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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은 Jun 29. 2024

상담만 받아도
괜찮아질 거로 생각했다.

다음 날, 정오가 넘도록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뜨고 일어날 마주할 세상이 두렵고 무서웠다. 엄마는 당시 백수였던 내가 그저 잠에 취한 줄 알고 나를 깨우며 밥을 먹으라고 재촉했다. 공황장애가 참 웃긴 게 증세가 없을 땐 평소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언제 괴로워했냐는 듯 엄마와 대화를 나누며 웃었다. 어제는 내내 울고 축 처져있던 내가 금방 웃는 걸 보니 괜찮은가 보다 싶었다.


늘 반복되는 일상. 식사가 끝나고 다시 방에 들어왔다. 나의 방은 동굴이었다. 아무도 건들 수 없는, 나 혼자만의 시간과 공기로 가득한 공간.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하다 직장생활 초기 심리상담센터에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자 친구는 나에게 함께 정신건강의학과를 가자고 제안했지만, 나는 그때 당시 상담으로도 괜찮아졌기에 병원은 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전에 갔던 심리상담센터를 다시 방문하자니 거리가 너무 멀어져 새로운 곳을 찾아봤다. 광고가 가득한 곳, 좋아 보이는 곳, 후기가 많은 곳은 넘쳐났지만, 정작 내가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은 없어 보였다. 하긴, 몸이 아파도 괜찮은 병원을 찾으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데, 마음과 정신이 아픈 곳은 더 세세하게 찾아보는 게 당연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상태가 심하지 않고, 밤에만 불안과 우울이 찾아오던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 안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나도 빨리 며칠 후 명절 때 찾아왔다. 온 가족이 모인 곳에서 증상이 시작된 것이다. 누구보다 사랑하고 의지하는 가족임에도 나는 낯선 사람과 시간을 보내듯 괴롭고 불안했다. 방에 들어온 나는 처방받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며 심호흡을 했다.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가족의 목소리에 묻혀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상태가 호전되지 않다는 걸 깨달은 나는 명절이 끝나고 어렵게 찾은 심리상담센터에 방문했다. 첫날은 기질 검사와 문장 검사, 불안에 대한 수치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나의 상태를 파악했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마주칠까 말까 한 상담가는 나에게 굉장히 친절했다. 공황장애가 원인이 없다고 해서 모든 환경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니, 차분히 함께 원인을 찾고 해결해 보자고 이야기했다. 오늘 처음 보는 낯선 사람. 그렇지만 내가 이제 의지해야 하는 사람. 동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참 이상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상담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받았다. 메모장에 하루에 몇 번, 언제, 왜, 어떻게 불안했는지를 적었다. 생활 패턴을 파악하기 위해 수면과 식사 주기도 적어 상담가에게 보여줬다. 초반에는 이 사람에게 나의 모든 걸 들어내도 될지 고민했다. ‘이 사람도 어딜 가서 나의 이야기를 하면 어떡하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살아온 삶, 그 속에서 겪었던 아픔, 최근에 이 지경이 된 이유까지 모든 걸 쏟아냈다. 그러자 눈물도 함께 쏟아져 나왔고, 상담가는 나를 애틋한, 그렇지만 동정이 아닌 모든 걸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상담이 끝나고 나오면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이 전보다 조금 밝아 보이고, 사람이 많은 길을 걸어도 여유 있게 숨 쉴 수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짧은 순간이었다. 적어도 하루는 갈 줄 알았던 희망적인 감정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무너졌다. 집 앞에 버스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내가 쏟아놓은 감정들이 다시 나를 찾아와 짓누르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세상이 가짜 같았다. 내가 보고 느끼는 이 감정이 모두 거짓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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