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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Nov 20. 2021

모녀 탐정 수사대

- 딸을 찾아드립니다.

 딸 넷의 통금시간을 첫째 6시로 시작해 막내 9시로 마무리 짓기까지 군출신에 가부장적이기까지 한 아버지와 많은 고충이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술판에 새내기 대학생들에게 6시 통금시간이 웬 말이란 말인가. 애초에 제대로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었기에 나는 8시까지는 들어오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아빠의 불호령이 무서워 집 전화는 쓰지도 못하고 집 앞 공중전화로 나가 어서 들어오라고 재촉을 하시곤 했다.

 

 애들 간수를 어찌했길래 저 모양이냐고 화를 내실 아빠 얼굴이 눈에 선 했으나 입시라는 감옥에서 탈출해 자유를 만끽하는 장기수였던 나는 부지런히도 방법을 찾아 나갔다. 스터디 모임, 친구 생일 따위는 통하지도 않아 결국 내가 찾아낸 방법은 2층 다락으로 배관을 타고 기어 올라가 창문으로 귀가하는 것이었는데 언성이 높아질 때쯤 천연덕스럽게 잠옷을 입고 2층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창문에 방범창을 달면서 끝이 나고 말았다. 진짜 도둑 대신 내가 잡힌 것이다. 그러나 고단했던 나의 귀가 일기는 두바이로 취업을 해 떠나면서 끝이 났다.


 그런데 문제는 동생들. 한국으로 휴가를 올 때마다 엄마는 시차 적응도 안된 나를 깨워 동생들을 찾으러 갔다. 많이 늦은 시간도 아니고 10시에서 11시경 들어오라고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했지만 아빠 성미를 모르냐며 기어코 나를 끌고 엄마의 빨간색 경차를 몰게 했다. 고작 4~5일 되는 황금 같은 휴가였으나 밤 운전이 미숙한 엄마가 믿을 곳은 나뿐이었다. 전화를 하면 당연히 일찍 오라는 귀가 재촉일 테니 동생들은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처음엔 동생들이 얼마나 놀고 싶겠냐며 이해하던 나도 자꾸만 끊어버리는 전화에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요것들 봐라!" 꼭 잡고야 말겠다는 분노의 집착이 시작된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도 모를 동생을 도대체 어디서 찾을 것이냐가 문제인데 내가 단순 행동파라면 엄마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축적되고 다양한 정보를 가진 S그룹 미래전략실이었다. 동생들의 지인 전화번호는 물론이요, 자주 출몰하는 동네까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엄마의 정보력은 실로 나를 감탄하게 했다.



 엄마와 나는 마산 어디쯤인가 도착해 시동을 켜고 동생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잠복해 있었다. "아니 엄마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있어봐... 여기로 온다고 했어." "엄마는 도대체 그런 걸 누구한테 듣는 거야? " "거 있어. OO이라고." 우린 차 밖에선 들리지도 않을 텐데 누가 듣기라도 할까 목소리를 죽인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놀랍게도 동생이 모습을 나타냈다. 나는 차 안에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이 울리자 힐끗 보고는 플립을 닫아 버린다. 한번 더 전화를 한다. 또 닫는다. 조심조심 차 문을 열고 소리가 날까 열어둔 채 다가가며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또 닫는다. 마지막 통화음과 함께 나는 어느새 동생의 뒤에 서 있었다. 맞은편 친구들의 눈이 나를 향하지만 동생을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전화를 끊고 있었다. 곧이어 친구들의 시선을 의식한 동생이 뒤로 돌아서자 저승사자처럼 서 있는 내 모습에 동생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미션을 완수한 우리는 뿌듯하게,  동생은 눈물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편안한 밤 시간을 보냈다.




 아빠는 지금까지도 우리가 아빠 말씀을 잘 들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빠는 모르는 많은 일들이 엄마와 나 사이에 007 비밀문서처럼 남아 있다. 지금은 모두 아이를 하나, 둘씩 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주부들. 가끔 조카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푸념할 때면 내가 널 잡으러 다닌 시간을 생각하면 걔들은 효자이니 참으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동생도 언니 너... 어쩌고 하며 반격을 시도하면 긴급 화해 협정으로 끝을 맺는다. 그나저나 우리 딸이 이담에 우리처럼 늦게 들어온다면 나는 어찌해야 하나... 운전은 되니 정보력만 쌓아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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