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에 대하여
세상의 첫째가 아닌 모든 이들이여 어머니의 망각에 감사하라.
망각을 부정한다면 삶 또한 소멸하고 만다. 망각의 힘에 의해 비로소 인간은 인간이 된다. -니체-
2018년부터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지역에서 소박한 식당을 운영하며 생활해 왔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라는 큰 타격을 대출까지 받으며 어렵게 견뎌냈지만, 최근의 금리상승으로 이자부담이 늘어나고 원금상환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은행잔고는 계속 줄어들게 되었다. 또한 몇 년간의 부진했던 성과에 대한 실망감은 식당운영에 대한 열정마저 시들해지게 만들었고, 이런 실망감 속에서 급기야 건강관리마저 소홀히 하게 되었다. 밤마다 야식과 음주를 반복한 결과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이라는 '현대인의 3대 질병'까지 얻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조금이라도 경제적 손실을 줄여보고자 식당은 야식배달위주로 운영하고, 정규근무시간 동안은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는 그다지 특별한 것들은 아니었다. 그동안 식당에서 해왔던 간단한(하지만 힘든) 일들이나, 고기정육 관련 업무 중에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것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비만인인 나에게 설거지는 가장 큰 부담이었다.
한 번은 해비치호텔&리조트의 직원식당에서 주방보조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주 업무는 직원들의 식사가 끝나면 그 식판과 국그릇을 깨끗하게 설거지하는 것이었다. 호텔 리조트의 직원 식당은 특성상 표선의 다른 식당보다 많은 식사인원을 수용하고, 점심과 저녁 시간도 상당히 길었다. 그래서 점장인 조리사님을 제외한 유일한 남자였던 나는 주로 무거운 물품들을 운반하거나 대량의 식재료를 준비하고, 그러한 작업들을 마친 후에는 오랜 시간 서서 청소와 설거지를 해야 했다.
한 달 넘게 설거지를 하자, 손가락과 손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점점 심해져 갔다. 더욱이 무거운 체중을 지탱해야 하는 무릎의 고통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끊임없이 들어오는 식판 때문에 피로는 점점 더 누적되었다. 특히, 내 키에 비해 턱없이 낮은 싱크대는 허리를 과도하게 굽히게 만들어 더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설거지를 시작하면 1시간 30분 동안은 한 자리에서 꼼짝없이 서 있어야 했기에 무릎, 뒤꿈치, 허리는 멈추지 않고 고통의 신호를 뇌의 편도체로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직원식당에서 일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깨달음은 현재 나의 몸 상태가 오랜 시간 서서 일하는 것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런 물리적 고통을 겪은 후, 다시는 설거지와 같은 업무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해비치 직원 식당을 퇴사한 후 다른 일을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 후 마트에서 일하게 된 이후에도 고충은 계속되었다. 동네마트의 조그만 정육코너는 한 명의 직원으로 충분한 규모였지만, 내가 일한 지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새로운 팀장이 배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알아서) 정육코너를 떠나야 했다. 다행히 마트 배송기사로 직무를 변경하였지만, 마트 내부에서 벌어지는 야망가들의 정치게임이 미치는 악영향을 배송기사라고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8년 전에 회사를 그만두게 된 원인을 다시 상기시켰고, 마트에서도 두 달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트를 퇴사한 후 보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수입 없이 오직 지출만 늘어가는 현실에 직면했다. 그러자 나의 고질병인 ‘불안함에 어쩔 줄 몰라하는 상태’는 점점 심각해졌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워졌다. 마치 귀가 본능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집 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리는 사람처럼, 어느새 나는 중식당에서 다시 설거지를 하며 같은 고통에 허덕이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다음 달인 5월부터는 독채펜션의 관리 업무까지 맡게 되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펜션을 관리하며 손님들의 체크인을 도와주었고, 저녁에는 중식당에서 설거지를 했다. 그렇게 고된 하루를 보내며, 나는 다시 한번 오랫동안 서서 일하는 것이 내 몸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호텔 직원식당을 그만두며 한 다짐(Never again a dishwasing job in the rest of my life)이 떠올랐다. 어떻게 그런 중요한 다짐을 잊게 되었는지 한심한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통은 망각으로 인해 희미해진 그 기억을 다시 선명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안에는 후회와 한탄의 감정이 들끓었다. ‘평소에 음식, 특히 야식을 사랑했던 죄가 이렇게 부메랑처럼 돌아오는구나! 