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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Nov 22. 2021

보듬어서 보자기

- 한낱 천조각이 예술이 되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한 때 백화점 1층 매장 한켠엔 선물 포장을 해주는 코너가 있었다. 중요한 선물을 할 때면 곧 잘 이용하곤 했었는데 포장해주시는 분의 야무진 손끝에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장식들이 뜯기조차 아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겉포장 때문에 속 내용물을 보지 않을 수는 없다. 아깝지만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한 포장이라도 일단 뜯고 나면 쓰레기가 될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친환경을 지향하는 트렌드를 따라 요즘은 쉽게 볼 수가 없다.



 보자기 포장을 배우게 된 것은 우연찮은 계기에서였다. 선물할 곳이 있어 박스 포장법을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단정하게 묶인 보자기 매듭을 보게 되었는데 도무지 어떻게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묶어보아도 통 감이 오질 않아 보자기 매듭을 배울만한 곳을 찾아보니 루티아라는 곳에서 보자기 아트를 가르치고 있었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주소를 찾고 바로 찾아가 1급 자격증까지 결제를 해 버렸다. 며칠 뒤 시작된 수업엔 내 또래의 여자분과 20대의 아가씨가 함께 했다. 기본 매듭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열심히 듣다 보면 몇 시간이 금방이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자격증을 따려면 시험을 보아야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주관식 시험과 실기시험이라니. 얼마나 긴장했던지 또래 친구와 아침 일찍 만나 주거니 받거니 하며 스터디까지 했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 모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보자기의 가장 큰 매력은 모양과 종류를 가리지 않고 쌀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싸면 책보, 아기를 싸면 강보, 상을 차려두고 덮어두는 상보... 생명이 있는 것부터 흔한 사물까지 그 용도가 끝이 없다. 소재에 따라 느낌이 달라져 담백한 무명 보자기, 속이 비치는 시스루 노방 보자기, 고급스러운 실크 보자기와 양단 보자기까지...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또한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어 우리 집 주방 서랍엔 사용했던 보자기들이 다림질되어 차곡차곡 매듭 질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일상에서도 보자기는 참으로 쓰임새가 많다. 이웃이나 지인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도 보자기 포장을 해놓으면 보기에도 좋거니와 드리는 손이 뿌듯하기도 하다. 참기름병과 들기름병에게 명품 옷을 입히는 기분이랄까. 조카의 돌 반지 포장을 보자기로 꽃과 함께 장식하기도 하고 남동생이 결혼할 때 함과 함께 들여가는 물건을 보자기로 포장해 보낼 땐 부디 내 동생 잘 봐 달라는 누나의 바람을 담았다.



 얼마 전 기사를 보니 할리우드 스타들 중에서도 보자기 포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다수의 명품 브랜드에서도 VIP에게 보자기로 포장한 선물을 보낸다. 한류의 영향도 있겠으나 우아함을 담고 무엇이든 보듬는 관용을 그들도 인정하는 듯하여 괜히 뿌듯해진다. 두세 개만 알아두어도 내용물의 느낌이 달라지는 보자기 매듭이니 잠시 시간을 내어 보는 건 어떨까. 단, 두 개 알고 멈추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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