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여행(1)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2012년 경 두 번째 유럽여행을 궁리하게 되었다. 그전에 나랏돈으로 보내준 유럽여행에 재미가 들렸던 것이다. 나랏돈으로 간 것이 첫 번째라면 이번이 두 번째가 되는 것이다. 나랏돈으로 간 것은 사실 공무원 해외연수라는 핑계로 다녀온 여행이었는지라 크게 대놓고 떠들 일은 아니다. 물론 여행만 한 것은 아니고 관련 기관 방문도 있었다. 두 번째 여행을 궁리하면서 도저히 혼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언어도 그렇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형편에 어떻게 돌아다닐지, 호텔은 어떻게 예약하는지 등 해외여행에 일자무식한 내가 혼자 자유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 그래서 여행사 패키지를 이용하기로 했다. 같이 동행할 멤버도 마땅치 않은지라 혼자 패키지에 합류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친구끼리, 가족끼리 패키지에 합류하는데 나 혼자 달랑 합류하는 것이 사실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라도 가고 싶었다.
여행을 가면 평소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된다. 외부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부분에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매사에 논리적이고, 걱정이 많고, 불안해하는 나가 아니라 모든 문제에 대하여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게 되는 다른 사람이 된다.
여행을 다녀오면 확실히 세상을 보는 느낌이 달라진다. 여행을 가기 전과 다녀온 후의 나 자신의 화학적 구성물은 동일할 것이다. 여행 한 번 다녀온다고 하여 나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화학적 성분이 달라질 리가 없다. 당시 나의 직업으로 인하여 형성된 습성인지 나 스스로 나를 답답하게 하고 피곤하게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힘들 때 한번 여행을 다녀오면 나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현재 삶이 전부가 아니고 이 세상은 그렇게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그것이 내가 힘들게 여행을 가는 중요한 이유이다. 당시 재미없고 권태로운 나의 삶에 있어 가끔씩 이벤트를 만들어야 했다.
여행은 참으로 귀찮고 돈이 드는 일이다. 짐을 챙겨야 하고, 비용이 들어가고, 잠자리도 불편하다. 그러나 여행 후에 오는 즐거움이나 삶에 대한 고마움, 삶의 의욕 같은 감정은 오래가는 것이다. 한동안 추억을 되새기면서 즐거워하게 된다. 여행을 운동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운동을 하기 전에는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만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한 후 샤워를 하고 나면 개운한 것처럼 여행도 그러하다. 이렇듯이 여행을 다닐 때는 힘들지만 나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켜 활기찬 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여행사를 통한 여행은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것저것 느긋하게 보면서 다닐 수없다. 서너 시간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현지가이드가 초스피드로 설명하는것을 듣는다. 그리고 각자 부리나케 화장실을 다녀오고 인증사진 찍은 후 모여 다음 행선지로 출발한다. 대충 겉핥기식이다. 그렇게 9박 10일 동안 5개국을 돌아다녔다. 한 국가만 하더라도 수 천년 동안 살아온 역사와 문화가 있는데 몇 시간 내에 이를 관광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처음 목차만 대충 보고 나서 나중에 정독하듯이 이렇게 대충 겉핥기식으로 여행하고 난 후 다음 여행 때는 한 곳에 며칠 씩 머무르면서 하나씩 음미하는 기회를 마련해 볼 수밖에 없다.
짐을 싸면서 어떻게 하면 무게를 최소화할 것인지 궁리해야 했다.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캐리어를 끌고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어깨에 메는 백팩을 하나 준비했다. 최소한의 짐을 가지고 가야 한다. 옷 가짓수를 적게 가져가고 호텔에서 빨래해서 널어놓았다가 아침에 입을 심산이었다. 양말 3개, 런닝구 2개, 반팔티 1개, 긴팔티 1개(스위스 융프라우에 갈 때 춥다며 여행사 후배가 준비하라고 조언하였다)를 준비하였고 추울 때 입을 점퍼 같은 것 하나 준비하기로 하였다. 점퍼가 마땅치 않다. 옷장을 뒤지고 보니 츄리닝 비슷한 점퍼가 하나 나온다. 거의 입어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요긴할 것 같다. 바지 여벌 1개, 그리고 평소 복용하는 혈압약, 전기면도기, 핸드폰, 카메라 등 이런 것들로만 배낭을 채웠다. 그리고 작은 메모용 노트도 배낭에 넣었다.
