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 시인의 <겨울바다>를 읽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by sthyoonique

겨울바다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때로 인간은 절망적 상황에 직면한다. 누구나 그런 상황을 겪으므로 결국 인간은 다른 누군가를 탓하는 것이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상황을 받아들인 인간은 앞으로 나아간다. 살면서 터득한 저마다의 지혜로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간다. 시에서처럼 행여 진실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거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말이다.

생각해보자. 무엇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단 말인가. 원인을 크게 둘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겠다. 먼저, 유형(有形)의 것이 있다. 눈앞의 위협만큼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 작은 어촌 마을, 젊은이들은 모두 마을을 떠나고, 여기 평생을 바다와 함께한 늙은 어부가 있다. 바다를 어루만지며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 수백 리 바닷길은 집 앞 돌담길만큼이나 훤하다. 그런 그에게, 그의 주름진 눈에 30m 높이의 거대 해일이 들어온다. 애석하게도 온 우주를 삼킬 듯한 해일은 평생을 자신과 함께한 어부 따위 안중에도 없다. 노인은 절망한다. 자신이 평생을 알던 바다와는 다른 그 모습에 크게 절망한다.

두 번째로,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를 좌절시키기도 한다.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은 머릿속에만 맴돌 뿐, 끄집어 불태워버릴 수도, 삭제 버튼을 눌러 없애버릴 수도 없다. 어떤 이는 함께했던 시간을 잊지 못해 평생을 후회하며 살기도 한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름다운 동시에 잔인하다. 즉, 눈에 보이지 않아서 아름답고, 눈에 보이지 않아서 잔인하다. 사랑. 누구도 만져본 적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름답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랑의 범위는 내가 확장하는 그곳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을 한다. 그렇게 그가 줄 수 있는 모든 걸 주었을 때, 상대방은 끝없는 행복과 동시에 날카로운 무기를 손에 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사랑이 막을 내리면, 날카로운 흉기는 곧장 상대방에게로 가 깊숙이 꽂힌다. 잔인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절망적 상황을 받아들인 인간의 다음 숙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결국 상처받은 이가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진해일로 폐허가 된 마을에는 자원봉사자들의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끝이 녹슬었던 노인의 고기잡이배와 반평생을 머문 그의 보금자리도 온데간데없지만 정부는 그를 위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마을 사람들을 위한 작은 고기잡이배도 제공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노인은 분명 절망했다. 평생을 함께 한 바다가 여전히 낯설게만 느껴졌다. 이제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흐르는 것은 잔잔한 파도 외에 묵묵한 시간뿐이었다. 자원봉사자들도 하나둘 마을을 떠났고, 주민들은 다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으며, 마을은 다시금 활기를 띠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눈에 보이던 보이지 않던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제하는 것은 언제나 시간이었다. 시간.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그것만이 모든 것을 구제할 수 있다. 이는 시인이 제 발로 겨울바다를 마주한 이유이기도 하다. 겨울의 바다 아래에는 인고의 시간이 있었고, 해답이 있었고, 뜨거운 영혼이 있었으며, 그가 찾아 헤매던 미지(未知)의 새들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비로소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노인은 바다가 겁났지만 주민들의 도움으로 다시 배를 탈 수 있었다. 시간은 더 흘렀고, 노인은 모아놓은 돈으로 작지만 아름다운 배 한 척을 샀다. 이제 그는 다시 바다로 나섰다.


고대신문 1948호- 고대인의 시선

2022년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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