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떠나는 여자의 이야기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 를 읽고

어떤 여자는 연인을 찾고 어떤 여자는 술을 마시거나 기도한다.
어떤 여자는 집안을 가꾸고 어떤 여자는 낭비벽에 빠진다.
도망치는 여자도 있으나 근심거리가 바뀔 뿐
......
그중 어떤 여자는 악녀가 되어 소설을 쓴다
- 조지 고든 바이런, 『돈 후안』 중

여행을 가면 항상 책을 한 권 들고 간다. 여행지에 어울리는 책이면 더 좋고(강원도- 설국) 아니어도 괜찮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책을 다 읽고 기억에 남는 부분만 찢어오거나 한다. 그 여행지와 소설을 연결시켜 기억하는 나만의 독서법이다. 이번 부산 여행에서는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가 대상이 되었다. 비행기에서 읽었더라면 더 와닿았을 것 같지만, 어딘가로 떠나는 기분의 주인공과 비슷한 심리상황을 가지고 읽어서 매우 재미있었다.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는 1973년 쓰인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프로이트 상 문학부문을 수상했지만, 여성 작가의 입장에서 학계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았기에 정말 재미있었다. 오래된 소설치고 수위가 (꽤!) 높기 때문에 생략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기록용으로 올린다.


주인공인 이사도라는 시인이며 익명성 있는 섹스를, 약간의 수직적인 관계를 원하는 여자다(1-2장). 그래서 그는 환자로서 정신분석가와 결혼했는 지도 모른다.


p.480 "뉴요커, 유대인, 신경과민인 상류층 가정에서 자라서 정신분석의하고 두 번째로 결혼했고, 아이는 없고, 나이는 스물아홉, 얼마 전에 아주 에로틱한 시집을 출간해서 낯선 남자들에게서 이상한 전화를 받으면서 일련의 유명세를 치렀어. 대학가 낭송 여행, 인터뷰, 정신병자들의 편지 등등. 그 과정에서 완전히 탈진했어. 내가 쓴 시를 읽으면서 내 시 속에 형상화된 이미지와 나 자신을 일치시키고 싶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내 환상을 이루며 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고. 이젠 내가 나 자신이 창조한 가공의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p.188 운율은 형편없지만 메시지만은 분명했다. 굴복할 가치가 있는 남자를 만났더라면 우리가 기꺼이 굴복했으리라는 것.


남편인 베넷과 5년 동안 결혼생활을 지속했지만 그의 방치에 매너리즘을 느낀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간 프로이트 학회에서 새로운 남자, 에이드리언을 만난다.


p.162 에이드리언은 전형적인 랭 학파답게 광기를 이상화했다. 정신분열증 환자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시인이라면서. 헛소리를 주워섬기는 미치광이들은 다 릴케라면서.
p.175 "나는 분류되기를 거부할 거야. 당신이 자리에 앉아 나에 관한 글을 쓴다고 해도 당신은 내가 영웅인지, 영웅이 아닌지, 개자식인지 성인인지 알 수 없을걸. 당신은 도저히 날 분류할 수 없을걸"


에이드리언은 지겨운 생활을 버리고 자신과 함께 도망치기를 회유한다.

p.250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은 원하는 걸 뭐든지 가질 수 있는데 그걸 모르고 있단 거야. 온 세상을 손에 쥘 수 있는데도 그걸 몰라. 나와 함께 가면 베넷이 별로 그립지 않을 걸. 나하고 여행을 떠나는 거야. 나는 유럽을 발견하고 당신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스포주의)


이사도라는 에이드리언이 자신을 완성시켜 줄 사람이라고 믿었지만, 정신분석에 대한 이견, 가르치려 드는 태도, 그리고 그의 아이 문제 등에서 갈등을 겪는다. 결국, 두 사람의 짧은 여행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p.262 "당신 엄마가 당신을 질식시켰지. 내가 아니라. 난 당신이 원하는 모든 자유를 주었어." "그건 성립되지 않는 말이야. 누군가가 나한테 자유를 주어야 내가 누릴 수 있는 거라면 난 이미 자유롭지 않은 거니까. 나에게 자유를 '주는' 당신이 도대체 뭔데?"
p.265 "당신은 가짜야. 완전히 가짜야. 스스로 성장하지 않으면 정말 가치 있는 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어. "


