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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Dec 06. 2021

이이이 복 받을 놈!

식탁 위에 뒤집힌 채 동그마니 놓여있는 양말 한짝, 욕실엔 뭘 했는지 물기가 흥건하고 소파엔 제품명을 알 수 있을만큼 뚜렷하게 아이스크림 자국을 만들어 놓았다. 이게 다 우리집 둘째 짓이다. 학습지 선생님이 오시는 날인지라 바쁜 와중에도 서둘러 치워놓고 간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 돌아와 마주한 집은 말 그대로 개 판 오분전이었다. "야, 이이이..." 차마 솔직한 뒷말을 잊지 못하고 "복 받을 놈아!" 라고 허망하게 끝을 냈다.




 아들은 선택적 청력을 가진 아이다. 게임 중에도 제 필요한 말은 기가 막히게 듣고 참견까지 하면서 들어야 할 말은 듣지 못하고 넘겨 버린다. 누구를 탓하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옵니다. 나를 쏙 빼닮아 그러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먼 산 보는건 기본, 나 또한 딴 생각에 빠지면 남편이 아무리 불러대도 듣지 못해 오해를 살 때가 있다. 어릴 적 티비를 보다가도 멍을 때리면 채널이 돌아가는 것 조차 눈치 채지 못해 정신을 차렸을 때 만화영화는 뉴스가 되어 있었다. 오늘은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는 바람에 하이패스 충전이 다 된 걸 잊고 지나가 버려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죄송한 결제를 해야했다. 미결제 문자를 받은 남편에게 이제 연락조차 없는 걸 보면 또...라고 혀를 차고 있었을 것이었다. 어찌 보면 아들이 제 물건은 야무지게 잘 챙기니 내가 아들 탓 할 일도 아니다.


 아기땐 예민해 애를 먹였지만 말이 통하자 이런 아이는 열도 낳아 키우겠다는 부러움을 받게한 첫째딸은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이라 내심 날 잘도 피해갔구나 안도 했었다. 물론 외형도 함께 피해가 날 닮은 구석은 없고 남편과 복제양마냥 닮았다. 둘째는 순둥이라 너 닮은 자식 낳아라 주문에서 난 빼주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네 살이 되자 마트에 드러누워 사람 기겁 시키더니 습관적으로 바닥에 등을 댔다. 어릴 적 엄마 신발 한켤레 샀다고 내 것도 어서 사달라며 떼를 쓰던 내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울다 울다 신발이 갖고 싶어 우는지 떼를 쓰고 싶어 우는지 나조차도 헤깔리던 그 순간을 아들을 통해 기억해 냈다.  



 어린 나를 보는 듯 하지만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밀어낼 때가 있었다. "넌 도대체 왜 이러는 거니?" 나보다 약한 아이를 상대로 한 치사한 싸움이라는 걸 알지만 그치지 않는 엄마의 비난이 아이의 가슴에 비수가 되었나 보다. 뒷 끝 없이 쿨한 성격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아들은 더욱 제어가 되질 않았다. 아이라고 배려하지 않고 어른들이 뱉는 누나와의 비교에 마음이 상한 아들은 사이 좋던 누나를 지독하게 미워하기 시작했다. 무심코 구경하던 학교 게시판에서 누나를 뺀 아들의 가족 그림을 보았을 때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자기 전엔 아무리 화가 나도 엄마 품으로 안기는 아이였다는 것이다. 아이를 안고 "엄마가 아깐 참 미안했어. 이렇게 예쁜 아기를..." 아이는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솔직하게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얘기하는데 그 시작점이 내 생각보다 한참 오래 전의 일이라 더욱 놀랐다. 이걸 기억한 나이이긴 했나 싶은 시점부터 아이는 많은 것이 서운했던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듯 작은 말에도 상처 받고, 몸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임을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 또한 흘리고 어질러도 괜찮아, 공부 까지꺼 못해도 괜찮아라고 얘기해 주는 연습을 어금니 꽉 깨물고 하는 중이다. 아직 오은영 박사님처럼 신명 나게 반응하는건 저음인 내 목소리에 무리지만 두손 꽉 쥐고. "그깟 콜라 좀 흘린 게 어때서 괜찮아..." 하면서도 "이늠 자식, 식탁 유리 사이로 콜라 는 도대체 어떻게 넣는 거야." 중얼중얼 거리면 아들은 "엄마 혹시... 지금 나한테 화내는거야?"라고 다시금 확인을 한다. 오늘도 활짝 웃으며 그럴리가...우리 예쁜 아가에게. 이 복 많이 받을 놈...복 많이 받아라!!! 으스러지게 안아준다. 아이고, 내일은 흰머리 염색을 꼭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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