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어샤이머의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을 읽고
대학교 2학년 무렵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수능은 세계를 향한 나의 호기심을 억눌렀고 정해진 공부만을 강제했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이공계 대학에 진학했지만 인문학과 사회학을 향한 욕구가 더 컸던 것 같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국가는 무엇이며 국제정치는 무엇인지 관심을 가졌다. 그때 접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은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작은 단위에서의 개인은 윤리적 삶을 살라고 듣는데, 왜 국가는 비윤리적 계약과 전쟁을 선택하게 되는가. 미어샤이머 교수는 그 답을 현실주의라 말해주었다.
서평을 시작하기 전, 본인은 전공이 국제정치가 아니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인문 사회 서적을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과학과 동일하게 어렵고 세밀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읽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학문을 평가절하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해당 학문 전공자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모르는 부분은 을유문화사의 세계정치론(존 베일리스 저)을 참고했다.
논의를 시작하기 전 국제정치의 기본 개념들을 먼저 정리하겠다.
힘/권력 Power : 한 개인이나 집단이 타인의 의지에 반하더라도 자기 뜻을 관철할 수 있는 능력, 영향력
권위 Authority : 힘과 달리 구성원들이 그 힘을 정당하다고 인정, 자발적으로 따르는 힘. 전통적 권위, 카리스마적 권위, 합법적 권위로 구분(막스베버, 1910)
문화 : 기초가 되는 관계의 양식. 사회의 심장에 놓여있는 공유된 실천과 믿음의 집합.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 특정 사회에서 어떤 것이 좋은 삶인지를 정하며, 다른 사회와 구분되는 특징(p.55)
종족: 공통의 후손이라는 주관적 믿음(막스베버, p.162 재인용)
정체성 : 개인이 다른 개인/집단과 관련하여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p.55)
정치 제도 : 일상생활을 규정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규칙을 만드는 통치 기구(p.55)
사회 : 일상적이고 조직화한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큰 집단. 사회 구성원들은 상호 의존적. 대부분 주권을 가짐(p.55)
민족(nation, p.156-170) : 사회, 문화적 단위. 1) 생존 가능성을 증진, 2) 실존적 서사 제공(심리적 욕구 만족)
구성 요소
- 하나라는 감정 : 서로에 대한 책임감, 평등한 주체
- 특별한 문화 : 두터운 문화, 얇은 문화 → 정체성과 자부심/작은 차이에 대한 나르시시즘(프로이트)
- 남보다 잘났다는 감정 : 쇼비니즘(자국민 우월주의)
- 심오한 역사
- 신성한 영토
- 주권 : 최고의 정치적 권위가 어디에 있는지 (그린버그, 2017)
국가(state, p.172) : 법적·정치적 단위, 특정 영토 내에서 주권을 행사.
생존(『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 정치적 독립과 영토 보전 주권의 보존, 외부의 지배, 종속 피함 권력 추구의 동력 → 군사력 극대화
책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다.
1. 민주주의 평화론에 근거를 둔 냉전 이후 미국의 자유주의 외교정책을 비판
2. 자유주의, 민족주의, 현실주의의 상호작용
3. 트럼프 행정부에 현실주의 정책을 제안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구성은 개괄(1장), 인간 본성과 주의(ism)들 (2장), 정치적 자유주의의 정의와 문제점(3-4장), 자유주의 영향과 정책적 실패(5-6장), 자유주의 세 가지 이론의 결함(7장), 미국 외교정책 제언(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 전반에 걸쳐 작가는 세 가지 이론을 설명한다.
자유주의는 개인을 분석단위로 삼으며, 국가 간 관계보다는 모든 개인이 동등한 권리를 지닌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무엇이 ‘좋은 삶ʼ인지를 각자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자유의 가치를 중심에 둔다. 자유주의에서 공유되는 진보에 대한 믿음 냉전 이후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ʼ에서 잘 나타난다.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 마 로 이어지는 미국의 행정부 수장들은 자유주의 신념을 바탕으로 외교정책을 수립해 왔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과 린든 B. 존슨의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으로도 대표된다. 미어샤이머는 공화당도 정권을 잡았을 경우 진보적 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한다고 이야기한다(p.133).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적 이상주의는 배제했다.
