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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Nov 25. 2021

좋은 것은 들어오고 나쁜 것은 나가라

 아기 고양이는 엄마를 간택했다. 늦은 밤 발에 밟힐 듯 붙어 힘 없이 앵앵 거리는 새끼 길고양이를 엄마는 내치지 못하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엄마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털이 있는 짐승이라면 질겁을 하곤 했는데 거의 모든 동물이 털이 있는 걸 감안하면 모든 동물을 싫어하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고양이를 들인 것은 불현듯 작은 새끼 고양이가 돌아가신 이모의 현신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했다.


 내게 기억나지 않는 이모는 엄마에게는 아픈 기억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가 외갓집의 전화를 받고 엄마가 울고 있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아픈 이모가 집에 있어서인지 경상도와 충청도라는 거리 때문인지 외갓집에 방문한 기억이 잘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흔히들 느끼는 외갓집에 대한 따뜻함과 푸근함이 나에겐 동감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엄마에겐 항상 그리운 집이자 가족들이었으니 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슬픔이 가슴에 깊이 남아 있을 터였다. 


 아이 다섯에 애완동물이라고는 동생이 데려온 삐약이, 중닭이 될 때까지 쌀가루를 갈아가며 정성스레 키운 병아리를 할머니가 오셨을 때 약이라며 잡아 슬픈 끝을 본 것이 다였던 우리 집이었기에 난 반색을 했다. 급히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접시에 담아 주니 배가 고팠던지 허겁지겁 핥아먹었다. 찾아보니 고양이에겐 모래가 필요하다고 해 고양이 모래와 사료를 사 왔다. 아빠는 길 고양이를 무슨 해충이 있는지도 모르고 집으로 들인다고 난리셨다. 나는 방 안으로는 들이지 않겠다고 했으나 문을 긁으며 우는 소리에 금세 마음이 약해져 슬그머니 문을 열어 두었다. 온기가 그리웠는지 고양이는 애달픈 눈으로 침대 위를 쳐다보며 울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주위를 둘러보고선 고양이를 베개 옆으로 데려와 눕혔다. 그렇게 새끼 고양이는 우리 집 애완 고양이 '양이'가 되었다.


 그런데 며칠 후, 엄마에게 양이가 이상하다며 전화가 왔다. 급히 집으로 가보니 먹지도 않고 힘이 없다. 화장실 근처까지 갈 힘도 없었는지 주변엔 혈변까지 있었다. 사료를 잘못 준 건가, 처음 데려와 생우유를 준 것 까지도 마음에 걸렸다. 동물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양이를 본 수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는 새끼 고양이가 길에서 혼자 있었다는 것은 무리에서 낙오되었음을 의미하고 태어날 때부터 병약한 것이니 피검사를 해보겠지만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된 새끼가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오열을 했다. 무엇이든 좀 해보라는 나의 재촉에 수액을 놓고 피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더 절망적이었다. 백혈병 같다는 것이다. 세상에 저 어린것이 백혈병이라니... 찾아보니 투석을 하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고양이가 있었지만 당시 창원에는 투석 장치가 없다고 했다. 입원을 하고 경과를 지켜보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렸으나 밤새 혼자 있을 고양이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병원이 문을 여는 오전 9시부터 병원에 양이와 함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펑펑 울고 간 나를 기억하시던 터라 어쩌지 못하고 허락해 주셨다. 그때부터 매일 내 손을 문지르고 그 기운과 온기로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주문을 외웠다. "좋은 것은 들어가고 나쁜 것은 나와라." 무슨 영화에선가 보았던 걸 양이에게 해보기로 한 것이다. 다른 방도가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매일 6시간을 마녀라도 된 듯 좋은 것은 들어가고 나쁜 것을 나오라며 손을 비비고 양이를 쓸어내렸다. 일본에서 구했다는 약의 힘인지 의 힘인지 처음엔  없이 누워 있기만 했던 양이가 일주일쯤 지나자 일어나 앉기 시작했고 다음 일주일 뒤엔 수의사 선생님이 백혈구 수치가 거의 돌아왔다며 뛰어오다시피 소식을 알려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하루 6시간을 꼬박 앉아 주문을 외우는 이상한 여자 때문에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셨을 텐데 수치를 보시고 얼마나 반가우셨을까 싶기도 하다. 퇴원을 하고 시장 정육점에서 목요일마다 나오는 생간을 구해 양이의 보양식으로 다져 주니 양이는 기력을 되찾고 내 도움이 아니고선 못 올라오던 침대를 점프해서 뛰어오를 정도가 되었다. 동물병원 지박령이자 정육점의 구미호가 되었을지언정 양이 하나 살린 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누군가에겐 한낱 도둑고양이지만 양이는 우리 가족에게 가족 그 이상이었다. 가가멜처럼 양이를 내쫓지 못해 안달하시던 아빠도 귀가 때 반겨주는 건 양이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귀여운 아기 고양이 양이는 자라서 첫째인 나를 시작으로 한 명씩 한 명씩 결혼해 집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늙어갔다. 친정에 갈 때 양이를 부둥켜안고 자면 반가움에 그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2살, 추운 겨울 양이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양이는 제 자리에 누워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엄마와 동생은 사체가 된 양이를 옮기지 못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터로 데려가기 위해 박스로 옮기는 양이의 몸은 차갑고 굳어 더 서러웠다. 화장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보낼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빨개진 코끝으로 상자를 끌어안았다. 우리의 차례가 되어 염을 하고 나무관에 담긴 양이는 한 줌 재가 되었다. 막내라서 양이를 또 다른 막내처럼 좋아하던 동생은 아직도 유골함을 버리지 못한다.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양이를 대체할만한 어떤 고양이도 만나지 못했다. 반려동물은 정해진 운명에 맡기는 수도, 키우고자 하는 의지일 수도 있지만 나는 운명을 택하는 우유부단한 형이어서 그런 것 같다. 먼 훗날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양이가 하늘 가는 길에 마중 나오는 상상을 한다. 느릿느릿 소리 없이 걸어와 큰 눈으로 올려다보곤 홱 하고 고개를 돌려 사뿐사뿐 길을 안내할 도도한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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