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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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hyoonique

이것은 소년의 일생과 행복에 관한 짧은 이야기이다.

어린시절 소년의 행복은 주로 아버지의 퇴근길, 양손에 들려있었다. 당시 소년에게 행복이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었다. 행복의 모습은 여러가지였다. 아이스크림, 장난감, 붕어빵, 만화책, 그리고 다시 아이스크림. 그렇게 행복은 아버지의 양손에, 그리고 소년의 손아귀에 있었고, 쥐락펴락 쥐락펴락. 아아, 소년은 그 소중함을 느끼기에 너무 어렸다.

행복이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더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이제 머리가 희끗한 그의 아버지는 빈손으로 현관을 열었다. 불만 많은 그의 어머니는 종종 그를 모욕했다. 소년은 거의 동시에 깨달을 수 있었다. 불행도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채로 다가온다는 것을 말이다.

소년은 영악해졌다. 자신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기세였다. 그는 이 상황을, 아니 부모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돈이 거기에 있었고,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있었다. 소년은 차가운 지폐를 택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믿었다. 나이 스물의 일이었다.

그가 스물 둘이 되었을 때, 사랑이 찾아왔다. 사랑은 지폐보다 훨씬 따뜻했고, 그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소년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며, 그러므로 행복이란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침내 행복의 정점에 다다른 것이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스물 넷. 사랑이 떠나갔다. 그는 낙담했다. 아니, 심지어는 생을 포기하려고도 했다. 인간에서 행복을 뺀다면 그건 시체에 불과해, 사랑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부정적인 생각은 멈출줄을 몰랐다. 그럴때마다 그는 부모를 찾았다.

노부부는 이제 더이상 그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 아니, 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더는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랑이 메마를 수도 있구나, 소년은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아하! 사랑이 전부는 아닌 게로군.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들과는 어떤 다른 말도 통하지 않았다. 소년은 생각했다. 무언가를 기대하기에 그들은 너무 늙었다고, 시간도 무심하시지.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몇년 뒤, 소년은 다시 사랑을 했다. 그러다 어느 멍청한 여자와 평생을 약속했다. 노부부는 탈진 직전의 몸을 이끌고 결혼식장을 찾았다. 그들은 맨 앞 줄에서 누군가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관람했다.

그렇다. 그들은 하나의 경기를 관람한 것이었다. 이왕이면 점수가 많이 나는 야구 경기를 관람했던 것이다. 와중에 둘 모두 포수를 자처하느라 그라운드에는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장내가 조용해지고, 흔해빠진 응원가에 소년이 마운드에 올랐다. 그가 구사한 것은 150km도 넘는 강속구였다. 어느 멍청한 4번 타자는 맥없이 웃으며 공을 바라보기만 했고, 두 포수는 공을 받으려 안간힘 썼다. 온몸이 저릿하고 조금은 뒤로 물러날 만큼 아픈 공이었지만 포수는 가장 앞에서 기어코 그 공을 받아냈다. 눈물이 땀처럼 흘렀다.

늙은 포수는 이제 은퇴를 준비한다. 늘 몸이 말썽이었다. 하나는 원래 몸이 약했고, 다른 하나는 부상을 당했다. 구단은 어느 여름, 먼저 한 명을 처분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나머지 선수 역시 방출되었다.

늘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던 포수의 자리가 허전하다. 투수는 고민한다. 이제 누가 공을 받지? 그러거나 말거나. 구단은 올해도 리그 우승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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