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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Nov 12. 2021

오징어 게임과 인지의 미스터리

- 당신도 게임에 참가하시겠습니까?

 초등 2학년 아들은 오징어 게임을 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한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을 보았을 리 없다는 것이다. 왜? 내가 무서워서 아직 보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부터 참가번호, 대사까지 줄줄 외며 다닌다. 유튜브에 나오는 짧은 동영상들을 보고 짜깁기 해 스토리를 연결한 걸까? 시작은 나에게 건네 준 ○△□ 가 그려진 종이. 밑도 끝도 없이 "게임에 참가하시겠습니까?"라며 사뭇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어제는 학예회에 쓰라고 사준 마술 도구가 들어있는 007 가방에 딱지를 접어 다니며 누나와 돈내기를 하다 나에게 크게 혼이 나고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잠이 들었다.


 사실 아들은 내 기준에 영민한 편이 아니다. 야무진 첫째 딸에 비해 걷기부터 한글 습득까지 무엇 하나 비슷한 점이 없어 예상은 했지만 둘째가 학교에 가면서 나는 급격히 늘어난 흰머리에 염색을 시작했고, 가장 빠른 친자 확인이라는 학습지라도 시키려면 속에서부터 천불이 올라와 내 생전 처음 원형탈모를 경험했었다. 아들은 반 친구들의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방앗간 참새처럼 드나드는 문구점 이름을 외운 적도 없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상우, 알리, 또 뭐더라? 당장에 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이름에 등번호까지 외우며 자신도 오징어 게임의 한 참가자가 되어 있다. 당연히 본인의 등번호는 456번이라고 했다.


 오늘 수학 문제집을 시키며 나는 목소리를 바꾸어 말했다. "당신은 게임에 참가하시겠습니까?" 뜬금없는 엄마의 참여 제안에 아들이 관심을 보인다. "이번 게임은 수학, 수학입니다. 한 바닥을 실수 없이 풀면 상품이 주어집니다." 승무원을 할 때 연습했던 기내 방송을 떠올리며 웃음을 참고 대사를 읊는다. 제법 진지해진 아들은 수학 문제집을 한 바닥이 아닌 세 바닥을 풀어냈다. 물론 세 바닥쯤에는 "이러다 우리 다 죽어!"라는 희한한 대사를 덧붙이긴 했다. 부상으로 아들이 탐내던 내 쿠키를 선물로 주었다. 내가 수학의 고비라 여겼던 시계 파트를 오징어 게임으로 무사히 넘긴 것이다.



 학습에 가장 중요한 것이 집중력이다. 아들의 인지능력을 향상 시켜 보려 한의원에서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정수리 침부터 목이 아파 간 병원의 총명 주사라는 것까지 고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마음 한번 먹으면 되는 일에 괜한 짓을 한 것이다. 물론 몇 번 하다 보면 오징어 게임식 학습에도 질려 흥미를 잃을 테지만 오늘 집중력의 힘을 실감하며 앉혀서 공부만 시키려고 했던 나를 반성해 본다. 이번 주말엔 날을 잡고 오징어 게임을 정주행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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