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제 인생에서 몇 가지 자신 있는 무기나 자랑할 만한 특기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요즘처럼 자기 PR이 필수인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내 경우엔 펜싱을 시작하기 전까지 30년 인생을 살며 가진 자랑거리 중 하나가 운동 능력이었다. 평균 이상의 운동 능력을 가졌다는 자부심은 대한민국 흔남의 흔한 자랑거리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절대 놓칠 수 없는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여자들이 싫어하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는 우스개도 이 땅의 남자들이 얼마나 운동에 진심인지를 보여준다 하겠다.
오해할까 덧붙이면, 내 경우엔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까진 야구선수를 꿈꿨다. 프로구단이 프로모션으로 운영하는 어린이 회원에는 관심 두지 않아도, 동네 꼬맹이들끼리 창단한 ‘어린이 야구단’에는 진심이었다. 따로 내 기록지를 들고 다닐 정도였고, 좋아하던 야구 만화 주인공을 따라 오른쪽 어깨로는 가방도 메지 않았다. 공을 던지는 어깨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주인공의 말이 어찌나 멋졌는지 모른다. 진심과 열정 덕에 곧잘 던지고, 쳤다. 한, 두 살 형들과 겨뤄도 밀리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야구선수의 꿈은 접었지만, 여전히 운동을 향한 애정은 가득했다. 달리기도 곧잘 해서 운동회 반 대표 계주 선수로 자주 뽑혔고, 반 대항으로 축구를 한다거나 농구를 하면 빼놓지 않고 주전 엔트리에 들었다. 반 대표를 넘어서 학교 대표까지 될 실력은 아니었지만, 운동 신경만큼은 좋은 축에 든다고 자부하며 살았다. 아, 고등학교 체력장에서 1등급도 받았다!
그래서 펜싱 칼을 처음 손에 든 올챙이 시절엔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는 날이 적지 않았다.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이야 인어공주가 되어 버렸던 지난날을 웃으며 이야기할 정도가 되었지만, 내 몸이 내 뜻을 따라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인어공주가 되어 보면서 처음 알게 됐다. 금방 선배 펜서들을 따라 잡을거라 생각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오히려 실력차만 자각하는 일이 잦았다. 첫 시합 이후 때때로 체력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연습 시합을 뛰곤 했는데, 만족스럽게 포인트를 내는 경우도 드물었다. 어쩌다 포인트를 따낼 때는 내 의도와 상관없이 따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건 당연한 거였다. 내가 배운 기술은 기본적인 수준에 그쳤고, 그마저도 흉내만 겨우 내는 수준이었다. 상대방은 이미 오래전에 초보시절을 지나 기본기를 떼고 자신만의 펜싱을 구사해 가는 ‘선배님’들이었으니 답은 정해져 있었던 거다. 이럴 때 한 차례 고비가 온다. 이 운동이 나한테 맞나? 계속 하는 게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는 거다. 나에겐 희도처럼 "늘 그랬던 것처럼 그냥 내가 하고 싶던 펜싱을 보여 줄 거야. '이게 나희도의 펜싱이다'"고 말할 자신감도 없었다.
이 무렵 스승님은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내게 “배운 걸 해봐요. 해보는 게 중요해요”라고 응원 겸 충고를 하곤 했다. 당연히 그 충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서 선배들을 따라잡고 싶다는 욕심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눈과 귀가 다 닫혀 있었던 탓이다. 배운 기술을 시합 중에 정확한 동작으로 해낼 수 있다면, 그걸로 포인트를 따내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다만, 초심자는 그 시간이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터널 안을 걷는 것처럼 답답하다. 사람마다 그 터널의 길이도 달라서, 옆 터널을 누군가가 통과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 답답함은 배가 된다. 내 터널의 끝은 도대체 어디냐는 생각에 중간에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 같은 터널을 지나온 선배, 동료의 적절한 조언이 도움이 된다.
팡트가 학을 닮은 S는 꽤 자주 “늘었다”고 칭찬을 해줬다. 초심자였던 나는 그 칭찬을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빼앗으러 온 마녀의 속삭임이라고 생각했다. 만족하지 못하는 내게 듣기 좋은 칭찬으로 검을 놓지 못하게 하려는 뻔한 속셈이겠거니 한거다. 하지만 다시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의 눈으로 보면 S에겐 초심자였던 내가 자각할 수 없었던 터널의 위치가 보였던 거라는 걸 안다. 칭찬과 조언에 기대 묵묵히 터널을 걷다보면 어느새 저 멀리서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
지난 5년, 많은 펜서들이 클럽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중에서도 긴 시간을 함께 운동을 해나가는 이들은 대부분 그 의미를 깨닫는 이들이었다. 되는대로, 욕심대로, 점수내기에, 시합에서 이기는 것에 집착하다 보면 쉽게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 내 경우엔 1년 6개월쯤 접어들었을 때 멀리서 흐릿하게 비치는 빛을 봤다. 신무기 플래시를 갖추고, 시합을 즐기기 시작한 게 이 무렵이다. 인어공주도 어느덧 내 곁에서 떠나고 없었다.
온전히 터널을 벗어난 건 3년 차에 접어들어서 였던 것 같다. 대회를 나가도 ‘광탈’하는 신세는 벗어나고, 펜싱이 뭔지 알 듯 한 기분이 든 시점이 그때부터다. 3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중·고등학교 학업기간이 3년인 걸 감안하면 무언가를 꾸준하게 학습해 기본적이 수준에 이르는데 필요한 최소 시간이 그 정도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