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옷을 샀다, 집에만 있는 나를 위해...

집순이에게도 가을은 온다.

by yoyo

요즘 나는 잠이 많아졌다.

아침에 눈을 떠도 다시 눕고 싶고, 낮에도 쉽게 몸이 무거워진다. 아직도 체력이 회복이 안된 것 같은데, 운동을 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싶다.

하루가 짧아지는 건 내 탓 같지만, 창문 밖 세상은 조금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햇살은 묘하게 차가워지고, 바람은 서늘하게 바뀌었다.

여름은 밀려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밤이면 귀뚜라미 소리가 운치 있게 들려온다.

며칠 전부터, 나는 가을옷을 계속 사들였다.

그동안 참았던 욕구가 해제된 것 같아.

올해 유행하는 중세풍 블라우스, 짙은 색 재킷,

디자인틱한 롱스커트 등

옷장은 단숨에 계절과 유행을 따라잡았다.


근데 어딜가지? 지금 난 출근을 안 하는데

요즘 내가 발걸음을 옮기는 곳은 병원과 집뿐이다.

아주 가끔씩 친구를 만나고...

저 옷들을 다 입기 전에 계절이 바뀔 것 같아.

태그가 붙은 채 옷걸이에 매달려,

마치 "나를 언제 입을 거야?'물어보는 듯 서 있다.

문득, 이 옷들이 나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옷들을 기다리게 된 건 아닐까 싶다. 옷장을 열 때마다 잠시 위로가 스며들지만, 곧 후회가 밀려온다.

집에만 있는데 왜 이렇게 옷을 샀을까.

정리해야 할 옷도, 버려야 할 물건도 많은데.

옷을 보며 흐뭇했던 기분은 찰나인 것 같다.


일 년 전 병원에서 생각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내 물건들을 정리하자. 이제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옷과 화장품들... 내가 정리하고 가자"

이제 안 아픈가 보다. 옷장 속 색감과 촉감이 잠시나마 답답한 마음을 달래준다.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언젠가 이 옷들을 입고 걸어 나갈 날이 올 거야.”

하지만 잠이 많아졌다는 게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

일종의 회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몸이 회복하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계절을 따라잡지 못하는 건 나뿐이지만, 옷장 안에서는 계절이 나를 기다려준다.

나는 오늘도 이불을 당겨 덮는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작은 약속이 남아 있다. 가을엔, 이 옷들을 꺼내 입고 바람 부는 거리를 걸을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가을에는 호수 한 바퀴씩 돌게 될 거라고.


계절은 늘 그렇게, 내가 따라가지 못해도 먼저 와 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계절을 기록한다.

어쩌면 마음이 먼저 가을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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