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걱정, 기다림... 그리고 피곤함의 집합공간
1월 초의 응급실은 지독하게 불편하고 피곤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살며 수많은 현장의 소음을 접해왔지만, 이곳의 소음은 결이 달랐다.
누군가의 절규가 들려오는데, 내 마음은 차가우리만큼 냉정했다. 그 비명이 슬픔이 아닌 그저 피곤을 가중시키는 '소리'로 들리는 나를 보며,
내가 무심해진 건지 아니면 삶의 끝자락을 너무 많이 봐온 나이가 된 건지 문득 궁금했다.
내 마음을 더 어지럽게 한 건 엄마였다. 엄마는 어떻게
넘어진 건지... 동네 병원을 갔었는데 왜 더 아픈지...
일주일을 혼자 끙끙 앓으며 버텼단다. 그 고통을 참아내면서도 딸에게 아무 말하지 않은 건, 아마도 매번 이어지는 나의 잔소리가 아픔보다 더 싫었기 때문일 거다.
"엄마, 아프면 바로 말하라니까!", "왜 또 참았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뱉은 나의 날 선 말들이 엄마의 입을 닫게 만들었을 거다. 그러지 말아야지.
나도 속상하니까 표현이 그렇게 되나 보다.
엄마가 더 나이가 들면, 이런 상황은 더 자주, 일상이 되는 삶이 될까?
주변을 둘러보니 보호자도 없이 혼자 온 노인들이 꽤 많았다. 그 사람들은 응급실이 익숙해 보였다.
타인의 고통에 무뎌진 응급실의 하얀 조명 아래서 나는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미리 맛본 기분이었다.
응급실은 기다림의 무한반복이었다.
도착해서 접수하고 30분. 문진하고 30분이 지나도
아무 말이 없는데 엄마는 점점 더 아파서 괴로워하고.
결국엔 내가 먼저 요청을 했다. 침대에 누워서 기다리면 안 될까요? 그제야 배드를 안내해 줬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
" MRI를 찍어야는데 2시간 기다린 사람도 아직 못 찍었어요 "
그렇구나... 아파하는 엄마를 참으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이 그렇게 바빠 보이지는 않는데...
재촉하고 싶지만.,. 그럼 더 늦게 해줄까 봐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둘러보게 되었다.
건너편 아줌마는 계속 전화통화를 했다.
어디가 아프고 혼자 왔고 보험이 되고... 아무도 저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저 건너편 할머니의 신음소리는 너무 커서 듣기 싫었는데...
의사와 간호사들은 무덤덤한 듯 보였다.
동생이 와서 잠깐 나갔다 오다가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을 봤다. 정말 위독해 보이는 환자.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집중하고 있었다.
정말 2시간이 좀 안되어 MRI를 찍었다.
이제 전공의 선생님만. 기다리면 되는데...
병동에서 내려와야 한단다. 30분쯤 후에
MRI 결과를 가지고 선생님이 왔다.
요추 2번이 부러졌단다. 방법은 누워있기.
수술은 거의 안 한단다. 진통제와 영양제 링거를 처방해 주고 2주 후 외래를 예약하고 2주분 약을 처방해 주고 선생님은 사라졌다.
링거만 맞고 돌아가란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2주 후의 외래 결과를 그땐 몰랐다
사실 나에게 응급실은 나름 익숙하다.
어려서부터 종종 들어왔었고 일 년 전 암 발견 전에도
정신을 잃고 실려왔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 아빠가 지금은 남편이
참 많이 힘들었겠구나.
나는 아파서 정신을 못 차렸었지만
옆에서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날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돌봐줄
차례가 될 거라는 걸...
빨리 건강해지자. 가족들에게 폐 끼치지 말고...
아무 일 없이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감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