현실주의는 아래 세 원칙으로 설명한다.
- 국제정치의 중요 행위자는 국가(state)이며, 국가보다 상위 중앙 집권적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국제체제는 무정부적(anarchy)이다.
- 모든 국가는 생존을 추구하기 위해 공격적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 국가들은 서로의 의도를 확신할 수 없다.
=> 국제정치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국가 간 권력투쟁이며 구체적으로는 지역 패권을 차지하기 위함이다. 이는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으로 나타난다.
민족주의(Nationalism)는 민족을 정치 단위로 삼으며(어니스트 겔너), 민족국가의 형성과 자결권(self-determination)을 강조한다. 민족주의는 공통의 문화를 형성하고 국민과 국가 간에 끈끈한 유대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그렇지 못하면 서로 다투게 될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자유주의와는 반대로 공동체를 강조하며, 집단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중시한다.
누군가 어떤 정치 이론을 지지한다는 것은, 그 이론의 합리성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가치관에 따른 성향 차이이기도 하다.
p.61 모든 정치적 행동은 그 자체로 무엇이 선, 즉 좋은 삶 혹은 좋은 사회인지 표명하는 것이다. (레오 스트라우스 재인용)
p.84 집단에 대한 개인들의 애착은 집단의 단결성을 촉진시킬 것이 분명하다. 반면 집단에 대한 환멸감이 널리 퍼져 있는 경우 집단은 쇠락하고, 그 집단을 대체할 새로운 집단이 탄생하게 된다....... 이 같은 경우 문화의 힘만으로 사회의 해체를 막는다는 것은 역부족이다. 사회의 결집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세 가지 다른 요인이 더 존재한다. 하나는 외국이라는 귀신(bogeyman)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이 외부의 귀신이 야기하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하나로 뭉치도록 동기부여한다....... 그러나 사회가 와해되는 것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대체물이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정치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개인적으로 최근 캄보디아 사건과 반중정서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국내 캄보디아 식당에 쏟아지는 '혐오 전화', 최대 징역 5년 실형 가능하다 - 로톡뉴스
청년층 스며든 반중 정서 자극해 '혐중 몰이'... 보수의 위험한 도박 | 한국일보
1주일간 중국에 부정적인 게시글은 총 5,230건에 달했다. 하루 평균 747건이다. 중국의 부정선거 개입이나 헌법재판관이 중국인이라는 등 중국 관련 허위·왜곡 정보를 담은 글들이 대다수였다. 위 기사, 한국일보, 18 Feb. 2025,
중국의 모든 것을 싫어하는 핵심 집단, 누굴까? < 사회 < 기사본문 - 시사IN
국가라는 단위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집단의 결속을 위해 외부 적을 규정하고 공격하는 행위는 오래도록 효율성이 입증되어 왔다. 다만 한국을 민족주의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 단일 민족 구성과 3.1 운동에 근간을 두었기 때문에 한국을 민족주의 성향으로 분석하는 글을 많이 봤지만, 나는 전통적인 민족주의와는 궤를 달리 한다고 생각한다. '집단에 대한 개인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와 다르게 한국의 그것은 중국을 제외한 강대국을 추종하는 극단적 개인주의와 능력주의에 가깝다. 이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불관용적 사회 때문일 수도 있지만, 피식민지 시절의 파괴된 정체성과 그 자리를 꿰찬 코스모폴리탄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식민시절 민족주의가 가졌던 결집성과 의의를 무시하지 않는다. 또한 민족주의가 자유주의보다 인간의 본성과 잘 맞는다는 저자의 주장에도 공감하는 편이다(p.189). 세계 2차 대전 이후 민족주의는 하나의 금기어가 되었지만, 기나긴 역사만큼 큰 영향력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p.109 자유주의의 역설 …… 그들을 ‘각자 원하는 대로 살게 놔둬라’라는 방식으로 대한다면 그것은 정치 체제를 붕괴시키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얘기했던 것처럼,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혼재되어 있을 때 자유주의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p.182).
