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얼을 먹다가
고양이, 건식사료, 시리얼 그리고 나
2018년부터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어느새 길고양이들에게 건식 사료를 주는 일이 3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습식 캔 사료와 츄르, 심지어 아구찜에 들어가는 생선까지 삶아주는 등 다양한 음식을 제공했다. 하지만 어느 날, 새끼 4마리를 수유 중이던 어미 고양이가 칼슘 부족으로 쇼크 상태에 빠졌다. 밤늦은 시간, 식당 뒷마당에서 나는 어미 고양이가 거품을 물고 온몸이 굳은 채로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재빨리 행동에 옮겼다. 40km 떨어진 제주시의 동물병원 응급실까지 어미 고양이를 데리고 갔고, 다행히 칼슘 주사 2대를 맞고 다음 날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5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병원비를 지불해야 했다. 이 사태를 겪고 나서야 나는 건식 사료에 칼슘 영양제를 뿌려주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고양이들은 사람보다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건식 사료보다 맛있는 것을 먹었다고 건식 사료는 푸대접하고,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될 때까지 사료도 먹지 않다니. 이렇게도 어리석을 수가 있나?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들이 고양이와는 현격히 다르게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AI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시키는 것도, 암세포나 치명적인 질병들이 자신들도 죽게 될 것을 모른 채 숙주를 계속 공격하듯이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것도 모두 우리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내가 바빠서 오랜만에 고양이들에게 건식 사료를 줄 때면, 그들은 꼬리를 하늘 끝까지 세우고, 엉덩이까지 들며, 와드득 뽀드득 거리며 건식 사료를 먹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늘 궁금증을 가졌다. 그들은 무슨 맛으로 저걸 저렇게 유난까지 떨며 맛있게 먹는 것일까? 하는 조금의 궁금증을 가지며 식당으로 되돌아온곤 했다.
그래서 건식 사료를 먹는 고양이들을 조금은 측은하게 바라봤다. 으이구 고양이들은 저런 건식 사료도 꼬리와 엉덩이를 바짝 올릴 정도로 좋아하는구나. 나는 사람이라서 다양하고 맛있는 것들을 먹고사는데, 고양이들은 저런 건식 사료만으로도 행복해하는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동물들을 깔보는 성향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곤 한다. 고양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그런 성격적 결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건식 사료를 먹는 모습을 보며 나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12시에서 3시까지 설거지 알바를 하고 오면 피곤함에 초저녁 6시에서 8시에 잠들어서 새벽 4시쯤에 일어나곤 한다. 6시쯤이면 배가 고파서 시리얼을 먹곤 한다.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위장이라 두유와 같이 먹기도 해 봤지만 그것 역시도 귀찮은지라 요즘은 그냥 봉지채로 입에 쏟아 넣어 먹곤 한다. 그렇게 몇 달을 시리얼을 먹었고, 오늘 새벽에도 시리얼을 한 모금 마시던 중 갑자기 내가 고양이가 된 것 같은 느낌과 시리얼이 건식 사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고양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 또한 인간의 건식 사료인 시리얼을 먹으며, 그것이 편리하고 간편하다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혼자 살게 되었고 그래서 귀차니즘으로 최선의 효율을 추구하며 고양이처럼 건식 인간 사료를 먹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고양이를 측은하게 바라봤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고양이들이 건식 사료를 먹는 모습을 보며 동정했지만, 사실 나 자신도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내가 지녔던 우월감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절실히 느꼈다. 나는 고양이보다 나은 게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그들을 동정했지만, 결국 나 자신이 그들과 같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갑자기 확 변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마치 끓는 물이 100도에 도달해야 끓어오르듯, 얼마나 많은 깨우침과 그 깨우침을 실천하려는 실행력이 겹쳐져야 진정으로 변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나의 변화 또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이제, 마음만이라도 좀 더 겸손하게 살아가려 한다. 나는 고양이들이 아닌, 나 자신을 돌아보며, 그들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며 살아가려 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새로운 시작이다. 다만, 아직은 시리얼을 먹을 때마다 야옹하고 한번 외쳐보고 싶은 마음이 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