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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Nov 10. 2021

Nonya!

- 어른이 되어도 자란다.

 남편과 새 차를 보기 위해 전시장에 다녀왔다. 잔고장이 생겨 차를 바꿀 시기도 되었고 차에 큰 관심이 없던 내가 덜컥 계약한 지금의 차가 쿠페형 스포츠 세단이라 아이들이 뒷자리를 불편해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차를 바꾸자니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든다. 오랜 기간 함께 해오기도 했지만 이 차를 사기까지 얽힌 작은 해프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싸운 적이 있다. 부부싸움이란 게 뭐 특별할 것이 있을까 싶게 종종 있는 일이지만 싸운 이유도 기억나지 않는 그날이 잊혀지지 않는 건 남편의 황당한 표정이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이다. 평소 남편은 순하고 차분한 편이지만 한번 화가 나면 욱하는, 시어머님 표현을 빌리자면 뿔뚝성질이 있어 버럭이 일상인 나와 불꽃이 일곤 한다.

 부부싸움의 클라이맥스는 ‘갈라서자!’ 아닐까. 그날도 우린 서로 너랑 정말 안 맞다. 누가 할 소리 너랑은 정말 끝이다라며 날 선 비난을 쏟아냈다. 싸움이란  참으로 유치하지만 생산적인 결론보다는 상대에게 허를 찌르는 아픔을 주고 무너짐을 보는 게 주목적이 아니던가. 남편은 나의 가장 큰 약점인 아이들을 무기로 내세웠다.

“너 같은 사람한테는 우리 애들을 맡길 수 없어. 데리고 갈 생각도 하지 마!”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말도 안 되는 소리! 모든 걸 포기해도 양육권만은 안돼. 애들은 엄마와 자라야 하니까!”

이것이 평소 나의 모범답안인데 그날따라 제대로 열 받은 내가 삐딱선을 타버렸다.

“좋아, 애들은 너가 키워. 그리고 재산분할은... 블라블라. ”

뒷얘기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아니 이게 아닌데 당황한 표정이 남편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뭐?”

“응, 자기가 키우라고. 내가 여태껏 애 많이 썼고 애들도 이제 엄마 없이도 괜찮은 나이니까. 좋아 그까짓 양육권 너한테 줄게 가져.”

“뭐? 어떻게?”

“그건 나도 모르지. 어머님께 부탁하든 시터를 구하든 난 모두 오케이 할 테니까 알아서 해.”

“너 같은 여자가 엄마냐? 재산 분할해서 넌 놀러 다니고 난 애 키우며 고생이나 하라는 거야!”

분노한 남편을 말을 듣다 한마디를 던졌다.

“Nonya!”

“뭐래는 거야?”

“너냐라고. Non of your business. 내가 뭘 하든 상관 말고 관심 끄라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에서 나왔던 대사를 이렇게 써먹다니.



격렬한 논쟁 중간 영화 속 말장난에 실소하며 남편과 나는 힘이 빠진다. 딱 한 대 때려주고 싶게 얄밉던 말들이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한 건지 남편이 차분히 대화를 시도한다. 나 또한 한풀 꺾여 대화가 제법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나간 화해의 드라이브에서 지금 내가 타고 다니는 작은 차가 선택되었다. 차를 바꿀 시기이기도 했지만 욜로족의 기질이 다분했던 결혼 전의 와이프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 싶어 다급하게 안긴 화해의 선물일 수도 있겠다.

 어느새 또 이렇게 시간이 흘러 차를 바꿀 시기가 되었다. 쉽게 사물을 의인화해서 말을 거는 특이한 나의 성향 탓에 내 차는 참으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받아 주었다. 순화한 표현이 이야기지 거의 욕받이에 가까웠기에 그간의 스트레스로 이리 잔고장이 많아진 건가 싶기도 하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것도 모두 이 차 안이었던 만큼 정이 많이 들었다. 내 삶의 큰 추억이 담긴 친구를 보내주려니 서운한 마음이다. 하지만 다음 차는 부부싸움의 산물이 아닌 성숙된 대화와 숙고 끝에 내려진 선물이니 그간 남편과 나 모두 철이 들었음을 칭찬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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