집 앞에서 아침 10시경 택시를 타고 분당 야탑역 우리은행 앞에 도착하니 10시 25분. 마침 10시 30분경 출발하는 인천공항리무진이 정확히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다. 공항리무진은 서현역을 거쳐 인천대교를 건넌다. 3년 전 직장에서 무의도로 야유회를 가느라 인천대교를 건넌 적이 있어 인천대교가 생소하지는 않다. 인천대교가 얼마나 긴지 끝이 보이지 않고 끝 부분은 저 멀리 안갯속으로 사라진다.
우리 일정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 가서 프랑스 파리 샤롤 드골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는데 짐은 암스테르담에서 바로 파리까지 자동 연결되어 파리에서 짐을 찾게 된다고 한다. 인솔자 말에 의하면 환승하면서 가끔씩 짐이 분실된다며 나의 배낭은 작으니 휴대하고 탑승하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지고 있는 배낭의 무게가 4킬로나 되어 나로서는 메고 다니는 게 힘들다. 내 물건은 값나가는 게 없어 분실되어도 좋으니 내 배낭도 부치자고 하였다.
짐을 부치고 나서 1차 문을 통과한 다음 셔틀트레인(탑승게이트가 멀어서 이 환승트레인을 타고 가야 한다)을 타고 간다. 국내 주요 항공사의 탑승게이트는 가까운데 있는데 외국항공사탑승게이트는 거리가 멀어 지하로 연결된 환승트레인으로 가게 되어 있다. 그때는 인천공항 2 청사가 생기기 전이라 지금은 KLM(네덜란드 항공) 탑승 위치가 어디로 변경되었는지 모른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보니 한참 뒷좌석이다. 나는 미리 인솔자에게 통로 쪽 좌석으로 배정해 달라고 하였다. 나의 클러치가 있어 가운데 좌석을 배정받으면 옆좌석의 사람과 서로 불편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11시간 40분가량 좁은 공간에 앉아있어야 한다. 저번에 유럽에 가면서 장시간 비행기를 탄 경험이 있긴 하지만 정말 지겨운 시간이다. 오랜 시간 동안 옴짝달싹할 수 없는 좁은 공간에 앉아 승무원들이 주는 음식물을 계속 꾸역꾸역 받아먹는다는 것은 보통 인내력을 요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들 신기하게 잘 견디는 것 같다. 나만 그런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힘들지만 내색을 하지 않는 걸까,
드디어 비행기는 이륙하였다. 이륙할 때만 조금 흔들리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니 흔들림이 없다. 기내식이 두 번 나왔다. 한 번은 비빔밥이 나오고 한 번은 키친으로 만든 요리가 나왔는데 음식이 품질도 좋고 깔끔하다. 게다가 가끔씩 주스나 아몬드, 아이스바 등 간식이 나왔는데 주는 데로 다 받아먹으면 살찔 것 같다. 그런데 객지에 돌아다닐 거니 체력이 축날 것 같아 안 먹을 수 없다.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다.
