치를 곁들여 먹는 나지만 내 입맛을 챙길 때가 아니다. 햄버거에 콜라 감자튀김까지 곁들이자 슬슬 얼굴이 풀리기 시작한다. 편의점 초코우유로 대체했으면 하는 남편의 눈치도 과감히 패스하고 함께 걷다 보인 예쁜 카페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아 핫 초콜릿 한잔도 추가한다. 가끔은 이런 호사가 어른뿐 아니라 사춘기 아이들에게도 필요하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흐름처럼 놀이터에서 카페 수다로 딸아이의 취향이 바뀌고 있다. 눈물바람을 언제 했냐는 듯 다시 바닥에서 웃고 뒹구는 딸의 모습에 내 마음도 한결 풀어져 날 세우던 목소리가 부드러워진다.

 내가 겪었던 힘든 일은 아이들이 대물림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비슷한 성숙단계를 거치는지라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감정의 고비가 있게 마련이다. 오늘 같은 혹은 더 격한 날들이 나와 딸을 기다린다. 아픈 것도 정도가 있듯 쉽게 지나는 감기처럼 가볍게 앓다 괜찮아지길 기도하지만 어릴 적 열이 나면 들쳐 매고 갔던 응급실처럼 사춘기 딸아이 마음의 고열을 내려줄 곳은 어디가 될지 더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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