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틸 힘이 없는 나는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숨이 넘어갈 듯 우는 소리에 그는 크게 당황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한참을 울던 나는 겨우 울음을 멈춘 채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그는 당장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를 만날 정신적 여유조차 없었기에 우선 집으로 가겠다며 조심스레 거절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 늘 나의 표정과 상태에 민감한 부모님으로 인해 눈물을 완전히 그치고 화장을 고쳤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티 내지 말자는 다짐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어딜 갔다 오길래 이렇게 오래 걸리냐며 얼른 저녁을 먹자고 이야기했다.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엄마, 아빠를 마주하고 밥을 억지로 삼켜냈다.
저녁 시간을 마치고 방에 들어온 나는 공황장애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어떤 병인지 정의가 나오기도 이전에 병원 목록이 한가득 떴다. 스크롤을 내려 나온 뜻은 이랬다.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불안 증상’
뜻을 본 무척 혼란스러웠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니. 어떻게 병이 이유가 없을 수가 있지?’ 어떠한 갈등이나 사건, 심지어 사사로운 오해조차도 어디서 시작됐는지 이유를 알아야 하고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나의 병은 원인을 알 수 없다. 마치 이 정의는 오히려 내가 떠올렸던 지난날들은 그저 환경일 뿐이지, 나에게 공황장애를 가져다준 원인은 아니라고 단정 지어주는 것 같았다. 차라리 이유라도 확실하면 탓이라도 하며 버틸 텐데.
심지어 내가 진단받은 이 병은, 그러니까 이 정신적 장애는 사람마다 증상도 달랐다. 누군가는 숨을 쉬지 못 하고, 누군가는 말을 못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외출조차 하지 못 한다. 누군가는 이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고, 누군가는 이 병을 앓던 가족을 잃었다.
희망이라곤 없는, 앞으로 절망만 다가올 것 같은 너무나 비참한 밤이었다. 무엇인가 알아가는 게 늘 즐거웠던 나는,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잔뜩 머릿속에 욱여넣은 채 신경안정제를 먹고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