해석


이 소설은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불륜 서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성애자 여성 지식인으로서의 내면적 갈등, 정체성, 구원에 대한 열망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특히 프로이트식 정신분석과 여성의 삶 사이의 모순과 애증이 돋보였다.

p.69 서른 이전의 삶을 돌아보면 나의 연인들은 마치 의자 뺏기 게임을 하듯 앞다투어 의자에 앉았다. 그들 모두가 앞서 만난 사람의 해독제였다. 그들 모두가 일종의 반응이었고, 전향이었으며, 반동이었다.


이사도라는 신경증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그녀는 이사도라에게 두 가지를 가르쳤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평범해지지 마라 그리고 이 세상은 약탈로 가득 찬 곳이다(p.279)

p.278 엄마에 대한 나의 사랑과 증오는 너무도 심하게 뒤엉켜 있어서 엄마 자체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엄마와 나. 나는 그 둘을 결코 분리하지 못하리라. 엄마가 나이고 내가 엄마이고 우리는 하나다.

모녀관계는 일반적인 모성애로 정의되지 않는, 자아투사와 애증이 섞인 복잡한 무언가이다.

p.95-6 가끔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결코 될 수 없었던 지혜롭고 똑똑한 여자아이를 낳고 싶었다. 머리에, 혹은 가슴에 어떤 상처도 없는 아이......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나 자신을 다시 낳는 것이었다. 다른 세계, 다른 가족에서 자랐더라면 달라졌을 소녀........ 나는 준비가 되었을 때 아이를 가질 것이다. 영원히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영원히 갖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이사도라는 불안정한 연애관계에 이끌린다.

p.437 가족으로부터 떠나려고 남자를 찾고 남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을 찾는다.
p.139-40 열정과 안정감 두 가지를 다 가질 방법은 아무래도 없는 것 같았다. 나보다 훨씬 더 위대한 지성들이 이 문제를 깊이 통찰했지만 그 어떤 명확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단지 나의 근심이 평범하고 진부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만약 내가 정말 특출한 사람이라면 결혼과 간통 문제로 이렇게 고민하진 않았을 텐데....... 나의 죄책감은 내가 얼마나 평범하고 비열한지 일깨워줄 뿐이었다. 서글프고도 오래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내가 평범하다는 증거였다.


특히, 지식인으로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이사도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결혼과 임신에 대한 불안감이 많이 와닿았다.

p.79 나는 늘 나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고 싶었다. 임신은 그러한 통제력의 상당 부분을 박탈하는 결정처럼 보였다.
p.99 사랑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족쇄다. 가장 아프고 가장 오래가는 족쇄다. 그 족쇄에 나는 영원히 갇힐 것이다. 나 자신의 감정과 내 아기의 인질이 될 것이다.
p.467 에이드리언의 아기. 베넷의 아기. 나의 아기. 누구의 아기라도. 나는 임신하고 싶었다. 아기를 가져서 비대해지고 싶었다.
p.165 행복해지는 게 끔찍이도 두려웠어요. 두려워서 결혼했어요.


에이드리언은 베넷과 다르게(혹은 그런 척) 이사도라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p.165 (에이드리언) 나도 당신하고 똑같았어요. 쾌락을 믿지 않았고 나 자신의 충동도 믿지 않았어요. 행복해지는 게 끔찍이도 두려웠어요. 두려워서 결혼했어요.



남자가 그리는 여자, 여자가 그리는 남자


소설의 초반부에서 작가는 관념적인 여성성에 대해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단지 여성 주인공의 내면 탐구처럼 보이지만,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면 이 작품이 결국 서로에 대해 상상하고 기대하는 이성의 이미지들이 교차되는 이야기였다는 해석에 이르게 된다.


시인인 이사도라는 일상적으로는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문학적으로는 백인 남성 문인들의 저작에서 정체성을 확립했다.

p.54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나는 채털리 부인의 오르가슴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도대체 나는 어디가 잘못된 건가 의문을 품었다.
p.224 내가 아는 주제들이 모두 '시시하고 여성적인' 것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반면 내가 모르는 주제들은 '심오하고 남성적인' 것이었다.


