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암에 걸렸고. 다시 디자인할 수 있을까?(1)

어느 디자이너의 인생 2막 이야기

by yoyo

23년 동안 인테리어 디자인을 해왔다. 많은 야근과 밤샘작업은 내 몸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하는 이유는 좋아하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너무 싫어서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수백 번이었지만...
그래도 요즘은 야근이 조금씩 줄어드는 문화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여름에 옮긴 새 회사는 출근 첫날부터 야근이었다. 이사라는 직위의 부담감. 내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감. 그리고 내가 잘 안 해본 병원이라는 공간.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협력. 아무튼 나는 아주 잘 해내고 싶었다.
야근은 거의 매일 계속되었다. 새벽에 끝나기도 해서 몇 시간 못 자고 출근했다.
점심시간에도 김밥 먹으며 일을 했고
강한 피로회복제와 진통제와 기타 등등 약봉지가 늘어갔다. 몸이 좀 이상하다 생각되었는데... 피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약국만 드나들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허탈한 마음만 남았을 때
미루고 버텨왔던 산부인과에 큰맘 먹고 들렀다.
염증이 있나 했는데 "혹이 있는 것 같다 좀 이상하다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라고 말했다.

혹이라고 뭐지? 귀찮게...
다행히 예약이 빨리 되어서 십여 년 만에 과장님 뵈니 반가웠다. 일단 기본검사하고 며칠 후 전화 왔다. 빨리 오란다. 왜???
뭐 가야지. 다시 검사. 기다림.
과장님 말은 자궁내막암 3기. 열어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전이 있을 수 있다. 빨리 하는 게 좋다.
어떻게 할까요? 물어서... 입원할게요 했다. 신기하게도 울보눈에서 눈물이 안 나왔다. 엄마도 덤덤해 보였다. 남편도 빨리 수술해야지.

모두들 아무 일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3일 후 수술이다. 진행이 빨라서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2시간 예정인 수술은 4시간이 걸렸고 난소까지 전이돼서 다 제거했다고 했다. 그럼 난 이제 갱년기야? 갑자기 너무 서러웠다.
여태 참은 울음이 막 폭발했다. 수술 후 통증을 핑계 삼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아픈데?
왜 내가 암인데? 난 그냥 열심히 살았을 뿐이야. 스트레스 좀 받고... 잠 좀 못 자고.... 근데 나한테 남은 건 병뿐이네
계속 찔러대는 주사들이 날 가만히 안 둔다. 혈관이 약해서 문제다.
어깨아래에 케모포트삽입을 위해 수술 일정을 잡았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항암도 해야 한다. 9번에서 12번 정도. 암을 몰랐던 나는 수술만 하면 다 낫는 줄

알았다. 그런데 뭘 하라고? 항암? 12번? 참나...

수술의 통증이 겨우 가라앉을 즈음 1차 항암을 시작했다. "선생님 저 아프다고요~~~"말은 못 하고
링거를 맞기 시작했다. 간호사선생님들이 비닐옷에 장갑을 끼고 병실로 들어왔다. 주사약이 손에 묻으면. 안된단다. 그럼 내 몸속으로 들어가는 건 괜찮나요? 묻고 싶었다. 암세포 좋은 세포 같이 죽인데.

나한테 좋은 세포가 있었나? 다 비실거리는데...

덕분에 나는 정신 차릴 틈이 없었고 더 이상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족들도 괜찮아 보였다.
그렇게 나의 1년이 가버렸다. 두 번째 항암 때 긴 머리가 쑥쑥 빠졌다. 신기했다. 그리고 속상했다
눈썹도 없어졌다. 그럴 줄은 몰랐는데


9번의 항암이 끝나고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하신다.

하지만 계속 검사받고 식습관 관리 하라고 하신다.

가벼운?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긴 이 상황이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몸에 이상이 느껴졌을 땐
그저 피곤한 줄만 알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20년 넘게 ‘아프면 안 되는 사람’으로 살아왔으니까.

아니 아파도 1순위는. 일과 아이였다

회의, 디자인, 도면, 검토. 회의. 디자인… 무한반복
나는 늘 "지금 이 프로젝트 끝나면"이라는 말로
"쉼"을 미뤘다. 만성피로가 된 몽둥이는 쉬어도 쉰 게 아니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결국,
암이라는 이름 앞에서 멈춰 선 것 같다.

이후의 시간은,
“살아야겠다”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목표만 남았다.

그런데 어떻게 살지?

그리고 지금,
나는 회복 중이다. 가끔은 나을 수 있을까 생각도 한다.
조심스럽게 걷고 있고,
다시 한번 연필을 들어볼까 고민하는 중이다.
내가 다시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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