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청소기의 포효
기계는 정직하다
묻지 않는다 사연도 순서도
먼지 머리카락 부스러기
발 밑에서 떨어진 하루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
끝내 쓰이지 못한 얼굴들까지
소음 속으로 끌어당긴 다
투명한 통 안에서 각자의 형태를 포기한 채
서로를 밀며 회전한다
가벼웠던 것들은 여기서 무게를 얻고
의미 있던 것들은 납작해진다
속도는 일정하다
멈추는 법을 배운 적 없는 기계처럼
전원이 꺼지면 바닥은 잠시 말끔 해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공기가 돌아온다
쌓인 것들을 한꺼번에 털어 넣는다
쓰레기봉투 안에서 모든 것은 구별을 잃고 눌린다
투명하던 것들이 비닐 속에서
이름 없이 버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