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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Dec 24. 2021

사랑의 배신자

- 네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아들 녀석은 참 희한하다. 집에서 막내에 아기처럼 업어달라, 안고 돌려달라, 엄마한테 착 붙어서 누나가 엄마 손도 못 잡게 난리인 녀석이 등교 시간만 되면 시크하게 저만치 떨어져 걷는다. 학교 주변이 온통 재건축 공사판이라 아이  손을 잡고 등교를 시키는데 횡단보도에서부터 이 녀석은 손을 놓고 느그적 느그적 걸어오니 답답한 마음에 어서 오라고 재촉을 하지만 영 말을 듣질 않는다.




 오늘도 난 마음이 바빴다. 고학년인 딸아이와 저학년인 아들은 코로나로 등교 시간이 10분 차이가 난다. 큰 아이를 맞추자니 아들이 이르고, 작은 아이 시간에 맞추자면 딸이 지각이니 늦는 것보다 빠른 것이 낫겠다 싶어 어쩔 수 없이 큰 아이에게 맞추어 등교를 시킨다. 신호등도 없는 4차선 횡단보도에서 나는 마음이 바쁘다. 아침 햇살은 눈이 부시고 오른쪽 왼쪽을 돌아보며 아이들 손을 잡고 걷는데 꼭 아들은 손을 놓고 천천히 그것도 흰 선만 밟아가며 걷는다. 급한 대로 큰 아이는 뛰어가게 하고 작은 아이를 잡아끌어도 세상 느긋하게 그 망할 놈의 흰 선만 밟고서야 인도로 들어선다.


 큰 아이 배웅을 먼저 하고 둘째를 찾아 돌아선 길, 마침 스쿨버스가 정차 해 아이들이 하나씩 내린다. 아들 또래로 보이는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여자 아이가 내리는 것이 눈에 띄어 나도 모르게 "아이고, 귀여버라~~." 미소가 띄어졌다. 쌍꺼풀 없이 큰 눈이 마스크를 써도 참 예쁘다. 차례로 아이들이 내리고 아들을 찾아 다시 뒤를 돌아본다. 그런데 아니! 방금 본 그 여자 아이가 아들의 손을 잡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들은 큰 눈에 당황함을 가득 담아 손을 빼보려 하지만 여자 아이는 점퍼 소매를 연신 붙들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애정행각에 나 또한 간단히 손만 들어 인사를 하고는 모른 척 차로 돌아왔다. 이늠의 자식! 그래서!


 그래서였다. 긴 머리보다 단발머리가 예쁘다고 말한 것도, 평소엔 멀쩡히 잡고 다니는 엄마 손을 등굣길에선 기어이 놓고 멀찌감치 떨어져 가던 것도, 이른 등굣길을 미적거리며 들어가지 않는 이유도, 굳이 엄마가 데려다주는데 옆 아파트 스쿨버스를 타고 싶다는 것도 모두. 머릿속에서 이 녀석의 이상한 행동들이 퍼즐처럼 순식간에 맞추어지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저학년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평소 누나를 비롯한 주변 어떤 여자 친구에게도 호감을 보인 적이 없어 신기하고, 유치원 친구의 고백 편지는 한글을 떼지 못해 읽지 못한 애달픈 추억을 가지고 있던 아들이어서 더욱 재미났다.


 집에 오자마자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니 남편도 신기해한다. 예쁜 눈을 가진 귀여운 여학생이라고 말하자 더욱 좋아했다. 남자들이란... 아들에겐 많이 궁금해하지 않기로, 놀리지도 않고 모른 척하기로 했다. 그래도 궁금증을 견디지 못한 나는 슬쩍 아침에 본 친구가 같은 반인 지는 물어보았다. 관심이 없는 듯 물어보는 엄마의 모습에 아들은 친절하게도 이름까지 알려주었다. 개이득인가...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던 엄마 바라기 아들의 귀여운 배신에 가슴이 쓰리지만 오늘도 잘 자라고 있구나 안심이 되는 하루다. 조만간 온몸의 레이더를 작동시켜 녹색 어머니를 하러 갈 때 유심히 살펴봐야겠다. 

"얘들아, 찻 길에선 손을 놓고 다니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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