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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가 May 07. 2023

세상의 모든 시지프스

인생의 무게를 견뎌라!

마트 배송기사로 일하던 시절, 나는 쉴 틈 없는 장시간 노동에 지쳐갔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10시간 동안 20킬로그램에 가까운 무거운 제품들을 옮기고 배달하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렇게 힘든 일이 계속된다면, 나의 허리와 무릎 관절이 남아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악대의 승전가처럼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순간도 매일 찾아왔다. 저녁노을의 마법으로 직원 주차장이 붉게 물들고 내 트럭 또한 황금빛이 되는 퇴근길, 하루 일당 8만원(세금을 떼고 나면 월급이 238만원 정도였다)의 성취감은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하루 종일 몸에 가해진 육체적 피로감은 아이러니하게도 밤의 숙면(꿀잠)을 활짝 열어주는 열쇠와 같았다. 자리에 누우면 곧 편안함과 평온함에 젖어들었고 머릿속에 재밌는 아이디어의 싹이 돋아났다. 다음 날 그 아이디어들을 활자로 써내려갈 생각에 설레며 잠이 들곤 했다.  마트에서 겪은 여러 사건사고들, 특히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들까지. 그 시절 낮에는 육체적 피로에 잔뜩 절여졌지만 그 고통과 노력을, 밤의 충분한 휴식과 영감으로 보상받았다. 매일 스스로를 돌아보며 ‘그래. 비록 내가 별 볼일 없는 놈이지만, 오늘도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자존감도 높아져갔다.

     

그러나 마트 일을 그만둔 후, 나는 평생의 고질병인 불안감에 다시 시달리게 되었다. 마트 배송 일은 중년의 신체에 무리가 되었기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퇴근하는 일상의 안정감, 성취감을 느끼며 받는 월급 등 익숙했던 그 감정이 곧바로 그리워졌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고, 시지프스의 이야기는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언덕 위로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고단한 일은 처음에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시지프스는 우리의 동정심 어린 시선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순간들로부터 만족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시지프스와 내 인생의 유사한 면을 발견한 것 같았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신화"에서 시지프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시지프스가 산에서 내려오는 순간을 고찰하며, 그 순간 시지프스의 마음이 어땠을 지를 살핀다. 카뮈는 시지프스가 돌을 계속해서 언덕 위로 밀어 올려야 하는 벗어날 수 없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돌을 밀어 올리는 그 행위 자체에서 인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포기하지 않고 내일도 다시 그 일을 이어나가는 것이 '반항'이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삶의 끝에는 형벌과 같은 죽음뿐이지만, 그러한 사실에 굴하지 않고 오늘 하루의 의미를 찾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시지프스라면? 어떨까 상상해보았다. 어느 해였는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날짜는 정확히 기억난다. 6월 20일, 대학교 기말고사가 끝난 후 공과대학 건물을 내려오고 있었다. 시험은 망쳤지만 결과를 떠나 홀가분했던 그 때의 기분. 그리고 십여 년간 회사에서 시지프스처럼 일했던 나 자신을 회상했다. 지친 하루가 끝나면 종종 동료들과 함께 맥주 한 잔 걸치며 부드러운 맥주거품에 스트레스를 털어버렸던 순간이 떠올랐다. 

    

기말고사 결과와는 상관없이 가볍기만 했던 마음과 같이, 하루의 형벌이 끝난 뒤 시지프스는 산에서 내려오며 홀가분하지 않았을까? 시원한 맥주 한잔을 상상하며 한순간 설레는 순간을 느끼지 않았을까? 농활을 하는 동안 먹었던 새참이 꿀맛인 것처럼 육체노동 후의 식사는 그 맛을 비할 데가 없었으리라. 형벌이라는 육체적 고통에 시달린 시지프스는 축복과 같은 숙면에 빠져들었을 것이 틀림없다.

     

오랫동안 나는 복숭아 알레르기를 앓아왔다. 복숭아를 만지거나 먹으면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을 겪게 된다. 손톱으로 긁어대는 탓에 피부는 상처가 나고 피로 붉게 물들지만 긁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병원에서 놓아주는 주사 한 번이면 가려움이 기적처럼 사라진다. 동시에 참을 수 없는 고통도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때 나는 마치 전자오락기가 에러로 화면이 일그러지고 엉망진창이었던 상황에서 갑자기 정상 작동모드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편안함, 고요함, 감사함 등의 감정이 교차했다.

     

감기로 몸살을 앓던 어떤 밤이 지나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세상이 새롭게 느껴지던 것처럼, 시지프스의 삶에서도 결과와는 별개로(돌은 결국 굴러 떨어질 테니까) 고통을 이겨내며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시지프스 이야기와 나의 경험을 통해, 고통과 행복 사이의 거리가 불과 한 뼘이 채 되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시지프스는 산에서 바위를 굴리며 어쩌면 복숭아 알레르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큰 육체적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분명 존재했겠지. 아마도 산에서 내려오는 동안의 일시적인 평온함. 힘겨운 일과를 마치고 순식간에 지나가 버릴 휴식이지만, 그의 삶에도 행복이 함께였을 것이다.

     

썰매견은 한 번에 최대 25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좁은 방에서만 생활한 썰매견은 몸에서 샘솟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자신의 애꿎은 앞발만 물어뜯는다. 혹시 나는 인생의 힘든 시기에 매몰된 채 자신의 자아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지는 않은가(뜨끔). 지금이 그런 때라면, 썰매견처럼 수백 킬로미터를 힘차게 내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은 밖으로 나가 육체적 활동을 시작해보자.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자세는 삶의 의미를 더해준다. 명상을 통해 숙면하기, 예상치 못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재미, 아니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순간들이 내게 찾아와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곤 했다. 삶을 즐기는 나만의 방법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다.

     

고통과 행복은 언뜻, 정반대의 개념이라 고통이 있는 곳에 행복은 영원히 없을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나의 결론에 따르면, 고통과 행복은 이웃이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것처럼 고통 후에는 반드시 행복이 찾아온다. 모든 이들이여(나 포함), 지금 고통의 시기에 놓여 있다면 서로 위로하며 인생의 길을 함께 나아가보자.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윽고 우리는 고통에서 행복으로 넘어가는 얇디얇은 경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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