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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무디 Jun 13. 2022

부부싸움엔 다 이유가 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간



여행을 하면서도 부부싸움은 피해 갈 수 없는 톨게이트와 같다. 부부의 인생길에 있어서 아무 대가도 내놓지 않고서 지나칠 수 없는 마의 구간. 발리의 아름다움이 전혀 통하지 않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바로 ‘부부싸움’의 시간이었다. 나는 부부싸움에 눈물 2L 와 노을 지는 바다 앞에서의 처량한 시간을 내놓았다.


부부싸움은 칼로  베기’라는 이 있다. 어차피 등 돌리지 않고 평생 같이 살 거면서, 다시는 서로 안 볼 것처럼 칼을 뽑아 드는 모습을 풍자한 속담이라 생각한다. 누구 하나 득 되는  없이  소용없는 일이란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속담에 마냥 공감하지 않는다. 감정 다툼에 있어서 이유가 없는  없고,  감정을 푸는 과정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극 F (MBTI에 있어서 감정적임을 뜻한다.)로 이성이 감정을 이긴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그만큼 뭐든 일에 있어서 객관적 사실보다는 감정적인 표현이 우선시되는 편이다. 반면에 남편은  T (이성적)인 사람.

예를 들면, 서로가 아플  남편은 약을 먼저 챙겨주는 것이 우선이고 나는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공감해주는 말과 행동이 먼저다.



남편 : 머리가 아파? 밥 먹고 약 먹자

 : 머리 아파?? ?? 얼마나?? (머리에 손을 얹었다가 몸에 열이 나는지 확인하며 호들갑은 필수다!)


이렇게 감정적인 사람과 이성적인 사람이 부부로 만나면 싸울만한 이유가 굉장히 많다. 싸움이란  감정이 상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안한 말이지만 보통은 남편이 죄인이 되는 경우가 8할이다.




어제는 발리에 와서 처음으로 싸웠다. 싸웠다는 표현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 단어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단어 자체에서 풍기는 부정적인 느낌 자체만으로도 감정이 흔들리는 사람으로서, 이를 극복하지 않고서 우리의 싸움에 대해 제대로 연구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내가 감기에 걸리면서 밖을 잘 못 돌아다니게 되는 걸로 시작됐다. 아무렴 여행을 왔으면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아쉬운 하루하루인데 집에만 있는 것도 서운하긴 할 것이다. 제대로 밖을 구경 다니지 못한 지 이틀 삼일째가 되며 우리는 서로를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눈치도 한두 번이 반복되면 사람이 지치기 마련이다. 그건 슬슬 말투에서부터 표시가 나더니, 서로를 최대한 배려해주고 있던 시점에서 서로를 제일 서운하게 만드는 시점으로 탈바꿈을 하게 된다. 남편은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나는 어떻게 그러냐는 식의 대화가 불길의 막을 연다. 한바탕 울고, 답답함을 가득 담은 말들을 내뱉고, 그렇게 우리는 세 번의 대화 시도 끝에 애처로운 평화협정을 맺었다.


우리 싸움의 이유는 각자의 기준으로 서로를 배려하려 한 까닭이었다. 또한 남편은 이유 있는 행동과 말이었지만, 나는 이유는 상관없이  말과 행동이 서운한 것이었다. 나는 남편이 그럴만한 상황이었구나 이해하고, 남편은  감정이 상했구나를 공감해주니 해결되었다.


싸움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싸움의 쓸모가 결정된다. 함께 사건의 발단을 제대로 생각해보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 이렇다 정해진 정답은 없지만 대화 과정에서의 둘만의 방식과 룰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말투, 사람의 감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조금이라도 변한 말투엔 귀신같이 눈치를 치켜세우는 경우도 많다. 따뜻한 말투, 차가운 말투. 그 미묘함에 우리는 더 가까워지고 더 멀어진다.

나는 더욱 싸움이 있고 난 감정이 풀리지 않으면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해도  누그러지지 않는 편이다.  서로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눈을 맞추고  뒤에야 날이 섰던 칼들이 무너져 내린다.


내가 이 싸움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잘 전달하고 그에 대한 상대방의 입장도 잘 받아들이기. 분명 쉽지 않지만 거듭할수록 우린 점점 나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싸우지 않는 것보다 싸우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게 훨씬 이상적이다.


요즘은 유익한 예능 프로그램이 많아서 부부싸움 해결 팁에 대해 듣고 배울 수 있는 영상이 아주 많다. 그 말은 즉슨 다 이유가 있으니 해결이 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쓸데없다는 말이 있어도 상한 감정을 묻어두고 혼자 삭히지 않고 해결해나가면 부부 사이를 발전시키는 데에 쓸모가 생긴다. 오늘 우리는 사이가 좋으면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부부는 서로밖에 없다는 걸 늘 싸우고 난 뒤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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