저자가 반박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적 자유주의는 개인을 중시하며, 천부의 권리를 핵심 가치로 삼는다. 이는 현대에서 두 가지 형태로 분류될 수 있는데, 언론의 자유와 사유재산권, 그리고 작은 정부를 선호하는 일상적 자유주의 modus vivendi liberalism와 정부의 개입을 선호하는 진보적 자유주의 progressive liberalism가 그것이다. 두 분파는 국가의 사회공학적 능력, 즉 정부의 개입이 자유를 증진시킬지에 대한 견해 차이로 나뉜다.
p.99 진보적 자유주의의 근간은 첫 번째 원칙들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공학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이와 결부된 개인의 권리에 관한 확장적 관점이다.
그는 포퓰리즘적 정책, 종전 후 군인 연금 등의 예를 들며, 두 분파 중 진보적 자유주의가 일상적 자유주의를 누르고 승리를 거두었다(p.99, p.134-139)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저자가 해당 책을 집필한 2018년도에는 이미 트럼프 1기 정부가 집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구분한 정치적 자유주의의 두 분파에서 경제적 신자유주의는 일상적 자유주의와 궤를 같이 한다고 느꼈다.
신자유주의는 노동 시장 유연화, 민영화, 정부 보조금 축소와 같은 정부의 개입이 아닌 개인의 자율성과 시장 중심 원리를 중시하는 이념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감세, 규제 완화 및 정부효율부 등은 신자유주의적 이념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외교정책 연구 집단과 비정부기구는 (진보적) 자유주의 사상의 엘리트로 구성되어 있고, 트럼프는 이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에 근거하고 있다. 때문에 전통적인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고립화 정책을 무역 자유화 부문에서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런 반동 현상이 미국뿐만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적 자유주의 진영의 완전한 승리로 보기에는 그에 대한 반발이 크다.
저자가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좋은 삶에 대한 보편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p.119)
p.126 진보주의자들의 두 가지 버전 모두는 같은 약점을 공유하고 있다. 양자 누구도 왜 이성은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궁극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거나 혹은 자유주의 사회에서 엄청난 정도로 관용을 증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p.118 드보르킨은 “자유주의의 기본 도덕은 인간들이 반드시 그들 정부로부터 동등하게 대 우받아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이는 정치적 도덕에는 옳고 그름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ˮ고 썼다.
도덕을 기본 논리로 깔고 가는 자유주의에서 이것은 큰 맹점일 것이다. 다만 나는 이 주장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선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윤리학의 영역이며, 현재까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G.E. 무어, 2014). 다만 좋은 삶, 선에 대해 아주 낮은 단계에서 합의하는 것은 가능하며 그것이 형상화된 게 인권, 헌법과 국제법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정치 전문가에게 좋은 삶에 대해 일관된 관점을 요구한다는 것은, 항공우주학자에게 완벽한 수학 공리계를 증명하라는 것과 같다. 과학자가 거인의 어깨 위에서 논증을 쌓듯, 현재의 인간 권리란 그 탐구에서 도출된 결과물이기에 존중해야 한다.
