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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Nov 30. 2021

아마추어 김장러

- 김장 특별 게스트

 난 김치파다. 조폭도 아닌데 파를 나누기는 뭣하지만 김치 없이는 정말 밥이 넘어가질 않는다. 밥에도 김치, 라면에도 김치, 피자에도 김치, 스테이크에도 김치, 참고로 뉴욕의 유명 스테이크 W사의 한국 지점엔 김치가 나온다고 하니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니다. 식당에 가면 밑반찬 중 김치를 가장 먼저 먹어본다. 시중에 파는 김치인지 담그는 김치인지 알아보려는 나만의 맛집 분별법이랄까. 김치를 맛있게 내어놓는 식당은 다른 음식도 맛있을 확률이 높다. 나에게 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정한 소울푸드.


 일 년 치 먹을 김치를 담그는 김장날이 되면 난 적극적이고 비장해진다. 오늘 하루로 일 년 치 김치찌개와 김치전의 맛이 결정되는 것이다. 다섯 남매이다 보니 김치양은 여느 집과는 다르다. 100 포기를 훌쩍 넘기는 김장을 하다 보니 친구가 20킬로 배추를 사서 김장을 한다기에 그게 겉절이지 무슨 김장이냐고 코웃음을 쳤는데 심지어 나누어 먹는다기에 깜짝 놀란적이 있다. 그래서 올해는 우리도 좀 편하게 절인 배추를 사서 김장을 해보자고 했다.


무채의 지옥이란


매년 산더미 같은 배추를 다듬고, 절이고, 헹구는 일이 사라지자 김장이 아주 수월해졌다. 또한 60포기로 양을 줄인 터라 속을 만드는 과정마저도 간소화된 느낌. 무채를 썰고 재료를 갈아 넣는 번거로운 과정은 부모님이 벌써 끝내 놓으셨다. 네 딸 중 키가 가장 크고, 팔도 길고, 힘도 쎈 내가 목욕 대야만 한 통에 담긴 김치 속을 안쪽에서부터 긁어 골고루 섞는다. 우리 할아버지 이 날을 내다보시고 그렇게 보약을 챙겨주셨나 보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도 끙끙대다 보면 어느새 속재료들이 어우러져 찰진 모양새를 갖춘다.


5와 5-1



 자 이제 모두 준비되었다. 각자 쟁반을 하나씩 끼고 앉아 이리 묻고 저리 묻고 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김장 매트라는 것이 있어 편해졌다. 아니 그런데! 일이 이렇게 수월하더라니. 절임배추가 절여지지 않고 살아서 왔다. 속을 넣으려 펼치면 나 아직 죽지 않았다~ 약이라도 올리듯 빳빳하게 노란 잎을 펼쳐 보인다. 하나하나 절이고 뒤집고를 반복하는 집 배추와 같진 않겠지만 샐러드로 먹어도 될 만큼 쌩쌩하니 엄마는 여간 화가 나신 게 아니다. 나에게는 두 번 다시 절임배추를 사지 않겠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포인트다. 그래도 배추가 맛있으니 되었다며 위로해보지만 이제 시판 절임배추는 다시 볼 수 없을 듯하다. 한 잎 한 잎 속을 넣고 속재료의 소금기로 숨을 죽여 보자고 협상을 시도한다. 엄마는 여전히 못 미더워 하나 방법이 없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포기로 쌀 수 있을 만큼 숨이 죽긴 했으나 나중엔 김치 국물이 어마하게 생길 것 같다.


특별 게스트 섬섬옥수님


 모두들 다리를 이리 폈다 저리 폈다 고통스러워할 때 즈음 김장은 끝이 났다. 이번엔 이사 간 동생네를 대신해 새로운 멤버가 영입되었다. 바로 고운 손, 우리 남편이다. 섬섬옥수 같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겠다고 했는데 결국 김장이란 걸 하고 말았네. 각자 가져갈 김치를 통에 담고 멀리 있는 호강러들에겐 택배 서비스까지 해준다. 체험 기회를 놓친 동생들은 다음엔 꼭 참여하고 싶다는 새빨간 거짓말과 함께 안도와 아쉬움을 단톡에 담는다. 수육을 삶아서 새 김치와 곁들이고 과메기도 놓았더니 상이 푸짐해졌다. 역시 김장의 꽃은 함께 하는 저녁상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꽃이 핀다. 올해도 반찬 걱정 덜 수 있는 한해 양식이 마련되었다. 내년엔 코로나로 몇 년째 못 간 목욕탕 풀코스까지 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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