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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Dec 23. 2021

과잉보호 집사

 우연찮게 달팽이 두 마리가 생겼다. 아이들 학원에서 어린이날 선물로 주신 것을 아이들이 받아 온 것이 그 시작이었다. 달팽이라... 아이들은 '당용이', '사마 '라고 이름만 지어 주고 키우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코코피트라는 흙과 사료 등이 필요하다고 해 달팽이 집과 함께 주문했다. 달팽이는 야행성인 듯하고 야채만 주어도 잘 큰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야행성이라고만 했지 없어진단 말은 없었는데 낮엔 도통 모습을 보이지 않아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집 밖으로 나간 건 아닌가 해 구석구석 뒤집고 흙을 나무젓가락으로 헤집길 여러 날, 알고 보니 흙 속에 파묻혀 있는 걸 좋아한단다.



 달팽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어찌나 잘 먹고 잘 크는지 흙 속에 파묻어 놓은 똥을 찾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아이들은 "우웩! 드러워~!" 소리를 지르고 도망간다. 저럴 거면 받아오지도 말지 애 둘에 달팽이까지 둘을 더하다니. 그래도 내 집에 온 이상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다.


 

 먹이를 체크하고, 흙 청소하며 똥을 치우고, 달팽이 사육상자를 쳐다보는 날 보며 아들은 달팽이가 나보다 더 좋으냐며 말도 안 되는 질투를 하기도 했다. 매일 인터넷에 달팽이 사육을 검색했다. 찾아보니 온욕이란 걸 시켜줘야 한다고 한다. 미지근한 물에 목욕을 시키는 건데 넓다라한 접시에 온도를 체크해서 물을 붓고 두 마리 달팽이를 넣어 주었다. 스르륵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달팽이를 보던 딸이 접시 밖으로 나온다며 소리를 쳤다. 급한 마음에 달팽이를 잡았는데 바스락! 소리가 나며 패각이 부서져 버렸다. 이런! 급하게 또 검색해 보니 달팽이 집을 함부로 잡으면 안 되며, 패각이 부서지면 스트레스와 수분 증발로 죽는다는 무서운 말이 대개다. 달팽이는 동물병원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니 인터넷에서 시키는 대로 계란 껍데기 속 하얀 막을 떼어 깨진 부위에 대 주었다. 괜히 온욕을 시켜서 이 사달이 났다. 후회와 걱정이 물 밀듯이 밀려왔다. 다음 날 달팽이는 몸을 쭉 뺀 채 움직임도 없이 흙속에 박혀 있었다. 아무래도 저 세상으로 간 것 같다. 힘 조절을 못한 내 잘못이다. 이놈의 힘은 쓸데없이 세기만 해 가지고선. 계속 사육 상자에 놓아둘 순 없으니 "좋은 세상으로 가서 집 부서지지 말고 잘 살아라." 마지막 인사와 함께 집어 올리는데 삐직! 침을 뱉는다. 야 너 죽은 게 아니었구나! 다시 살아온 듯 감사하고 반가웠다.


 

 그 후 며칠간 달팽이 몸에 손도 대지 않고 놔두었더니 패각은 신기하게도 말끔히 돌아와 리모델링된 집이 되었다. 과한 관심이 독이 되어 괜한 달팽이를 잡을 뻔했다. 흙 속에 사니 흙이 묻는 것이 당연한데 나 보기 좋자고 달팽이들을 괴롭힌 꼴이다. 요즘은 사흘에 한번 정도 사료와 야채만 갈아주고 화장실 청소만 하는 게으른 집사다. 그래도 달팽이들은 쑥쑥 자라고 곧 사육 상자를 바꾸어야 할 것 같아 손이 근질거리지만 신경 끄자! 과한 관심은 멀쩡한 달팽이만 잡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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