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에 소문이 돌던 하얀 트럭 변태남을 본 것은 버스 정류장에서였다. 하얀색 1톤 트럭을 몰고 다니며 사람들이 서 있는 버스 정류장마다 차를 세우고 변태짓을 하던 그 아저씨를 시작으로 전염병처럼 우리 동네에 변태가 늘어났다.고등학교 시절 나는 체중이 정점을 찍어 기념사진을 남길 만한 거구였다. 그러나 다행히 육상 선수로 활약했던 어릴 적 스피드를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뛸 때마다 등에 맨 가방이 위로 솟구쳤다 책의 무게와 함께 떨어지면 튼튼한 두 다리도 육중한 소리와 함께 박자를 맞추어 내딛던 여고생, 나는 겁이 없었다. 비 오는 날은 우산 쓴 변태와 공중전화 박스를 사이에 두고 대치한 채, 어두운 밤 차에서 불 켜 놓은 변태는 차량 번호까지 꼼꼼히 메모해 112에 신고를 해댔다.
밥은 먹고 다니냐?
CCTV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하며 뜸해지나 싶던 변태를 다시 만난 것은 창원에서 안산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을 때였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안산행 버스는 오산에서 한번, 수원에서 다시 한번 정차해 사람들을 태우고 목적지에 도착했었다. 거의 6시간이 넘는 시간을 좁은 차 안에서 있자면 온 몸이 뻐근해질 지경이었다. 수원에서 반 정도의 승객이 내리고 몇 명의 승객이 탑승하더니 젊은 아저씨 한 분이 내 옆에 앉으셨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때였으니 아저씨라 해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자리도 여유 있는데 웬만하면 떨어져 앉으시지 융통성 없으신 분인가 보다 하고 좁은 자리가 불편할까 창가로 몸을 붙였다.
아저씨는 스포츠 신문을 보고 있었다. 마침 나도 심심하던 터라 눈이 꽃게처럼 자꾸 옆으로 움직였다. 아저씨는 신문을 넓게 펴 내 쪽으로 펼쳐 주신다. 나도 보라는 무언의 허락인 듯하여 천천히 지면을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신문이 너무 내 쪽으로 기운다. 이 분 또 배려가 넘치시네. 조금씩 부담스러워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그런데 신문에서 눈을 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긴가 민가 하는 이상한 느낌에 찜찜해지기 시작했다. 오른쪽 허벅지 쪽이 무언가 닿은 듯한데 신문이 있으니 볼 수도 없고. 짧고 굵은 고민 끝 과감히 신문을 치고 무릎에 있던 가방을 들어 올렸다. 아저씨도 화들짝 놀라 눈이 커진다. 그런데 아니 이 아저씨 손가락이 왜 내 허벅지에... 그때 난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슬그머니 손을 넣었던 아저씨 손가락이 찢어진 청바지를 헤쳐 나오지 못하고 걸려버린 것이다.
남자도 찢청을 입습니다만.
아저씨의 눈은 갈 곳을 잃고 앞만 응시한다. 어이를 상실한 표정으로 "손을 좀 빼시라고요~!"라는 나의 말에 슬그머니 손을 빼고도 앞만 본다. 한숨을 크게 쉰 뒤, "자리를 바꾸시라고!"라고 소리를 치자 버스 안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때마침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아주 큰 소리로 처음부터 중계하듯 얘기하자 사정을 알게 된 버스 속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기사 아저씨는 "아가씨, 어떡할까? 내려서 경찰 불러?"라며 사뭇 이 상황이 신이라도 나신 듯했다. 뭇사람의 말이 가장 무섭다 했던가. 안산까지 남은 10여분, 변태 아저씨는 승객들에게 웅성거림과 비난의 눈빛으로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었으나 내릴 곳이란 없었다. 안산에서 버스 문이 열리는 칙~ 소리와 함께 그 아저씨는 곧장 줄행랑을 쳤다. 나 또한 지지 않고 잰걸음으로 쫒았으나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는 뒷모습을 보고 10분간 고생했으니 봐준다는 마음으로 포기했다.
엄마에게 잘 도착하긴 했는데 버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하자 엄마는 "어휴~너도 좀 어지간히 하지..."라며 내가 유별나다고 하셨다. "아니 내가 피해자라니까!"라고 해도 찢어진 청바지 입고 다닐 때 봤다며 내 옷차림을 탓하셨다. 아니 도대체 자동차 번호를 신고하면 수배된다고 걱정하고, 겨우 10분 창피당한 변태는 안됐으면서 피해자인 나의 트라우마는 괜찮다는 건가. 아무리 멘털 강한 나지만 이 모든 원인은 변태들인데?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고 그놈 놓아준 걸 그렇게 후회했었다.
20여 년 전과는 그 인식이 달라지긴 했으나 그래도 여자가 빌미를 제공했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보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옷이 곧 그 사람을 말해준다란 표현이 외모로 즉각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판단은 하되 그 판단이 타인에게 피해를 끼쳐도 된다는 허락이 될 순 없다. '찢어진 청바지는 죄가 없다.' 할머니께서 찢어진 바지를 꼼꼼히 꿰매어 주셨듯 희한하게 뜯어진 그 사람들의 마음 또한 박음질해 주고 싶다. 다다다닥! 다다다 다닥! 다다다다다다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