또한 좋은 삶, 선에 대해 합의가 불가능하다면 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다시 말해 전쟁이 나쁜가?라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뒷부분에서 자유주의가 오히려 정의의 전쟁을 일으키며, 현실주의 외교 정책이 전쟁을 방지한다(p. 까먹음)라는 주장 또한 모순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진보적 자유주의자 중 경계 없는 진보주의(p.117)로 평가되었던 스티븐 핑커는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역사가 진행될수록 폭력(전쟁 빈도)이 줄어들었음을 주장했다. 책 내 인용된 논문 중 하나로, UN 평화유지군(PKO)의 존재가 전쟁의 재발 위험을 80% 정도 크게 감소시 킨다는 통계 자료가 존재한다(Virginia Fortna, 2008). 미어샤이머는 동일한 책에서 정부의 통제력이 살인의 빈도를 줄였다는 걸 인용한 걸 보면 관점 차이가 흥미롭다(p.233)
확실한 것은 현실주의마저도 국내 도덕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p.44 자유주의에 대한 나의 관점은 국내적인 측면과 국제적인 측면이 다르다. 국가 내부에서의 자유주의는 선을 위한 진정한 원동력이며, 개인적 자유에 특권을 부여하고 보호해 주는 나라에서 사는 일은 대단히 소망스러운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좋은 삶에 대한 보편적 합의가 가능한지 아닌지에 따라, 진보적 자유주의는 두 가지 학파로 분류될 수 있다(p.120-122) ;경계 없는 진보주의(Unbounded Progressivism)와 경계 있는 진보주의(Bounded Progressivism).
선과 도덕에 대한 개념이 합일되지 않기 때문에 경계 있는 진보주의에서는 관용(tolerance)을 강조한다. 다만 상대주의가 아닌, 자유를 미덕으로 하는 자유주의의 특성상 이것이 잘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다고 몇몇 학자들은 이야기한다.
p.123 정치 철학자 조지 클로스코는 “여러 증거들에 의해 살펴보았을 때, 자유주의 시민들은 대단히 불관용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십자군 전쟁과 테러와의 전쟁은 자유주의 불관용의 예시일 것이다.
저자는 자유주의 진영의 공통된 3가지 이론을 반박한다(7장). 민주국가끼리는 전쟁이 줄어든다는 민주주의적 평화론, 경제적 의존이 높을수록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경제적 상호 의존론 그리고 제도와 규율에 복종할수록 이득을 보기 때문에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적 제도주의가 그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꽤 설득력 있어 보였다.
p.92 절대적인 것이 있다는 생각은 타협과 관용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은 도덕적인 상대주의자라고 인정한다면, '각자 원하는 바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어라'라는 시대정신이 지배할 것이며 그러한 시대정신은 세상을 더욱 평화로운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이 부분이 참 나이브하다고 생각했다. 상대주의 본연의 논리적 문제점은 지난 서평에서 다뤘으니 생략하기로 하고, 다른 비판점들을 짚어보자.
책 『분열하는 제국』에서는 미국이 엄밀히 말해 하나의 국가가 아닌, 문화·역사·정체성이 서로 다른 11개의 지역민족(regional nations)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복잡해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 이와 같은 사례는 국가를 단순히 하나의 공동체로 볼 수 없음을 시사한다. 국가와 민족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세계정치론, p.391). 알카에다와 같은 범국가적 테러 연계망이 성장하고 많아지는 현상도 이를 뒷받침할 것이다.
p.78 개인들은 상호 이익을 위해 사회와 정부를 형성하기로 선택한다. 그러나 개인들이 형성한 사회적 집단들은 본질적으로 개인들의 군집(aggregates of individual)이며 개인들의 정체성을 의미 있게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와 외교 분야에서 국가라는 단위를 채택하는 이유는 통수권자가 내리는 결정이 그 집합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2장에서 다룬 인간 본성에 대한 논리는 저자의 전공이 아니기에 논의의 깊이가 얕았고, 근거가 충분하지 않았다.
p.75 예로서 이성은 우리에게 있어서 생존은 가장 중요한 목표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가 살아있지 않다면 어떤 목표를 추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에서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다(= 생존을 최우선으로 한다)라는 명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 개인을 국가로 치환하는 이론의 합일성을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 집단생물학과 유전학에서 이 명제와 반대되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기적 유전자』 에서는 일벌의 자살공격을 예로 들며, 개체에게 중요한 것은 생존이 아닌 유전자 보존임을 말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나와 DNA의 일정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형제들을 살림으로써 유전자를 이어가는 것이다. 비슷하게 진화 심리학 서적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는 포유류의 진화 과정에서 '협력'이 생존 방식임을 증명해 냈다. (어쩌면 두 사례는 민족주의/공동체주의의 근거가 될 수도 있겠다.)