중요한 다짐을 잠시의 불안으로 잊어버린 나 자신에게, 가장 힘들고 버티기 어려운 임시 아르바이트 자리는 받아 마땅한 죄의 형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망각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았다. 망각이란 대체 무엇이며, 왜 우리는 망각하게 되는 것일까? 또한 왜 나는 망각으로 인해 다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나에게 망각은 힘든 경험을 쓸데없이 되풀이하게 만드는, 불편한 존재로 느껴졌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모든 고통이 모두 망각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망각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내가 잘못인거지.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망각에 대한 나의 생각이 너무 편향된 것은 아닐까 의문도 들었다. 그래서 망각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 아닌 고마웠던 순간은 없었는지 떠올려 보았다.
그때 뜻밖에도, 아내가 둘째를 출산했던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갑자기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세세한 부분은 기억나지 않지만, 엄청난 고통을 잊어버리고 어떻게 다시 출산을 결정했는지에 대한 얘기였다. 그녀는 출산의 고통을 '마치 배속이 쥐어짜이고 뜯겨찢어지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이라고 표현했다. 두 번째 출산의 진통이 시작되자 '아, 이 고통이었지. 나는 이 고통을 잊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첫째의 외로움을 보며, (아이러니한 점은, 첫째가 외로움을 느낄까 봐 둘째를 가지기로 결정했지만, 첫째는 둘째가 태어난 후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되었다.)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을 되돌리고, 둘째를 가지기로 결정했다.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은 기쁨이었고, 태교는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출산의 순간, 그 엄청난 고통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을 때 '아, 나는 이 고통을 잊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아내와의 대화를 돌이켜보면서, 나 역시 둘째로 태어났음을 깨달았다. 어머니의 첫째 출산 후의 고통을 잊게 해 준 그 망각의 힘이 없었다면, 나 역시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결국 망각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는 결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망각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나를 괴롭히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 준 축복이기도 했다. 망각은 내가 평소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필요한 것이었다.
망각의 강력한 힘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는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편협한 고정관념에서 한 발짝 나올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망각이란, 때로는 우리의 중요한 결정이나 고된 시기를 잊게 하여 같은 실수를 다시 범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면모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는 이제 망각을 딱딱하게만 바라보지는 않기로 했다.
망각은 과거의 아픔과 힘듦을 잊게 해 주는 동시에, 새로운 삶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존재다. 이것이 바로 망각의 본질이자 망각을 통해 얻은 희망의 힘이었다. 나는 고통스럽던 설거지라는 일을 잊은 덕분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아갈 수 있었다. 설거지를 하며 괴로움에 고통받기만 했던 과거의 나는 지금은 짜장면과 짬뽕의 면도 잘 삶아내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모두 망각의 힘 덕분이다.
이를 통해 나는 망각이 우리의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새로운 경험과 지혜를 습득할 기회를 제공한다.
망각은 어머니와 같이, 삶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듯, 망각은 새로운 생각과 경험들을 탄생시킨다. 그것은 과거의 제한된 사고나 패턴을 떠나 새로운 생각의 자유를 찾을 수 있게 돕는다.
물론,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어떤 것들을 잊게 될 것이고, 때때로 그로 인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럴 때마다 나는 더 이상 자책하거나 후회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망각이라는 힘도 결국에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무거운 부담을 잊어버리면서, 그 자리에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주는 망각의 힘을 나는 지금에야 비로소 조금 이해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나는 더욱더 나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