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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Nov 11. 2021

친구의 암밍아웃

-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보자 보자 말만 하던 친구를 드디어 만났다. 큰 시험에 합격해 축하해주는 자리를 만들기가 이렇게 쉽지가 않다. 어린 시절 친구 M은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듯 우리의 화젯거리는 끊이지 않는다. 시간이 넉넉하면 좋으련만 아이들 오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가야 하는데 식당은 문을 열지 않으니 밥 먹고 차 마시는 게 아니라 커피 먼저 들이키고 점심 식사를 하는 역순 인생이 아쉽다.


 M과 내가 같은 학교가 아님에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게 된 것은 시골 출신 특유의 촌스러움을 단번에 알아본 것과 아침잠을 이기지 못해 매일 택시비를 나누어 내야 했던 게으름이 한몫했다. 성격이 무던하고 싹싹한 M은 낯을 가리고 다소 무뚝뚝한 나와는 다르게 내가 없는 우리 집에서 엄마와 식사를 하기도 하고 남자 친구 얘기까지 스스럼이 없었다. 나이 차이만 없었다면 딱 우리 집 며느리감이라며 아빠가 남동생의 짝으로 탐을 내시기도 했다. 나이 차이가 커서 참 다행이다. 미안.



 음식도 뚝딱 잘하고 손재주가 좋아 직접 만든 샴푸와 비누들을 이것저것 챙겨 왔다. 멀리서 운전을 해 오면서 매번 받기만 하니 두 손이 부끄럽다. 이런저런 얘기 중간 M은 갑상선 암수술을 했다며 목을 보여주었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암밍아웃에 마음이 내려앉는다. 벌써 주변에서 여럿 암 수술을 한 터라 그럴 수 있는 나이라고, 요즘 갑상선 암이야 의학기술이 발달해 생존율이 높아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지만 막상 진단받은 친구의 마음은 무척이나 착잡했을 터이다. 나 또한 한동안 유방암이 의심되어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다. 유방결절로 마무리되었으나 그간 가지가지 복잡한 생각에 마음이 심란했었다. 평생 건강 걱정은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역시 나이가 드니 몸의 이곳저곳에 잔고장이 생긴다. 나는 바로 전날 병원에서 지방종 수술 날짜를 잡고 온 터라 아직 다 낫지 않은 친구 목의 상처가 내 흉인 듯 안쓰럽다.


 

 그래도 우리 둘은 참으로 열심히 나오는 족족 그릇을 비워나갔다. M은 멧돼지를 차로 친 이후 돼지고기를 못 먹는 여린 심성이지만 우린 소 대창을 먹었으니까. 어느새 식사를 마치니 돌아갈 시간, 잠시 문구점에 쇼핑백 하나를 사러 간다. 쇼핑백 하나를 사러 가 귀여운 스티커, 봉투 등에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주섬주섬 담는다. 하는 짓을 보고 있자니 둘 다 열일곱 고등학생인데 우리 아들 표현을 빌리자면 '아이고~ 얼굴이 문제다!'.


 집 앞에 나를 내려주고 돌아가는 길, 잘 올라갔냐고 전화가 온다. 엘리베이터 타는 내 걱정 말고 고속도로 운전해 가는 네 길을 걱정하라며 핀잔을 준다. 그 뒤로도 급하게 헤어져 인사를 제대로 못했다, 챙겨준 비누 쓰는 법 등을 설명하느라 두어 번 더 전화가 왔다. 어렵게 잡은 목적인 축하는 뒷전이고 건강 걱정으로 마무리된 게 아쉽다. 조만간 제대로 축하하는 자리를 다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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