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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을 든 달타냥 Oct 30. 2022

[펜싱은 처음이라] 9. 호랑이 굴로

나아가고 물러나는 법을 알고 공격하는 방법까지 알게 되면 방어하는 방법도 습득해야 한다. 다양한 방어 기술이 있지만 기본 동작은 당연히 막기다. 펜싱 용어로는 빠라드(parade)라고 한다. 프랑스어 스펠링만 놓고 보면 축제 또는 행진(퍼레이드)과 같아서 원뜻을 알아보려고 하면 한참을 헤매야 하는 단어다. 프랑스어 사전을 검색해보면 공격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뜻은 사전 저 아래에 짧게 언급되는 수준에 그친다.     


빠라드는 몸통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뻗쳐오는 공격을 막는 8가지 방어술이 기본이다. 사방팔방을 막는 방법이 있지만, 종목에 따라 사용 빈도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머리를 막는 동작은 에페나 사브르에선 중요하겠지만, 머리를 공격해도 점수를 얻을 수 없는 플뢰레에선 꼭 필요하진 않다. 그래서 플뢰레를 하는 나는 머리 막는 방법을 모른다. 대신 몸통을 막는 다양한 방법을 배웠다. 몸통을 보호하는 방어술은 가장 기본적인 막기 방법이기도 하다. ‘꺄르트 빠라드’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네 번째 방어법’ 정도로 번역 가능하다.    

 

앙가르드 자세를 기본으로 해서 칼 안쪽으로 파고들며 몸통을 노리는 상대 공격을 막아내는 동작인데 심플하다. 앙가르드 자세에서 팔뚝만 움직인다는 느낌으로 들고 있는 칼을 몸통으로 당기면 된다. 당연히 상대방 공격 타이밍에 맞춰야 효과적인 방어가 된다. 이밖에도 칼을 든 자세를 기준으로 몸통 밖으로 칼을 막아내는 동작, ‘식스 빠라드’, 몸통 아래에서 파고드는 공격을 막아내는 ‘셉팀 빠라드’와 ‘옥타브 빠라드’ 정도가 내가 배운 기본 방어술이다.     


펜싱에서 방어는 단순히 상대 공격을 막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특히 우선권 규칙이 있는 플뢰레와 사브르의 경우 방어는 곧 공격의 시작이다. 우선권을 잃어서 방어를 해야 할 때, 상대 공격을 막아내면 방어자가 곧바로 공격 우선권을 얻는다. 공격과 방어가 교차하는 짧은 찰나에 공격자와 방어자도 뒤바뀐다. 

    

개인적으로 플뢰레가 다른 두 종목보다 더 흥미로운 종목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팔만 뻗으면 서로를 찌를 수 있는 거리에서 공격과 방어가 여러 차례 교차하면서 합을 겨루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에페나 사브르는 공방이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공격이 이루어지기 까지 시간이 오래(에페) 걸리느냐 적게(사브르) 걸리느냐 차이만 있지 일단 공격이 이뤄지면 열에 여덟, 아홉은 일격에 득점이 난다. 플뢰레에선 짧은 시간에 공격을 방어하고, 반격을 방어하고, 재반격을 다시 방어하고, 그리고 또 반격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무협 영화 속 강호들의 격투신을 연상하게 한다.     


기본적인 빠라드를 할 수 있게 되면 역공에 해당하는 방어술도 배운다. 에스퀴브(esquive)로 대표된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면서 찌르는 동작이다. 개인적으론 빠라드 보단 에스퀴브를 즐겨하는 쪽이다. 역시 레이백 랩을 닮은 펭귄 펜싱의 일환이다. 플래시를 즐기게 된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에라 모르겠다’ 말이다. 빠르게 밀고 들어오는 상대를 어찌할 수 없을 때, ‘빠라드’고 뭐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적진으로 뛰어들고 마는 것이다.     


에스퀴브는 기본적으로 나를 던지는 행위다. 동시타가 허용되는 에페라면 요행이 점수를 얻을 수도 있지만, 우선권 규칙이 있는 플뢰레나 사브르에선 에스퀴브 동작으로 동시타가 나오면 나는 점수를 잃는다. 반드시 나는 찔리지 않고 상대를 찔러야만 성공하는 방어술이어서 방어자에게 페널티가 있다. 하지만 상대 공격 패턴이나 속도만 파악할 수 있다면, 이보다 짜릿한 역습도 없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는 짜릿함과 같다.  

   

물론 에스퀴브가 아무런 대책 없이 적진으로 뛰어드는 기술은 아니다. 프랑스어로 ‘타격을 교묘히 회피하는 행위’라고 정의되는 것처럼 ‘교묘히 회피’하는 동작과 함께 적진에 뛰어든다. 주로 상대의 공격을 피해 옆으로 비켜서거나 앉아 버리는데, 나는 주로 비켜서면서 한 바퀴 빙글 돌곤한다. 우리 클럽에서 내 ‘빙글’은 꽤나 ‘우아한’ 걸로 정평이 나있다. 플래시가 달아나는 패잔병이 놓쳐버린 화살에서 매복병 정도로 승격되는 동안, ‘빙글’도 갈고 닦아졌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김연아의 회전을 닮았다’는 찬사가 나올 정도일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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