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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키 Aug 03. 2024

다섯.

'그 얼굴이 맞는데... 걔 맞는 거 같은데... 아닌가?


화숙을 모시고 나온 다운은 조금 전 센터에서 안내를 해준 여직원을 보고 난 후 희미해진 기억 속 어느 날을 끄집어 내려 애를 쓰며 화숙의 집으로 향한다.


화숙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광고판에 붙은 전단지 한 장을 보고 다운은 신기해 하는 표정으로 화숙에게 말을 건다.


할머니, 나도 초등학생 때 여기 학습지 했었잖아. 기억나지?
방문 선생님이 우리 집으로 와서 수업해 주고 끝나면
할머니가 간식 먹고 가라고 선생님 챙겨 주고 그랬잖아.
이제 노인들 학습지도 생겼어. 할머니도 해볼래요?


하며 눈웃음을 지으며 자신에게 말을 거는 다운을 보고 12살 때의 손자 모습이 떠오른 화숙은 그때나 지금이나 웃는 얼굴은 똑같다고 말을 하며 다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엘리베이터 벽 광고판에 붙어 있는 전단지는 [시니어 인지 기능 향상 프로그램]으로 교사가 대상자의 집으로 찾아가는 [1:1 방문케어 프리미엄 서비스]를 월 12만원에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시니어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재와 교구가 따로 있으며, 그것들로 방문 선생님과 적당한 시간 안에서 인지 교육 수업을 하는 것이다.

'이제 이런 것들도 나오는구나.'






엘리베이터가 20층에 멈추고, 문이 열리자 다운의 팔에 의지한 체 힘든 걸음으로 현관 앞까지 다다른 화숙은 도어록에 손을 대고 비밀번호 4자리를 거뜬하게 누른다.

그 모습을 보고 다운은,

할머니! 비밀번호 잘 기억하시네!

라고 말을 하고는 화숙에게 자신의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다운은 집안에 들어서자 정리되지 않은 신발들과, 여기저기 놓여있는 빨랫감들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참 오랜만에 이 집에 들어온 다운은 잠깐 온 가족이 모여 살았던 때가 절로 생각이 나기도 했다..


아파트가 재개발되기 전까지는 온 가족이 같이 살던 집이었고, 즐거웠던 기억들도 많았다.


재개발 공사가 끝나고 신축 아파트로 바뀌면서 가구며 전자제품등을 모두 새것으로 들여놓았는데, 그중에는 물건도 아닌 것이 새로 들어오기도 하였다.


새엄마라는 것과 통키라는 것.

새엄마라는 것은 사람이고, 통키라는 것은 요크셔테리어종의 강아지다.


다운아,
오늘 회사에 반차 쓰고 할머니 좀 모시러 가주면 안 되겠냐?
우리가 지금 제주도에 와 있어서 갈 수가 없어.
지난주에 통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잖아.
15년이나 가족처럼 같이 있었는데 엄마가 너무 우울해해서
같이 기분 전환하러 여행 왔는데 계속 센터에서 연락이 오네.
할머니는 막내 고모가 4박 5일 동안 봐주기로 했으니까
오늘만 너가 할머니 좀 집에 모셔다 드려.
내가 센터에 전화해서 너가 할머니 모시러 갈 거라고 말해 놓을게.


점심에 센터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팀장에게 할머니 사정 이야기를 한 후 반차를 신청해 놓고 나갈 준비를 하던 상황에서 아버지인 태산으로부터 저런 전화를 받으니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그냥 알았다고 말하기엔 자존심도 상하고, 화를 내기엔 주변에 팀장과 직원들이 있다.

일단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전화를 끊어 버리는 아버지 나태산.

'이 양반은 꼭 지말만 하고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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