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낙천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

주마등과 100% 낙천주의

by sthyoonique

본격적인 이야기 전에, 다들 주위에 낙천적인 사람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당신과 친밀한 가족일 수도, 그보다는 거리가 있는 지인일 수도 있겠다. 그게 누구든, 앞으로 이 글을 읽는 도중 특정인이 떠오른다면 즉시 생각을 지울 것을 요구한다.

당신은 절대 그에 대해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낙천적'이라는 단어와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을 연결 지어 생각할 권리가 없다. 당신은 그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 365일 24시간 함께한다 하더라도 그의 뇌를 해부하지 않는 이상 당신은 그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아니, 설령 뇌를 해부한다 해도 당신이 그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때로는 그조차도 자신의 뇌 가장자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고등(高等)한 인간에게 주어진 의무와도 같은 일이며, 더 나은 존재로 진화하기 위해 행할 수 있는 가장 일차원적인 움직임이다.

이제 이 글은 당신에게, 오로지 당신과 1.5kg짜리 소우주, 당신의 뇌에게 바치는 글이다.

주마등(走馬燈)

: 등(燈)의 한 가지. 등 한가운데에 바퀴를 붙인 가는 대오리를 세우고 종이로 만든 네 개의 말의 형상을 단 것으로, 촛불로 데워진 공기가 종이 바퀴를 돌려 말 형상이 따라 돈다. 무엇이 덧없이 빨리 지나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출처;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주마등은 사람이 죽기 직전 그동안의 삶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 이에 관해 재미있는 연구가 있었다. 알트메트릭 지수(*Altmetric Score, 알트메트릭은 런던 기반의 학술 문헌에 관한 온라인 활동을 추적하는 스타트업 기업으로 논문의 영향력과 가치, 주목도를 측정하는 대안 지수(Alternative metric)라는 뜻의 알트메트릭 지수를 제안함.) 4050에 달하는, 그야말로 요즘 '핫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4050이면 그 연구의 주목도는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필자)

이 연구가 더욱 흥미로운 점은, 우연히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라. 머리와 팔, 목으로부터 기계로 연결되는 수십 개의 고무로 된 차가운 선이며, 신경을 거스르는 갖가지 기계음과, 사방에는 정신없이 이야기 나누는 고글을 쓴 하얀 가운의 과학자들. 누구도 자신 또는 사랑하는 이의 임종이 그러한 모습이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이렇듯 피실험자의 부재 외에도 여러 이유로 다수의 국제 연구진들은 연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낙상으로 뇌출혈이 발생한 87세 남성이 있었다. 치료를 위해 뇌파를 검사하던 그는 검사 도중 돌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렇게 우연히, 그가 심장마비로 사망하기까지 사망 전후 30초의 시간이 뇌파로 기록되었다. 연구진이 발견한 것은 다음과 같았다. 주마등이 인간을 스쳐갈 때, 죽기 직전 인간의 뇌파는 꿈을 꿀 때와 동일한 모습을 보이며, 이 뇌파 간의 상호작용은 뇌로 흐르는 혈액이 멈추고도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이 본 것은 무엇일까. 평소와 같은 꿈이었는가? 악몽을 꾸었는가? 혹은 1분짜리 단편 영화를 보았을 수도 있다.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죽은 이는 말이 없으니까. 그의 눈은 마지막 초점을 잃었다. 입술은 새파랗게 굳어 다시는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죽은 이는 자취를 남긴다.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암호와도 같은 그 자취를 저마다의 키로 해독하는 고등한 인간 존재들이다.

나는 이제 내가 해석한 암호를 당신께 풀이한다. 이는 일종의 제안이며, 그렇다면 나의 목적은 당신을 설득하는 데 있다. 자, 연구가 지나간 자리에 몇 가지 물음이 남았다. 그가 지구를 뜨기 전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말해, 그의 1.5kg짜리 소우주가 영원히 소멸되기 전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최후(最後)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1분짜리 영화의 끝은 해피엔딩이었을까?

100% 낙천주의. 나의 제안이다. 그야말로 뼛속부터 털끝까지 낙천주의라는 뜻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에 100%는 없다지만, 100%를 향해 달릴 수는 있다. 이제 나는 당신이 왜 달려야만 하는지, 왜 달리는 것이 멈추는 것보다 항상 옳은지 설득하려고 한다.

우리의 몸이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약 30조 개의 세포가 한데 모여 우리 몸을 이룬다. 당연하게도, 인간이 죽듯 세포도 죽는다. 이때 흥미로운 점은, 우리의 가장 작은 단위인 세포도 일종의 주마등을 본다는 것이다. 세포는 죽기 전 평소보다 활발한 신호를 보내는데, 우리는 기억을 담당하는 세포가 죽으면 기억 회상, 시야를 담당하는 세포가 죽으면 환한 빛을 보게 된다고 한다.

30조에 달하는 세포가 죽을 때, 저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을 떠올리는 셈이다. 왜 수많은 세포들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고 떠나는가? 왜 가장 마지막에 남는 것 가장 아름다운가? 반대로, 왜 가장 아름다운 것 마지막에 남는가?

아름다운 것이 마지막에 남으니까. 당신이 100% 낙천주의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다. 즉, 우리는 필연적으로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마침내 최후의 순간, 우리는 다시없을 마지막 꿈을 꾼다. 다시는 상영되지 않는 마지막 영화가 시작된다. 수십 년이 몇 개의 장면으로, 수십 명이 몇 개의 배역으로 요약된다.

영화의 내용이 우리 스스로에게 달렸다. 노력해야 한다. 영화에 기록될 만한 경험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가치 있는 시간을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신의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의 마지막 꿈은 달콤하기 그지없는, 하늘을 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어야만 할 것이다.


(부록)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낙천적으로 살기 힘든 세상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지쳤고,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TV는 정치 또는 사건 사고만을 다룬다. 언론은 맨홀에 빠진 고양이가 구출되었다고 일일이 보도하지 않는다. 부정과 회의, 슬픔과 분노에 온종일 노출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그럴 때마다, 당연한 이치들을 떠올려라. 아름다운 것이 마지막에 남는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이치들 말이다.

왜 불을 켜면 환한 것인가? 왜 어둠은 공포감을 조성하는가? 왜 행복한 순간들은 빛나는가? 왜 사랑하는 사람은 빛나는가? 왜 그 사람이 웃을 때 나는 눈을 떼지 못하는가? 왜 타인의 미소가 나까지도 웃음 짓게 하는가? 도대체 왜, 날씨가 좋으면 기분이 좋아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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