그에 대해 이사도라는 저항하기도, 순응하기도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그 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흥미로운 것은, 반대로 이사도라 자신도 가상의 남성성을 지니는 이상형을 설정하고 이를 좇는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이는 얼굴 없는 남자, 침대 밑의 남자로 표현된다. 얼굴 없는 남자에 대한 환상은 모든 것을 다 아는 남편(베넷)에서 새로운 남자(에이드리언)에게로의 끌림을 부추긴다.


p.486 "침대 밑의 남자는 절대 침대 위의 남자가 될 수 없어. 그들은 상호배타적이야. 일단 모습을 드러내면 내가 갈망하던 그 남자가 아니야"

라캉은 세미나 11에서 대상 a(object petit a)의 개념을 제시했다. 대상 a는 결핍에서 비롯된 잃어버린 것의 흔적이며,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잉여의 대상이다. 욕망은 결핍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결핍을 둘러싼 잉여의 흔적을 향해 나아간다. 이사도라가 끊임없이 좇는 얼굴 없는 남자, 침대 밑의 남자는 실체가 아니라 환영이며, 그녀의 욕망은 영원히 충족되지 않은 채 미끄러질 뿐이다.



연애는 구원이 될 수 있는가


p.192 남자들은 여자들을 조롱할 수 있을지언정 뒷담화를 막을 수는 없다. 뒷담화는 억압된 자들의 아편이므로. 그러나 누가 억압되었는가? 피아와 나는 '자유로운 여성'이었다. ...... 진정으로 자유로운 여자는 어디에 있는가? 이 남자에서 저 남자로 전전하지 않는 여자, 남자가 있건 없건 완전함을 느끼는 여자는 어디에 있는가?
p.166 "날 두고 아주 많은 계획을 세웠군요. 자유에 대해 가르쳐주고 쾌락에 대해 가르쳐주고 나하고 책을 쓰고 날 개조하고....... 왜 남자들은 다 날 개조하고 싶어 하지? 내가 개조해야 할 사람처럼 보이나?" "구원받고 싶은 사람처럼 보여요. 당신은 구원을 요청하고 있어요. 내가 대단한 정신분석가라도 되는 양 날 보면서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잖아요. 당신 같은 여잔 평생 선생님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한테 너무 의존하게 되고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을 증오하게 되죠. 아니면 그 사람이 자기 약점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가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를 경멸하거나."

뼈 맞음

p.242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는 대신 그들 두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하는 건 아닐까? 두 사람에게서 벗어나 내가 나를 보호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 남자에서 달아나 저 남자에게로 가는 식이 아니라 한 번이라도 혼자 힘으로 살아 보는 것. 그게 왜 이토록 두려울까?
p.463 "난 아주 가까워지고 싶어. 완벽한 일체감을 느끼고 싶어.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다고." "왜 사랑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해?" "해결책이 아닐 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그걸 원해. 일체감을 느끼고 싶어."
p.480 "만나는 남자마다 전부 다 섹스한다고 해서 자유에 가까워지는 건 아니야" ...... "누구도 타인에게 무언가를 알려줄 수 없어."
p.533 결혼생활이 힘들었던 이유는 어떤 면에서는 결혼이 언제나 감응성 정신병이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의존성을 사랑과 혼동한다.


에이드리언은 감각의 쾌락으로 삶의 무의미성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다.

p.330 실존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완전한 절망에 빠져 있다면서 쉬지 않고 글을 쓴다. - W.H. 오든
p.481 당신은 강렬함을 원하지만 결국 무감각을 얻는 거야. 일종의 자멸이지.

여행을 통해 이사도라는 그가 자신을 완성시킬 수 없음을 깨닫는다.

p.553 연인들은 서로의 눈 속에서 무엇을 볼까? 서로를 볼까? 나는 황당하게도 에이드리언이 내 영혼의 짝이라고 믿었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그러나 나는 바로 그걸 원했다. 나를 완성시켜줄 남자를 원했다. ...... 다른 사람은 결코 나를 완성하지 못한다. 우리 자신이 우리를 완성하는 것이다.
p.504 "당신한테 준 시집에 적어놓았어. 맨 뒷장에" 그러나 그는 그 시집을 잃어버렸다. 진한 분홍색 잉크로 사인해서 주었건만. 그가 그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은 건 말할 필요조차 없다.
p.502 그가 날 구원해주리라는 기대를 버린 순간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헤어지고 남편, 베넷에게 돌아가는 비행기를 탄다. 왜 우리는 잃어버리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가? 왜 우리는 비교대상이 있어야만 그 가치를 알게 될까?



