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흰』 을 읽고
동생이 있었다면, 하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 강아지를 바라는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선 어머니는 지나가듯 말했다. 너에겐 남동생이 있었을 수도 있었어. 나도 한 생명을 품을 수 있는 나이가 된 지금, 가끔씩 그 말이 얼마나 날카로웠을까 되뇐다. 얼마나 마음이 찢겼길래 넝마짝이 되어서, 쉽게 말할 수 있었을까.
한강 작가의 작품 『흰』을 읽고 한 글귀(p.122)를 빌려 독후감을 시작한다. 서평을 쓰기에 이 소설은 지극히 사적이고 감성적인 무언가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p.11 시간의 감각이 날카로울 때가 있다. 몸이 아플 때 특히 그렇다....... 해오던 일을 모두 멈추고 통증을 견디는 동안,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리는 시간은 면도날을 뭉쳐 만든 구슬들 같다. 손끝이 스치면 피가 흐를 것 같다. 숨을 들이쉬며 한순간씩 더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까지도 그 감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숨죽여 서서 나를 기다린다.
나에게 한강은 죄책감의 작가다. 평온한 일상 속 넘어갔을 것들도, 그녀의 책을 읽고 나노라면 마음의 부채가 생긴다. 그렇기에 한강의 책을 읽는 것은 아프다. 인간으로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다른 존재자들을 파괴하거나 그런 사태를 외면하는 것임(p.147, 권희철 해설)을 깨닫는 과정이다.
그녀가 다룬 아픔은 역사적 사건(『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삶 그 자체(『채식주의자』, 『흰』)도 있다. 나머지 저작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으나, 나는 『흰』이 좀 더 근본적인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도시를 배경으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작품의 주된 소재는 누군가의 삶을 이어받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나'는 도시에 온 후 언니의 영혼을 생각한다.
p.18 내 어머니가 낳은 첫아기는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고 했다.
p.36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그 말이 그녀의 몸속에 부적으로 새겨져 있으므로.
작품 속 '흰'은 깨끗함과 무영의 대명사다. 생명을 대표하는 흰 젖이며 빛나는 물이다.
p.21 하얀 털, 까만 눈, 아직 축축한 코.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손을 뻗어 개의 목과 등을 쓰다듬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p.103 의식이 없는 상태로 아기가 젖을 물고 조금씩 삼켰다. 점점 더 삼켰다.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 지금 자신이 넘어오고 있는 경계가 무엇인지 모르는 채.
또한 포격 이후 흰 잿더미만 남은 도시처럼, 죽음과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p.96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같은 죽음이 그 얼굴 뒤에 끈질기게 어른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어버린 그녀의 언니와 그녀가 같은 뱃속에서 나왔듯, 어둠과 흼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p.79 인도유럽어에서 텅 빔blank와 흰빛blanc, 검음black과 불꽃flame이 모두 같은 어원을 갖는다고 그녀는 읽었다. 어둠을 안고 타오르는 텅 빈 흰 불꽃들-
흰 불꽃의 형상은 뒤에 나오는 넋과 흰나비와의 움직임과도 닮아 있다.
p.39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럽혀지더라도 흰 것을,
소설의 대비구조가 미적으로 아름다웠다. 단순한 어둠과 흼, 삶과 죽음의 대비가 얽히고설키며 무언가에 다다르고자 하기 때문이다.
p.94 노르웨이 최북단에 사람들이 사는 섬이 있는데, 여름에는 하루 스물네 시간 해가 떠있으며 겨울에는 스물네 시간이 모두 밤이라고...... 그녀가 통과하는 시간은 그렇게 흰 밤일까, 혹은 검은 낮일까? 묵은 고통은 아직 다 오므라들지 않았고 새로운 고통은 아직 다 벌어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죽은 도시 위에 산다는 것. 역사적으로 죽임 당한 이들과 동물을 죽이는 것을 포함해 산다는 것은 목숨을 빌리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누군가의 목숨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어떤 책임이 생기기 때문이다.
p.56-7 그는 결벽적일 만큼 윤리적인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게 되는데, 선택의 순간마다 어째서인지 히말라야의 설산에 눈이 내리는 압도적인 풍경이 그의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그는 누구도 쉽게 내리기 어려운 결정을 하고, 그 결과 끊임없이 고초를 겪는다....... 아득한 설산의 계곡과 봉우리......
가끔은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 도망치고 싶어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이 우리 안에 어른어른 너울거리고 있기 때문에(p.70).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무언가다.
전쟁과 학살, 죽음이 만연한 폭력적인 세계에서 흰 것들은 그 자리를 지킨다.
p.64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p.30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희어 보인다.
죽어버린 사람들에 대해 명명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p.127 흰 옷이 그렇게 허공에 스미면 넋이 그것을 입을 거라고, 우리는 정말 믿고 있는가?
작가는 그렇다고 말한다.
p.104 그것들에게서 돌아서기 전에 그녀는 묻는다.
더 나아가고 싶은가.
그럴 가치가 있는가.
“현재가 과거를 돕고, 산 자가 죽은 자를 돕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싶었어요”(김연수·한강, 2014: 323-324).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문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p.23 때로 나의 육체가 어떤 감옥처럼 느껴진다. 내가 겪어온 삶의 모든 기억들이, 그 기억들과 분리해낼 수 없는 내 모국어와 함께 고립되고 봉인된 것처럼 느껴진다.
소설을 읽으며 나 또한 생각했다. 태어나지 못한 내 동생은 어떤 아이였을까. 정의롭고 강해서 나처럼 사소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았을까. 해소할 수 없는 부채감은 가끔씩 명치에 울컥거리는 무언가를 놓고 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살아가는 것뿐.
소설과 시를 쓰는 것은 예민한 사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리는 사람에게 세상은 얼마나 지옥인가. 그러나 그런 이들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 분명히 있다.
이 소설을 읽고 오랜만에 『채식주의자』를 읽던 때를 떠올렸다. 식물처럼 살아가는 방식은 고통스럽지만, 일상의 죄의식은 부정하거나 회피할 수 없다. 한 번 그것을 읽어낸 이상, 외면하지 않고 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