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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Nov 16. 2021

60년 웨이팅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빠는 아들 둘을 잃고 하나 남은 귀한 종손이었다. 그 귀함이 어떠했을지 유난한 깔끔으로 고모들은 멀리서 공부하던 아버지가 올 때면 집안을 청소하느라 난리 법석이었다고 했다. 물건은 항상 제 자리, 좋은 음식 또한 본인이 우선이었던 아빠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세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딸이 넷이나 되는 딸 부잣집이다. 마지막에 성공적으로? 아들 하나를 얻어 아이가 총 다섯. 요즘이야 딸 덕에 비행기 타는 세상이라지만 우리 집 딸이 넷이나 되기까지 엄마의 고충이 첫 번째요, 그 다음은 아빠였을 것이다. 세상이 본인 위주로 돌아가는 김해 프린스로 살다 명령 복종이 기본인 군인이 되셨으나 다섯 아이에게 그 명령이 통하지도 않거니와 한 군데서 치우면 네 군데서 어질러지는 상황에 반듯반듯 각진 정리란 있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하루하루 어질러짐에 익숙해지는 아빠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가끔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라며 한숨을 내쉬곤 하셨다.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때 첫 차를 사셨다. 다섯 아이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차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놈의 차를 탈 때마다 우리는 모두 신발을 깨끗하게 탈탈 털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나마도 아빠의 눈에는 만족스러울 리 없었겠지만 우리에게는 참으로 버거운 일이었다. 멀리 떨어진 외갓집에라도 가는 날엔 과자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는 좁은 공간에서 아빠의 예민함이 극에 달해 결국 누군가는 아빠 차를 타지 않겠다고 눈물로 선언했다. 뒷자리에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이 터져 나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지만 그렇게 첫 자동차는 무사히 제 운명을 다했다.


 다음 차는 군인이었던 아빠에게 딱 어울리는 지프차였다. 은회색 각 반듯한 디자인이 아빠가 출근하실 때마다 입는 군복과 잘 어울렸다. 그러나 문제는 2인승 차량이었다는 것이다. 7명이 가족 구성원인데 도대체 왜 2인승 차량을 구매하셨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셨을거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우리 다섯은 짐칸에 옹기종기 앉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는데 노면이 울퉁불퉁 해지면 너도나도 악! 악! 소리를 내지르게 만들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며 요령이 생긴 우리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 편안함을 찾아나갔고 무엇보다 아침에 학교에 나를 내려주시고 가는 아빠 차의 뒷모습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 문제의 그 짐칸에 탑승하게 되는 대극노 사건을 계기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차는 승합차로 바뀌게 되었다.


 무슨 차 사이즈가 중간도 없이 2인승에서 승합차로 뛰냐며 나는 불만이 많았다. 그때는 나도 운전면허를 따 몰래 아빠 차를 몰고 나갈 때였는데 승합차라니... 체구가 크지 않으신 아빠에게도 어울리는 차는 아니었지만 내가 가끔 동생들을 태우고 운전할 때면 버스 기사라고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한결 커진 사이즈에 만족하신 듯했다. 또한 20대 젊은 여자가 승합차 운전석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오해한 일을 계기로 지금 나의 남편이자 아빠의 사랑, 큰 사위를 만나게 되었으니 승합차는 나름 큰 일을 하고 다음 바톤을 일반 세단에게 넘겨주었다.


 일반 세단은 현명한 선택이지만 엄마의 검소한 예산에 맞추어 구매한 차였다. 나쁘진 않았지만 좀 더 좋은 차를 타셔도 되는데 차는 타고 내리는 운송수단일 뿐이라는 엄마의 의견이 지배적으로 작용했다. 또한 그 차를 사실 때 즈음엔 우리 모두 자라 독립할 때여서 뒷자리를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아빠는 정년퇴직을 하신 이후로도 쭉 그 차와 함께하셨다.


 가끔 티브이에 새 자동차 광고가 나올 때면 아빠는 "이야~! 멋지다"라며 감탄사를 내뱉으셨다. 엄마는 아빠 앞에선 어림없다고 하셨지만 나에겐 아빠 차를 곧 바꿔야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하지만 자동차 사용은 점점 줄어드는데 필요 없는 지출에 지갑이 쉬이 열리지 않았다. 마음에 걸려하는 걸 알곤 남편이 칠순 선물을 앞당겨 미리 드리면 어떨까 고마운 제안을 했다. 아빠는 안될 말이라며 손부터 내저으셨지만 남편은 이미 계약금을 지불한 터였다. 함께 전시장으로 가 아빠 마음에 드는 외장 컬러부터 인테리어 옵션까지 고르고 기다려 차를 만나게 되었다. 고스란히 아빠를 위한 차를 받는데 6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아빠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차된 차를 앞 뒤로 살피신다. 어찌나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었는지 탈 때마다 먼지 한 톨 없음에 감탄을 자아낸다. 남편 또한 차를 볼 때마다 깨끗하다를 연발하며 아이들이 마구 어질러놓은 내 차와 비교하곤 한다. 나는 깨끗함이나 디자인보다는 엄마와 좀 더 안전하게 다니실 수 있어 안심이다. 내가 자식을 낳아보니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나 둘도 만만치가 않다. 다섯 자식을 키우느라 엄마도 아빠도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셨다. 아빠를 위한 자동차가 두 분의 삶에 프리미엄이 되고 더 좋은 다음 차를 만나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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