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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가 Jun 12. 2024

삼다수를 찾아서

제주도 도보여행, 무엇이 삼다수인지 생각해 보다.

제주도 도보여행 중 표선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성산 쪽 게스트하우스에서 받아온 물을 버리고 해변 근처 수도가에서 물을 받아 마셨다. "이것이 진정한 삼다수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 호기롭게 물을 들이켰지만, 기대했던 시원함 대신 맹맹한 맛에 실망했다. '마셔도 되는 걸까?' 하는 걱정과 함께 정수기 물을 괜히 버린 것 같아 후회가 밀려왔다. 어쩌면 나의 믿음은 너무 무지하고 성급했는지 모른다.

이후 교래리의 돌문화공원을 방문했을 때, 나는 제주도에 내린 비가 어떻게 삼다수가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삼다수는 단순한 지하수가 아니었다. 한라산 국립공원 내 해발 1,450m 높이에 스며든 빗물이 현무암과 화산송이층을 거치며 18년 동안 정화된 귀한 물이었다. 깨끗하고 풍부한 미네랄을 함유한 물, 그것이 바로 삼다수였다. 겹겹이 쌓인 지층구조가 오랜 시간 오염물질을 걸러주었기에 지하 420m 정도의 화산암반층에서 끌어올린 지하수는 고도의 정수 처리 과정 없이 단순 여과와 자외선 살균만 거쳐 생산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제야 나는 내가 마신 수돗물과 삼다수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제주도의 수돗물에 대해 더 찾아보니, 제주 수돗물은 대부분 용천수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주도 수자원본부에서는 과거 환경일보에 제주 수돗물이 판매용 삼다수와 차이가 없다는 기사를 게재했지만, 내 생각에 이 말은 반만 맞는 것 같다. 다른 뉴스를 보면 어떤 지역의 관정은 수질검사에서 D등급이나 E등급을 받는 곳도 있으니, A등급인 곳은 판매용 삼다수와 차이가 없을 수 있지만, D등급이나 E등급을 받은 관정이나 수원지에서 수돗물을 공급받는 지역은 꼭 같다고 자신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용천수는 지하수 오염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축사 등에서 나오는 오염물질, 개인 정화조에서 흘러나오는 오수, 그리고 돼지 분변을 재료로 한 액비(비료)가 지하로 침투하면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 그래서 제주도지하수연구센터 같은 곳에서는 광역상수원 상류지역의 지하수 수질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관리목표수질을 초과한 곳들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취수원을 이전해야 하며, 더 많은 지역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반면, 내가 찾아본 자료에 의하면 삼다수 공장 근처에는 이러한 오염원이 비교적 적고 공장에서 바로 취수하기 때문에 삼다수공장은 믿을 수 있는 좋은 품질의 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제주자치도는 2년에 한 번씩 수질검사를 통해 등급을 매기는데, A등급의 관정에서 나오는 수돗물을 내가 구할 수 있다면, 다시 한번 똑같은 물병에 담아서 삼다수와 비교하며 마셔보고 싶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진정한 삼다수'를 찾겠다고 수돗물을 마시며 느꼈던 찜찜함은 결국 나의 무모함과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 맞았다. (물론 이런 무모함과 집요함 덕분에 지금은 제주 수돗물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된 것도 사실이긴 하다.)

제주도에서의 도보여행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자연의 신기함과 삼다수를 이해하게 되었고, 나의 무모함을 인정하며 조금 겸손해졌다. 진정한 삼다수의 맛은 단순하지 않다. 세상은 내 생각만큼 어수룩하지 않다.

**(덧붙임)** 제주도의 돼지 사육 규모가 인구수에 거의 맞먹는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인구 69만 명에 돼지 52만 두라니... 우리는 너무 인간 편의 위주로만 사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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