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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Nov 29. 2021

6인승 오토바이의 품격

- 뛰어난 균형감각은 필수!

 현관 앞 조간신문에 전두환  대통령 사망 소식이 실려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굵직한 숙제를 남겨두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통령. 역사의 여러 획을 그었던 그분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우리 가족의 기억에도 한 획을 긋는 일이 있었다.


 어릴 적 우리는 합천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군인이셨던 아빠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셨는데 아이 다섯에 엄마까지 다 함께 외출하는 것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이었다. 그 당시 시골 동네 교통편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줄줄이 비엔나처럼 다니는 다섯 아이와 함께하면 눈총이 여간 따가운 것이 아니니 부모님이 의도적으로 외출을 자제하신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요즘은 온갖 저출산 해결방안을 짜내는 아이가 귀한 시대지만 그때만 해도 '둘도 많다 하나만 잘 키우자'라는 표어가 남발하던 산아제한의 절정기였다. 개인의 취향이나 선택보다는 나라의 정책을 따르는 것이 우선이었던 시대이니 동네에서도 애 다섯 하면 우리 집이라는 걸 알만큼 우리는 시대에 역행하는 특이한 가족이었다.

 

거지꼴이라니...


 화창한 어느 주말, 아빠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우리 모두를 데리고 바람을 쐬러 가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놓인 건 오토바이 한 대. 아빠를 중심으로 연료탱크 부분에 한 명, 아빠와 엄마 사이에 또 한 명, 포대기에 업힌 남동생과 엄마, 그 뒤를 가장 큰 내가 앉는다. 다행히 다섯 중 막내가 할머니 댁에 가 있어 총 6명이 오토바이 한 대에 탑승했다. 동남아 여행을 가 온 가족이 오토바이에 앉아 가는 모습을 보면 엄마는 그때 생각이 나시는지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최대 5명까지 탑승한 걸로 봐선 스턴트를 제외하고 우리 가족의 기록을 깨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의 목적지는 전두환 대통령 생가, 놀이동산도 아닌 대통령 생가에 무어 그리 흥이 날 일이냐만 온 가족이 움직이는 일은 명절에 할머니 댁에나 가는 것이 전부였던 우리는 흥얼흥얼 노래까지 부르며 간만의 나들이에 신이 났다. 포대기 속 막내 동생도 흥이 나는지 둠칫 둠칫 움직임이 느껴진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경쾌한 오토바이 소리가 우리의 노래에 섞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는 속도를 줄이셨다. 옆으로 고개를 기울여 보니 저만치 제복을 입은 경찰 아저씨가 보인다. 허리에 손을 얹고 까만 안경까지 쓰신 경찰 아저씨는 손짓으로 멈추라는 신호를 주고 계셨다. 난 엄마 뒤에 꼭 붙어 보이지 않으려고 몸을 최대한 줄여보았다. 쉿...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누나의 말에 어린 남동생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등에서 움직임이 없다. 하지만 이미 모든 걸 파악하고 "아니, 뭐 하시는 겁니까?" 황당한 경찰 아저씨의 질문에 아빠는 상황을 설명해 보지만 역부족이다.  우린 숨도 멈춘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불과 10여분 남짓한 시간을 오토바이나 타자고 나온 게 아닌데... 하지만 야속하게도 경찰 아저씨는 "돌아가십시오" 라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헬멧도 없이 사고라도 났다면 막내만 남겨 놓고 온 가족이 비명횡사할 수도 있었으니 그때의 결정은 지극히 옳은 것이었으나 당시는 아쉬움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시끄러운 배기음만으로 가득했다.


끝내 가보지 못한 전두환 생가는 검색으로 대신합니다.


 아직도 온 가족이 여행을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각자 짝이 생기고 아이들까지 더하면 한 소대급의 인원인지라 숙박 시설을 잡는 일부터 밥을 먹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그나마도 코로나로 인해 자발적 또는 반 강제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스케일이 커 슬픈 가족이다. 등에 업혀 두 발을 동동대던 남동생은 30대 아저씨가 되고 몇 달 전 아빠가 되었다. 이런저런 제약에 걸려 만나지 못한 막내 조카를 데리고 다음 달에 온다고 하니 AI 설이 돌던 조카를 드디어 실물 영접하게 되었다. 두 발을 동동대는 아기를 가운데 두고 오랜만에 친정집이 왁자지껄 꽉 차게 될 것 같다. 마치 그 시절 즐거운 오토바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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