왼쪽 옆으로 젊은 남녀가 둘이 앉았다. 내 왼쪽 옆에는 남자가, 그리고 그 옆 좌석에 여자가 앉았다. 보아하니 부부는 아닌 것 같고 서로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보아 사귀는 중인 것 같다. 옆의 남자와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기는 해외출장이 많아 여행 경험이 많다고 한다. 이번에는 여자친구와 아일랜드로 여행을 간다며 이런저런 아일랜드에 관한 자료를 보고 있다고 있다. 남자가 좌석에 있는 쇼핑카탈로그책자를 뒤지더니 승무원에게 물건을 주문한다. 조금 후 승무원이 검은 거울을 하나 가져다준다. 가격은 한국 돈으로 2만 원 정도, 그런데 그 남자는 한참 동안 거울을 열심히 닦아본다. 그러더니 승무원에게 거울에 기스가 나서 반환해야 한다고 한다. 같은 종류의 물품이 있으면 교환하고 없으면 환불해 달라고 한다. 그 남자는 옆의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려고 거울을 구입한다고 하였다.
내가 그 옆의 여자에게 “지금 이 물건을 환불하게 되면 당신은 남자 친구로 하여금 선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빼앗는 상황이 된다”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옆의 여자는 웃으며 그 말이 맞다며 웬만하면 그냥 쓰겠다고 하였다. 내가 쓸데없이 오지랖을 떨었다. 그 여자가 화장실 간 사이에 그 남자는 말을 하였다. “지금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일랜드에 도착해서 그녀에게 깜짝 놀랄 만한 이벤트를 준비하였다”라고 하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저렇게 구애에 적극적이다. 부럽다. 공항에 내려서 헤어지면서 서로 명함을 교환하였고 이벤트가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나중에 결혼에 골인하여 결혼식을 하게 되면 연락하라고 하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어디선가 기분 좋은 꽃향기가 풍긴다. 어디서 나는 냄새일까, 평소에 향수를 쓰지 않는 나로서는 무슨 향수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기내 여승무원이 따뜻한 물에 적신 티슈를 한 장식 핀셋으로 나누어 주고 있다. 향기는 그 티슈에서 나온 것이다. 향기를 듬뿍 적신 티슈. 아, 그렇지 네덜란드 하면 꽃의 나라이지, 이렇게 나는 꽃향기를 맡으면서 네덜란드를 만나게 되었다. 나중에 생각하보니 그 티슈는 기내식 전에 손세척용으로 나온 것이었다.
앞의 좌석 뒤에 붙어 있는 모니터를 보니 화면에 ‘앞으로 도착지까지의 운행시간 11시간 20분, 고도 9768미터, 온도 -54도’이다. 정말 그렇게 온도가 떨어졌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처음 탐승할 때나 지금이나 온도차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데 모니터의 표시가 맞는 걸까, 영하 54도면 금방 얼어 죽을 온도이다. 신기한 일이다. 비행기 내부에서는 자체로 온도 조절이 되는 모양이다. 출발할 때도 약간 쌀쌀한 가을 날씨 같은 느낌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 온도라고 느껴지는데 –54라니, 가끔 다큐멘터리에서 비행 중 조종석 유리창이 깨져 조종사의 몸이 반쯤 창밖으로 나간 상태에서 비상착륙을 하였는데 조종사가 다행히 동사하지 않고 살았다는 기적 같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비행기 바깥이 정말 얼어 죽을 정도로 추운 걸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가끔씩 음료수가 제공되는데 우유를 마시고 싶어졌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밀크’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승무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표정이다. 옆자리 앉은 젊은 친구가 ‘밀~ ’이라고 하니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먹는 것 같다. 그 친구는 ‘밀크’라고 하지 말고 ‘미역’이라고 발음하되 ‘역’ 자는 발음을 하지 않은 듯하면 정확한 표현이란다. 음 그렇지, 본토발음이 다르구나. 그 젊은 친구의 영어회화 실력도 좋다.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서 도착하니 다음 목적지인 파리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갈 환승비행기가 2시간 이상 남아있어서 각자 자유시간을 갖고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출발, 드디어 파리 샤롤 드골 공항에 도착하여 여행사 측에서 준비한 버스로 파리 외곽 매리어트 샤롤 드골이라는 호텔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