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의 숲길산책은 매력적인 체험 중 하나이다. 사려니숲길도 좋지만, 그 유명세만큼이나 북적이는 사람들로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조용히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머체왓숲길이나 삼다수숲길을 찾게 된다. 어느 날, 나는 바로 그 삼다수숲길을 걷고 있었다.
잦은 야식과 술로 다져진 나의 몸은 균형 잡기가 언제나 어려웠다. 숲길을 걷다가 돌을 밟고 비틀거리기 일쑤였다. 가끔은 무언가에 걸려 넘어질 뻔하기도 했는데, 발에 걸린 것을 들여다보니 그것은 나무의 뿌리였다.
일반적으로 나무뿌리는 흙 속에 있지만, 이 뿌리는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묄세." 용비어천가의 구절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평소 나무뿌리에 대해 '깊은'과 '얕은'만 생각했지, '밖으로 나와있는'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무뿌리는 밖으로 나와 발을 걸고 있었다. 별 것 아닌 것으로 웬 호들갑이냐고 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의 내 자신의 무지함과 잘못된 고정관념에 놀란 순간이었다. 흙속에 묻혀 있어야 하는 이 뿌리는 대체 어떻게 이렇게 흙 위로 드러나게 된 것일까?
그때 뿌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크게 흔들렸다. 뿌리의 정의는 무엇일까? 뿌리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 것일까? 뿌리가 흙 위로 노출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항상 뿌리는 흙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흙에서 떨어져 나온 뿌리도 여전히 그 뿌리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물론 그렇겠지,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뿌리의 주된 역할은 흙에서 영양분과 물을 흡수하여 나무에 공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표면에 노출된 뿌리는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일까?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다면, 단지 전달만을 위한 통로일 뿐인가? 아니면, 흙 속의 다른 뿌리들이 공급하는 영양분과 물만 소비하는 불쌍한 존재인가? 또한 표면에 노출되어 있는 그것을 여전히 '뿌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나뭇가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까?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무의 뿌리가 밖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아마 환경적 요인과 바위 등의 장애물들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자연의 혹독한 조건 속에서 뿌리는 흙이라는 보호막을 점차 잃게 되었고, 불가피하게 세상에 노출되었다. 그 모습은 자신의 터전을 잃어버린 존재들의 외롭고 슬픈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경사진 비탈이나 거대한 바위, 혹은 얕은 흙과 같은 장애물들 속에서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려는 그 뿌리는, 제 역할을 잘하지 못할 때에도 여전히 나무의 중요한 일부분이며,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다. 만약 이 뿌리가 손상된다면, 나무는 급격히 약해지거나, 심지어는 죽어버릴 수도 있다.
바위와 비탈같이 거칠고 험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으려 애쓰는 뿌리처럼, 나 역시 영업사원이던 시절 한정된 자원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힘썼다. 하지만, 영업이라는 분야에서는 원하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나무의 뿌리를 보면서 그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나에게 아쉬움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능력 있는 영업사원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결국 세상 밖으로 밀려나갔던 그 경험은 여전히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이런 상처들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도전이라고 받아들이려 한다.
제주도 표선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얻은 경험 역시 나에게는 소중한 깨달음이다. 경제적, 사회적 성공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진 특성과 단점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성급한 성격, 시작은 잘하지만 마무리는 약한 성향, 그리고 쉽게 흔들리는 마음까지 이런 부분들이 나를 이루고 있는 요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어떤 장소가 장사를 시작하기에 좋은 곳인지 판단하려면 그 지역에서 일정 기간을 생활하고 경험해봐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초반에 가졌던 마음처럼 낭만을 추구했다면 아버지의 조언처럼 적절한 시기에 철수할 수 있어야 했다.
규모와 위치를 적절하게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외진 곳에서 성공을 원했다면, 식당의 규모를 늘려야 한다. 반면,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를 원한다면 표선 시내에 식당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사항을 고려했다 하더라도 제주도 서귀포시처럼 비싼 LPG 가스를 사용해야만 하는 환경에서는, 감자탕이나 순댓국 같은 오랫동안 끓이는 메뉴는 수익성이 좋지 않다는 것도 지난 경험으로부터 알게 된 사실이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장사는 수익성이 좋지만, 수익은 계절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고, 플랫폼 홍보에도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도 경험이 전해준 사실이다. 이런 모든 일련의 과정들은 나를 더욱 성장시키는 귀중한 기회로 남았다. 제주도 표선이라는 독특한 지역의 특성, 그곳에서의 생활과 비즈니스 환경을 이해하게 된 것은 인생의 값진 가르침이다.
멈춰 서서 한참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한번 뿌리를 바라봤다. 그것은 결코 약해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를 터전에서 추방당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흙이라는 보호막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뿌리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태풍이나 폭우와 바람, 눈보라를 온전히 견디며 살아냈다.
마침내 나의 마음속에는 서러움이 아닌 경외심이 더해지게 되었다. 고요함 속에서도 뿌리의 생명력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았다. 조용히, 끈질기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그 모습은 마치 우리 인간의 삶과 닮아 있는 듯했다.
밖으로 드러난 뿌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닿기 위해 대지 위로 솟아났다. 너의 모습은 내 마음에 어떤 느낌을 주었고,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나 자신 포함) ‘당신들은 땅 위로 솟아 나온 뿌리와 같다. 힘겨운 환경 속에서도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과거의 실패, 그 실패한 순간 그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하는지는 완전히 우리의 몫이다. 그렇게 보면, 그 실패는 미래의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흙 속에 숨어있든, 아니면 땅 위로 드러나 있든, 그것은 생명의 기원이다. 그래서 그것은 언제나 굳건하게 생명력을 지닌 채로 존재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우리를 성장시키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살아남게 한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뿌리,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