이런 사례들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통념을 뛰어넘어 협력이 본성일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죄수의 딜레마는 오로지 한 번의 선택을 가정한 반면에, 현실은 지속적인 선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런 반복 상황에서 과거의 배신(이기적인 행동)은 불리한 위치를 보장할 뿐이다.
현실주의자들은 국가들이 무정부상태에서 다른 국가와 경쟁하며, 경쟁의 속성은 종종 제로-섬 관계라고 묘사한다(세계정치론, p. 122).
p.231 이처럼 힘을 보유하기 위한 제로섬(zero-sum)적 경쟁은 때로 전쟁을 야기하기도 하고, 국제정치를 무자비하고 신뢰할 수 없는 영역이 되게 한다.
이는 각 나라를 참여자(player)로 하는 게임이론에 근거하고 있지만, 여러 비판론에서는 이 가정이 틀렸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도, 현재 많은 나라의 물질과 부는 자연 파괴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20세기 등장한 생태주의는 이러한 심각성을 국제정치, 전략에 도입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이러한 환경문제는 역설적으로 비정부기구(NGO)의 필요성을 증대시키는데, 모든 국가가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할 경우 초국가적 단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에 대한 비판은 아니지만, 자유주의에 대한 과도한 반감도 책을 비판할 수 있는 요소이다. 특히
자유주의가 엘리트들의 고임금 일자리 창출을 위함이며(p.210, p.224) 자유주의자들은 전쟁론을 읽어보지 않았다는 점(p.364) 등이 그랬다.
미국인 저자가 언급한 몇몇 부분이 시의성 있어 재미있었다.
p.194-5 사람들은 정치적 안정과 개인 권리가 상호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 대개 정치적 안정을 우선하게 되는데, …… 이 같은 논리는 상호 심각한 적대감을 가진 라이벌 집단들이 존재하는 다민족 국가에 특히 잘 적용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많은 사람들은 다른 집단을 억누를 수 있는 독재자를 선호하게 된다.
p.334 현재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언제라도 독재 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
p.202 로젠버그는 미국 사람들은 개인의 권리를 자신의 선호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위에 두 인용은 미국이라고 콕 집어 언급한 게 아니다)
p.105 뼛속까지 자유주의자인 토머스 페인조차 정부는 궁극적으로 분석한다면 “필요악 necessary evilˮ이라고 말했다.
이런 부분은 공감이 많이 되었고... 예전보다 내 성향이 바뀐 부분이 보여서 재미있었다.
현실주의 비판으로 서평 주를 이루긴 했지만, 아직까지 국가보다 더 나은 단위체를 찾지는 못했다. 특히 국제법이나 전쟁범죄 규정 같은 경우에도 선언적, 윤리적 의의가 있지만 실제로 처벌받으려면 국가의 압력이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모두 무기와 전쟁이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거겠지. 언젠가는 개인의 윤리성이 거시적인 선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
말하자면 사다리를 딛고 올라간 후에는 그 사다리를 던져 버려야 한다.
- L. Wittgenstein, 『논리-철학 논고』, 이영철 역 (1998)
최근에 읽었던 책의 마지막 문구를 인용하며 마친다. 처음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을 읽고 7년이 지나 속편을 읽어보니, 이제 미어샤이머를 졸업해야 할 때임을 느낀다. 현실주의의 의의를 인정하되 나에겐 더 나은 이론이 필요하다.
베일리스, 존. (2021). 세계정치론 (4th ed.). 을유문화사
Fortna, V. P. (2008). Does Peacekeeping Keep Peace? International Intervention and the Duration of Peace After Civil War.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어니스트 겔너 - 국가와 민족주의
헤겔 - 법철학
p.144 해겔은 유명한 책 법철학에서 명백하게 밝히고 있지만,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통일성은 상충적인 개념이 아니며 생동력 있는 정치체계를 산출하기 위해 합쳐질 수 있다고 보았다.
로버트 코헤인 - 헤게모니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