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을 요구하면서 낯선 건 싫어하는 사회

기대와 거절은 동시에 온다

by 김민영

사회는 자주 묻는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습니까?”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풀 수 있나요?”

“획기적인 기획을 제안해보세요.”


하지만 정작 그 아이디어가 기존의 문법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조직과 맞지 않는다”거나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된다.


창의와 혁신은 사회가 스스로 내세우는 요구 조건이지만,

그 수용의 전제는 기존 시스템을 위협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차별성이다.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다르다는 느낌’을 견디지 못하는 구조.

그게 지금 우리가 마주한 모순이다.


그래서 창의성은 더 이상 발명에 가까운 행위가 아니다.

기존 질서에 위화감을 주지 않으면서,

문제를 재구성하는 ‘조율의 능력’에 가깝다.


획기적인 기획은 독립적인 발상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 해석 가능하도록 번역된 발상’이어야 한다.

과감한 변화보다

익숙한 흐름 위에 덧붙일 수 있는 보완 구조가 더 환영받는다.


창의적이라는 이유로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 기획은 아무리 정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아이디어 자체보다, 그 아이디어가 진입하는 방식이 더 중요해진다.

진짜로 조직이 묻고 있는 건 이것이다.

“당신이 가진 아이디어가 우리 안에서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가?”

즉, 발상의 자유를 말하지만

운용의 통제 가능성을 먼저 확인한다.


이런 구조 안에서

창의성은 혁신이 아니라 해석의 기술이다.

획기적인 무언가를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아니라,

그 무언가가 “얼마나 익숙하게 느껴지도록 설계되었는가”가 핵심이 된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이건 창의에 대한 억압이라고.

그러나 이건 억압이 아니라,

사회라는 구조가 스스로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해석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변화를 수용한다.

그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 틀을 확장해야만 하는 사람들만이 살아남는다.


지금, ‘기획력’이란 말 뒤에

숨어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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