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술, 다른 맛
한 모금 머금는 순간, 쓴맛 뒤에 찾아오는 건 즐거움일까, 망각일까.
익숙한 하얀색 병, "한라산 순한맛"
내 가슴속 식당에 잠들어 있는 "한라산 17도"는
5년의 세월을 머금은 채, 잊혀진 꿈처럼 씁쓸했다.
표선사거리, 젊음이 끓어오르는 낯선 술집.
그곳의 "순한 한라산"은 왜 이리 달콤한가.
희망에 부푼 눈빛들 속에서, 잊고 있던 설렘이 피어오른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취기가 오르고,
나는 은근하게, 그러나 담담하게 자리를 뜬다.
나이 들어가는 모습도 이렇게,
마치 잘 숙성된 술처럼 깊어졌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문득 깨닫는다.
술맛이 다른 것은 단지 분위기 탓만은 아님을.
어쩌면 젊은 그들의 패기와 열정,
그리고 그들의 꿈을 향한 뜨거운 시선이
내 잔까지 채워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그래, 삶의 맛은 마음의 온도에 따라 변하는 법.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 말자.
대신, 식어버린 열정을 다시 데울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