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enna Dec 02. 2021

할머니는 차도녀

 2021년 내 입맛은 트렌디하다. 담백한 건강식을 좋아하는 것이 웰빙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 솔직히 좋게 말하자면 웰빙이고 그냥 촌스럽다. 크림빵이라면 질색을 하고 치즈를 못 먹어 아이들과 저녁 메뉴로 피자를 먹을 때마다 파김치를 꺼내어 곁들인다. 시댁에서는 나의 이런 식성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오랜 시간 함께해서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그건 우리 할머니를 모르고 하시는 말씀!




 농사를 지으시며 시골에서 사셨지만 우리 할머니는 밥보다 빵을 좋아하셨다. 폭신폭신 카스테라를 사랑하며 과자도 즐기셨는데 생일이 되면 케이크를 숟가락으로 떠 드시는 할머니와 달리 입에도 안 대려는 날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셨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찌나 단 것을 즐기시는지 국수에도 설탕을 넣어 드셨고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 드시는 걸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어쩌다 구두쇠 할아버지를 만나 원 없이 드시진 못하셨다.


 장날이 되어 할머니를 따라가면 할머니는 이것저것 손 크게 담으셨다. 그러면 가게 주인은 꼭 나를 할머니 딸이냐고 물었다. 40대 중반 이른 나이에 본 첫 손녀여서  할머니 닮은 나를 막내딸로 오해할 수도 있었고 듣기 좋은 말로 선심을 사려는 것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무슨~ 손녀지~ 우리 맏손녀 아이가?"며 두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 주인이 할머니의 동안 페이스를 폭풍 칭찬하곤 했는데 기분이 좋아진 할머니는 몇 군데서 그 이야기를 꼭 더 듣고서야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셨다.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나셔서 그런지 대접받는 것에 익숙하셨던 할머니가 외출을 마치고 오는 시간이면 할아버지는 나에게 마중을 나가라고 하셨다. 그러면 나는 100여 미터쯤 떨어진 정류장으로 나가 할머니의 가방을 들어 드렸다. 할아버지의 코칭에 따라 움직인 줄도 모르고 할머니는 어린것이 속이 깊다며 나를 칭찬하시곤 했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지만 패션을 사랑하셨다. 쪽을 짓던 동네 아낙들 중 가장 먼저 커트를 하고 파마를 한 것이 할머니라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말로 들었을 땐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미에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라 웃음이 났고 살짝 입술연지를 바르거나 내 머리핀을 꽂고 저녁을 준비하실 땐 할머니가 근사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 할머니는 내가 캐나다로 간 뒤 어린것이 타지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겠냐며 가지고 계시던 금붙이를 팔아 엄마에게 주셨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다. 20대, 외화벌이를 하러 간 것도 아니고 새로운 세상에 신나 하며 유럽으로 배낭여행까지 다녀온 손녀가 도대체 무슨 고생을 한다고 그렇게까지 하셨는지. 아직까지도 알 굵은 할머니의 반지들이 눈에 밟혀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다.


 그런 할머니는 여든일곱의 나이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12시가 넘은 시각, 갑작스러운 소식에 급히 도착한 병원, 여기저기 만져 보아도 잠에 든 것 마냥 할머니의 몸은 따뜻했다. 평소 단정함을 중요시하던 할머니였으니 나는 행여 벌어진 입이 부끄러울까 수건을 접어 턱 밑에 대어 드리고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아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러나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 고모들이 도착할 때쯤 할머니의 몸은 조금씩 온기를 잃어 식어가고 엄마 잃은 자식들의 울음소리가 마치 스타트 총성처럼 내 눈물샘을 터트렸다. 염을 하는 날, 모두 모여 할머니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염습하시는 분께선 할머니의 얼굴에 화장을 해 드리겠냐고 물었다. 나는 기꺼이 해드리겠다고 했다. 어릴 적 할머니 가슴을 조물대던 나의 마지막 스킨십이었다. 이젠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펴 바르고 눈썹을 그린 후 빨간 립스틱과 볼터치는 엷게 그라데이션 하여 풀메이크업으로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지만 먼 길 가시며 만나는 모든 이에게 예쁜 첫인상으로 남으시라고.




 내 나이가 어느덧 할머니가 첫 손녀를 보던 때와 비슷해져 간다. 요즘 40대는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도 많으니 옛날과 다르게 한참 좋을 때이다. 아직도 철 없이 엄마 아빠 호칭조차 떼지 못하고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내 나이, 할머니는 자식들과 손주들을 건사하며 사셨을 생각을 하니 그 고단함이 얼마나 깊었을까 안쓰러운 마음이다. 그래도 하늘나라에서는 다시 부잣집 막내딸로 귀하게 대접받으며 멋쟁이로 거듭나 맛있는 케이크도 많이 드시길 마음속 깊이 빌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아마추어 김장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