결말, 그럼에도 계속 사랑하는 것


사실상 결말은 열려있지만, 후회하고 베넷에게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이 소설의 의미를 퇴색하는 면이 있다. 아래의 서술을 고려한다면, 베넷과의 결별을 선택한 것인지, 혹은 두 성숙한 자아의 사랑(가능한가?)으로 재출발하는 것인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p.468 지금부터 나는 나 자신의 엄마가 되고 나 자신의 위로자가 되고 나 자신을 재우는 사람이 되리라. 아마도 이게 바로 에이드리언이 말하는, 나 자신의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끌어올리는 것이리라. 내 삶을 견디는 방법을 배우는 것. 나의 존재를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 나의 존재를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 나 자신의 어머니가 되는 법을 배우는 것. 정신분석의, 연인, 남편, 부모에게 기대는 대신.


다만 그녀가 선택한 되돌아감이 포용, 근본적인 사랑에 대한 은유라면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p.516 모르겠어. 하지만 만약 내가 사랑에 대한 기대를 접고 사랑을 찾으려는 노력을 접으면 내 삶은 암수술받은 젖가슴처럼 밋밋해질걸. 난 항상 무언가를 기대해. 그리고 그 기대를 키워가고. 그게 날 살아있게 해.

니체가 학문은 여성성이 필요하다고 한 것처럼, 이 세상에는 사랑에 대한 기대감과 그로 인한 열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걸 여성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에겐..?

p.522 내가 보기엔 이렇다. 그건 전혀 끔찍한 게 아니다. 아니, 끔찍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해롭지는 않다는 것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없이 살아가는 것은. 정말 끔찍한 건 차선을 최선인 척 하는 것이다. 사랑이 필요한데 필요하지 않은 척하는 것, 혹은 훨씬 더 잘할 수 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는 것이다 - 도라스 레싱, 황금노트


스토리라인을 제외하고도 가끔씩 보이는 위트와 프로이트식 유머는 소설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데 충분하다.

p.69 내 첫 남편이 정신병자였기 때문에 정신과의사 남편과 두 번째 결혼을 하고 싶었던 건 지극히 당연했다........ 그들 모두가 앞서 만난 사람의 해독제였다. 그들 모두가 일종의 반응이었고, 전향이었으며, 반동이었다.
p.313 그러나 누가 누구와 떠날 것인가? 베넷이 나와? 에이드리언이 나와? 아니면 세 사람이 함꼐? 동요처럼 '첨벙. 첨벙. 첨벙. 정신분석 받는 세 사람, 한 욕조에 들어 갔다네'로 끝날까?'
p.473 남자는 환각제 맛을 좀 본 활달한 증권 중개인이었고 여자는 간통 맛을 좀 본 활달한 가정주부였다.
p.478 "그렇다고 기분이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말해줘서 고마워"

(여기 진짜 재밌음)


또한 이 소설이 띄는 약간의 에로티시즘이 좋았다. 정신분석 특유의 재미인 것 같다.

p.266 나는 일종의 공동 소유물이 되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작가들은 세상을 유혹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그러나 막상 그 유혹이 성공하면 갑자기 창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p.228 이젠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그는 섹스를 잘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이제 나는 그를 잊을 수 있으리라.

그 밖에,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겪는 가치관의 변화도 흥미로웠다.

p.517 넌 명분을 위해서 죽기 싫단 거야? 스무 살에는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서른 살에는 아냐. 명분을 위한 죽음 따윈 믿지 않아. 시를 위한 죽음도 믿지 않아. 한때는 죽은 키츠를 숭배했지만. 이제는 늙는 게 죽는 것보다 더 용기 있는 일 같아.



마무리하며


지극히 사적이고 평범한 지식인 여성의 일생

★★★★☆

몇 번의 연애를 반복한 (이성애자) 성인여성에게 이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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